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설, 비방, 광고, 도배질 글은 임의로 삭제됩니다.

슬픔

페이지 정보

목멘천사

본문

슬픔으로 가는 길 - 정호승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갈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

슬픔 - 왠지 모르게 가슴이 무거워 막걸리 마시고싶은 이상한 남자

유년의 슬픔은 주로 엄마에 대한 것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내 옆에 있어야할 엄마가 없거나
해가 져서 어둠이 온통 나를 감싸는데도 엄마가 돌아올줄 모른다던가.
세상의 슬픔은 온통 엄마와 겹치고 연결이 되어있었다.

조금 철이드니 엄마는 내 슬픔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눈 내린 아침의 첫 발자욱
해 질녘 노을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구름 몇 조각
집 나간 바둑이의 맑고 까아만 눈동자에 대한 기억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던 작은 것들에게서 슬픔을 보았다.

세상을 나 혼자 겁없이 돌아 다닐때 쯤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영화속에서 혹은 소설속에서
가슴 속에서 새때처럼 날아다니는 무거운 시들의 언어들 속에서
청춘을 적시며 슬픔이라는 놈의 무게를 제법 느끼고

내가 세상을 조금 알았다고 우쭐될 쯤
사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흔들리는 내 나라의 현실과
사는게 무엇인가 하는 상념속의 허잡한 철학과
신과 나 사이의 막혀있는 벽을 무너트리고 싶은 무모함 
현실을 떠나 하늘위를 둥둥 떠도는 理想을 깨달음에 슬픔을 보았고

세상을 어깨에 지고 삶이라는 길을 혼자 걸어야만 살아남을수 있는 고해의 바다를 알고나서는
문득 가슴에 남아았는 슬픔을 일부러 꺼내어 보기 전에는 슬픔이 있었나 할정도로
슬픔은 빛바랜 기억 속 저편에서 먼지를 곱게 뒤집어쓴 파스텔화처럼 
내 기억의 메마른 깊은 동굴속 어디쯤 걸려 있었다.

세월이 더 많이 흘러 내 슬픔들을 돌이켜 천천히 앨범속의 옛 사진처럼 살펴보니
슬픔과 슬픔속에 슬픔보다 더 아리고 시린 슬픔이 숨어 있음이 이제야 보인다.

잃어버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숨어 있었을줄 정말 까맣게 몰랐다
다시 찾기에 너무 늦었음으로 아프지만, 많이 아프지만
다시는 꺼내 볼수없는 가슴 속 저 아래로 깊이, 아주 깊이 묻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