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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윤동주 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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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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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肝’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우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을 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려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沈澱하는 프로메테우스.



‘길’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은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또 다른 고향’ 윤동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魂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과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





‘병원’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못해 처음으로 이곳을 찾아 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나의 건강이 속히 회복되길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소년’ 윤동주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골..... 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골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골..... 아름다운 순이의

얼골은 어린다.




‘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은 최초의 악수.



‘십자가’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아우의 인상화’ 윤동주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오줌싸개 지도’ 윤동주


빨래 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밤에 내 동생

오줌 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 땅 지돈가?



‘自畵像’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려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王朝의 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래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코스모스’ 윤동주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또리 울음에도 수집어지고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작성일2021-08-2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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