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노년을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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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장흥군 장흥읍의 토요장터는 할머니 천국이였다
정터엔 모두 300여명의 상인들이 전을 벌이고 있는데, 그중 100여명이 할머니들이다.
유독 할머니 장꾼 앞에만 1000여명의 손님이며 관광객이 북적이다 보니
장흥읍의 토요장터는 명실공히 '할머니장터'였다
장단에 맞추어 호객하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가 파도처럼 술렁대니
할머니 장꾼들의 노색(老色)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장흥읍의 토요장은 전통적 오일장과는 별도로 군에서 노인복지와 노년 활성화를 위해 계획한 것이다.
할머니 장꾼 한사람당 장이 열릴때마다 만원의 상여금을 지급하면서 장세는 한층더 활발해지고,
군 전체의 노년들의 사기도 돋우게 된것이다.
관의 주도로 성공한 노인복지 사업이 대표적 사례이다.
여생(餘生)의 여는 넉넉하고 충만한 것이다. 풍요(豊饒)의 요와 뜻이 통하는 글자이다.
단 한순간도 서두르지 않는다. 시간에 묶여 일하는 짓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웰빙"의 기본적 뜻은 '풍요롭고 건강하게 삶을 지탱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육체적 건강을 누리고 물직적 또는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것.
이차적으로 인품을 가꾸고 교양을 닦고 정신적으로 완숙하기를 기도하면서 건전하게 삶을 가꾸어 가는것이다.
따라서 웰빙은 젊은이의 몫이라기 보다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노년의 몫이다.
노년은 둘레를 초록으로 갈무리하고 일상을 초록빛으로 무늬지게 해야한다.
'새파란 노년'이게 해야한다. 그것은 노년의 인생철학에서 금과옥조가 된다.
초록은 생명의 바탕색이다.
어느 색깔의 꽃이든 초록을 바탕으로 비로소 피어난다.
초록은 평화이고 안식이다. 인간정서의 안존감, 인간 감정의 안정이다.
묵상도 초록으로 물들때 비로소 명상의 경지로.
뇌신경의 안정과 활기를 동시에 살려내는것이 초록이다.
-----> '가드닝(gardening)' 뜰이나 정원을 가꾸는 것이라면 단연 영국이 세계제일.
미국도 교외주택의 경우 가드닝이 절대적.
동양에선 일본이 유일한 '가드닝 국가'일것같다.
가드닝의 녹색지수는 국가의 문화 수준을 대변하는것 같다.
가드닝은 노년자체를 파랗게 가꾸는 일이다.
녹색지수를 높이면 노인의 생명과 몸도 함께 싱그러워질 것이다.
내게는 찰랑대는 파도의 설렘이 초침이 되는 새벽이 있듯이,
찌르륵대는 풀벌레의 울음이 분침이 되는 한 밤도 있다.
나의 머리가 하얗게 세어감에 따라 시간의 색깔은 짙어만 간다.
가령,
언제가 분홍빛 시간이냐고 물으면....
새벽녘 물마루에 떠오른다. 동녘 하늘을 붉게 밝히면서 찾아든다.
미적대는 어둠을 밀쳐내듯 눈을 뜬다.
창을 열고 숨을 크게 들이쉬면, 내 가슴이 분홍빛을 띠면서 똑딱인다.
초록빛 시간은....
봄날에 캐낸 쑥 다발이 커지는것처럼 아침시간은 간다.
한장 두장 따낸, 엄나무의 여린 속잎으로 시간을 잰다.
그러다 지치면 갓 돋아난 풀밭에 주저앉는다.
팔다리를 뻗고 누우면, 나의 초록빛 시간도 싱그러움을 더한다.
새벽노을이 끼었다 사라지는 것으로 재는 시간이 있듯 저녁녘 황혼이 지는 것으로 마감되는 시간도 있기 마련이다.
시간을 누리는 사람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주체적인지 아니면
소극적이고 피동적이고 수동적인지에 따라 시간이 질이 달라질것 같다.
시간을 직접 운행하는 사람, 시간이란 자동차를 제 마음대로 몰아가는 사람(시간의 주인)을
시간의 자동차에 멍청히 몸을 맡긴채 눈을 감고 조는 사람(시간의 노예)과 비교할 수는 없다.
고들빼기, 씀바귀, 냉이, 달래, 민들레.....
그 줄기기 세어지고 잎이 누렇게 타면서 네게 봄이 저만큼 뒷전으로 물러났음을 알린다.
산나물, 들나물 따라 짙푸르러가는 시간 곁엔 그때그때 골라마시는 차에 맞추어 향을 토해내는 시간도 있다.
