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225쌍의 강제 합동결혼식.. 박정희의 불온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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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돈을 펑펑 썼다. 박 정권의 홍보와 달리, 그는 절대로 검소하고 절제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돈이 많이 드는 술자리에서 최후를 마쳤으며 그런 술자리가 거의 일상화돼 있었다는 사실은 박정희의 씀씀이를 잘 드러낸다.
그는 이성과 술뿐 아니라 조직관리에도 돈을 쏟아 부었다. 일례로, 1973년에는 전두환·손영길에게 진급 축하선물로 크라운 4기통 세단 승용차와 금일봉을 하사했다. 이런 식으로 조직을 키우고 독재를 강화했다. 최태민의 양자이자 박근혜의 재산관리인이었던 조순제의 활동에 관해 그 아들 조용래가 진술한 내용을 담은 <또 하나의 가족-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에 이런 대목이 있다.
"박정희 사후에 조순제가 한 가장 중요한 일은, 박정희가 남긴 돈을 최태민 일가 쪽으로 옮기는 데 관여한 것이다. 금덩어리도 나왔고 달러와 채권 뭉치도 나왔다. 외국 은행의 비밀 계좌에서도 돈이 나왔다."
박정희는 그 많은 돈을 어디서 모았을까? 1972년 10월 유신 전에는 청와대·중앙정보부·공화당 등을 통해 중점적으로 모으고, 유신 후에는 재벌한테서 집중적으로 거뒀다. 이것들 외에 또 다른 방식 중 하나는 노예노동으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현대판 노예노동'이란 표현은 부족하다. 문자 그대로 노예노동이다.
서산개척단은 편의상의 명칭이고, 정식 명칭은 '대한청소년개척단'이다. 박 정권은 부랑아 및 윤락녀 교화란 미명 하에 무고한 이들을 충남 서산에 가둬놓고 간척지 개발사업에 강제 투입했다. 공식적으로는, 노동을 통해 이들을 교화하겠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실상은 강제노동이고 노예노동이었다. 대략 1700여 명이 동원됐다. <서산개척단>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정영철(당시 20세)씨처럼, 대부분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자원한 하용복(당시 20세)씨 같은 이들도 있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이에 대비해 박 정권은 깡패 출신들을 감시원으로 활용했다. 깡패 출신들이 몽둥이 들고 감시하는 속에서 노예노동이 이뤄진 것이다. 올해 1월 정영철씨 외 10명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출한 탄원서에 이런 대목이 있다.
"위와 같은 처사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기도하기도 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집단 구타와 그로 인한 죽음뿐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집단 폭행과 강제노역으로 죽어간 동료들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았고, 저희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묵묵히 강제노역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으며, 오직 생존을 위해 버티면서 곡괭이로 땅을 파서 손수 집터를 닦는 등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 같은 노예노동의 본질은 대가가 없다는 점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3천 평을 받을 거라는 희망을 강제로 주입받았다. 하지만, 돈을 줄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노동을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간척이 완료된 뒤 그 땅은 국유지가 됐고, 이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정부는 1975년경 이후 저희들에게 그 어떠한 통지 또는 협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저희들이 피땀 흘려 개간한 토지를 쥐도 새도 모르게 국유지로 몰수하였고, 저희들은 국유지 몰수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오직 간척지 개간사업에 몰두하였습니다."
"국가는 저희들의 항변을 전혀 듣지 않았고, 오히려 저희들에게 간척지 무단점유를 이유로 임대료를 부과하거나 시세보다 비싸게 20년 상환 방식의 국유지 매입을 권유하는 등 저희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여 저희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습니다. ······ 온갖 억압과 학대를 견디면서 단 한 푼의 노임도 받지 않고 약 20년 동안 폐염전에 불과한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한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사안이었습니다."
이런 노예노동이 여기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전국적 현상이었다. 시사회장에서 기자간담회용으로 배포된 자료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은 미국 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을 지원하고 이 나라 기업들의 동아시아 활동을 보호하는 대가로 잉여농산물 원조를 받았다. 이 원조는 미국 공법(Public Law) 제480호 '농업수출진흥 및 원조법'에 입각한 경제원조라 하여 'PL-480 원조'로 불린다. 이 원조를 받으려면, 경제자립을 위한 자조 노력의 의지를 보여줘야 했다. 서산개척단 문제에 관해 국민권익위원회가 2011년에 의결한 결정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6년 3월경 최초로 PL 480 관련 협정을 체결한 후 1980년대 초까지 관련 협정 또는 수정 협정을 체결하여 미국 잉여농산물(소맥·옥수수·원면 등)을 도입하였고, 각 협정의 자조 조항에 따른 이행의 단계에서 자조 조치의 한 유형으로서 식량 증산을 위한 농촌 개발 및 영세농가 안정화 등 각종 자조 활동을 전개하였다."
식량증산을 위한 농촌개발을 통해 대한민국 스스로 경제자립을 도모하겠다며, 박 정권이 미국 정부에 보여준 자조 노력이 서산 간척을 비롯한 전국적 간척 사업이다. 미국에서 농산물을 받아 환전할 목적으로 간척사업을 벌였던 것이다.
그런데 돈을 주고 간척 노동자들을 고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멀쩡한 사람들을 부랑아 명목으로 붙들어놓고 강제노역을 시켰던 것이다. 그러고는 미국한테 경제원조를 받고 그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전용했던 것이다.
국민들을 노예노동에 동원해 정치자금을 만드는 정권은 현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이런 식으로 조성한 정치자금을 바탕으로 박정희는 친위세력을 구축하고 독재정치를 연장했다.
그런데 박정희는 서산개척단 사업에서도 친일파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가 이 사업을 통해 자금을 만드는 방식은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백성들을 동원해 돈을 만드는 방식과 아주 흡사했다.
박 정권과 하수인들은 납치된 여성들과 강제동원된 남성들을 한 방에 몰아넣었다. 그런 뒤 짝짓기를 했다. "너는 얘랑 결혼해!"라는 식이었다. 이의를 제기하면 몽둥이를 들었다. 이런 식으로 강제결혼 한 커플이 225쌍이다. 서산과 서울에서 이들의 합동결혼식이 거행됐다.
작성일2018-05-22 00:52
유구유언님의 댓글
유구유언수구세력의 집단, 일베충
아직도 그런 더러운 넘들의 적폐청산하려면 -- 너무 오래 기다렸는데 ---.
소름이 돋는다.
zaqw님의 댓글
zaqw퍼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