엷은 녹색의 찻물 위에 백옥 같은 매화 꽃송이를 띄워 이른 봄을 마신다.
영춘화의 노란 꽃잎이나 진달래의 연분홍 꽃잎이 찻잔에 드면 나의 봄은 바야흐로 만개한다.
그 즈음 갓 움튼 차나무잎, 그 작설의 뾰족한 잎을 우유에 섞어 갈아마시면,
봄은 더없이 싱그러워진다.
흰 감꽃 몇송이가 찻잔에 여름 기운을 드리우는 바로 그때,
인동초의 짙은 단내가 차를 머금은 나를 기쁨으로 설레게 한다. 그러다
가을을 맞으면 나의 녹차 잔은 꽃 박람회장이 된다.
묵직한 국화 송이가 흰빛, 자줏빛, 노란빛으로 알록달록하게 그 자색을 뽐내면
나의 찻잔은 만화방초의 뜰도 부럽지 않다. 그러다
비파꽃의 아릿한 향이 찻잔에 어리면서 나의 겨울은 농익어간다.
차와 함께 짜릿함이 입 안에 번지면 이른 봄이다.
달콤함이 더욱 아기자기해지면 어느덧 여름이
고소함이 자욱해지면 가을이다.
매큼함이 차맛과 어우려지면 바야흐로 한겨울이다.
시간의 색깔이 짙어져감에 따라,
계절마다 피어나는 각종 나물과 꽃이 피어나는 시간마다
더욱더 성숙해져가고, 농익어져가는 그 노년을 과연 어디에 견줄까?
노년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고,
생동감이 넘칠 수 있고,
독립적일 수 있음에 박수를 보내고싶다.
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게되는 곳이기에
이 책을 읽고 희망을 가져본다.
내일의 노년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오늘의 나는 더욱더 행복해지려고 노력할것이다.
노년은
두려움의 시기,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라....
남은 삶들을 이전의 삶들보다 더욱 행복해지기 위해 다시 시작하는
가슴 뛰는, 기대가 되는 제 2막의 삶인 것이다.
아울러,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기막히게 좋은
노년의 삶을 살았음 좋겠다.
고향이 전라도 인 친구가 보내준 글
장흥군 장흥읍의 토요장터는 할머니 천국이였다
정터엔 모두 300여명의 상인들이 전을 벌이고 있는데, 그중 100여명이 할머니들이다.
유독 할머니 장꾼 앞에만 1000여명의 손님이며 관광객이 북적이다 보니
장흥읍의 토요장터는 명실공히 '할머니장터'였다
장단에 맞추어 호객하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가 파도처럼 술렁대니
할머니 장꾼들의 노색(老色)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장흥읍의 토요장은 전통적 오일장과는 별도로 군에서 노인복지와 노년 활성화를 위해 계획한 것이다.
할머니 장꾼 한사람당 장이 열릴때마다 만원의 상여금을 지급하면서 장세는 한층더 활발해지고,
군 전체의 노년들의 사기도 돋우게 된것이다.
관의 주도로 성공한 노인복지 사업이 대표적 사례이다.
여생(餘生)의 여는 넉넉하고 충만한 것이다. 풍요(豊饒)의 요와 뜻이 통하는 글자이다.
단 한순간도 서두르지 않는다. 시간에 묶여 일하는 짓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웰빙"의 기본적 뜻은 '풍요롭고 건강하게 삶을 지탱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육체적 건강을 누리고 물직적 또는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것.
이차적으로 인품을 가꾸고 교양을 닦고 정신적으로 완숙하기를 기도하면서 건전하게 삶을 가꾸어 가는것이다.
따라서 웰빙은 젊은이의 몫이라기 보다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노년의 몫이다.
노년은 둘레를 초록으로 갈무리하고 일상을 초록빛으로 무늬지게 해야한다.
'새파란 노년'이게 해야한다. 그것은 노년의 인생철학에서 금과옥조가 된다.
초록은 생명의 바탕색이다.
어느 색깔의 꽃이든 초록을 바탕으로 비로소 피어난다.
초록은 평화이고 안식이다. 인간정서의 안존감, 인간 감정의 안정이다.
묵상도 초록으로 물들때 비로소 명상의 경지로.
뇌신경의 안정과 활기를 동시에 살려내는것이 초록이다.
-----> '가드닝(gardening)' 뜰이나 정원을 가꾸는 것이라면 단연 영국이 세계제일.
미국도 교외주택의 경우 가드닝이 절대적.
동양에선 일본이 유일한 '가드닝 국가'일것같다.
가드닝의 녹색지수는 국가의 문화 수준을 대변하는것 같다.
가드닝은 노년자체를 파랗게 가꾸는 일이다.
녹색지수를 높이면 노인의 생명과 몸도 함께 싱그러워질 것이다.
내게는 찰랑대는 파도의 설렘이 초침이 되는 새벽이 있듯이,
찌르륵대는 풀벌레의 울음이 분침이 되는 한 밤도 있다.
나의 머리가 하얗게 세어감에 따라 시간의 색깔은 짙어만 간다.
가령,
언제가 분홍빛 시간이냐고 물으면....
새벽녘 물마루에 떠오른다. 동녘 하늘을 붉게 밝히면서 찾아든다.
미적대는 어둠을 밀쳐내듯 눈을 뜬다.
창을 열고 숨을 크게 들이쉬면, 내 가슴이 분홍빛을 띠면서 똑딱인다.
초록빛 시간은....
봄날에 캐낸 쑥 다발이 커지는것처럼 아침시간은 간다.
한장 두장 따낸, 엄나무의 여린 속잎으로 시간을 잰다.
그러다 지치면 갓 돋아난 풀밭에 주저앉는다.
팔다리를 뻗고 누우면, 나의 초록빛 시간도 싱그러움을 더한다.
새벽노을이 끼었다 사라지는 것으로 재는 시간이 있듯 저녁녘 황혼이 지는 것으로 마감되는 시간도 있기 마련이다.
시간을 누리는 사람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주체적인지 아니면
소극적이고 피동적이고 수동적인지에 따라 시간이 질이 달라질것 같다.
시간을 직접 운행하는 사람, 시간이란 자동차를 제 마음대로 몰아가는 사람(시간의 주인)을
시간의 자동차에 멍청히 몸을 맡긴채 눈을 감고 조는 사람(시간의 노예)과 비교할 수는 없다.
고들빼기, 씀바귀, 냉이, 달래, 민들레.....
그 줄기기 세어지고 잎이 누렇게 타면서 네게 봄이 저만큼 뒷전으로 물러났음을 알린다.
산나물, 들나물 따라 짙푸르러가는 시간 곁엔 그때그때 골라마시는 차에 맞추어 향을 토해내는 시간도 있다.
엷은 녹색의 찻물 위에 백옥 같은 매화 꽃송이를 띄워 이른 봄을 마신다.
영춘화의 노란 꽃잎이나 진달래의 연분홍 꽃잎이 찻잔에 드면 나의 봄은 바야흐로 만개한다.
그 즈음 갓 움튼 차나무잎, 그 작설의 뾰족한 잎을 우유에 섞어 갈아마시면,
봄은 더없이 싱그러워진다.
흰 감꽃 몇송이가 찻잔에 여름 기운을 드리우는 바로 그때,
인동초의 짙은 단내가 차를 머금은 나를 기쁨으로 설레게 한다. 그러다
가을을 맞으면 나의 녹차 잔은 꽃 박람회장이 된다.
묵직한 국화 송이가 흰빛, 자줏빛, 노란빛으로 알록달록하게 그 자색을 뽐내면
나의 찻잔은 만화방초의 뜰도 부럽지 않다. 그러다
비파꽃의 아릿한 향이 찻잔에 어리면서 나의 겨울은 농익어간다.
차와 함께 짜릿함이 입 안에 번지면 이른 봄이다.
달콤함이 더욱 아기자기해지면 어느덧 여름이
고소함이 자욱해지면 가을이다.
매큼함이 차맛과 어우려지면 바야흐로 한겨울이다.
시간의 색깔이 짙어져감에 따라,
계절마다 피어나는 각종 나물과 꽃이 피어나는 시간마다
더욱더 성숙해져가고, 농익어져가는 그 노년을 과연 어디에 견줄까?
노년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고,
생동감이 넘칠 수 있고,
독립적일 수 있음에 박수를 보내고싶다.
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게되는 곳이기에
이 책을 읽고 희망을 가져본다.
내일의 노년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오늘의 나는 더욱더 행복해지려고 노력할것이다.
노년은
두려움의 시기,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라....
남은 삶들을 이전의 삶들보다 더욱 행복해지기 위해 다시 시작하는
가슴 뛰는, 기대가 되는 제 2막의 삶인 것이다.
아울러,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기막히게 좋은
노년의 삶을 살았음 좋겠다.
고향이 전라도 인 친구가 보내준 글
추천 5
작성일2018-10-01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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