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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지 않은 지도, 누가 가져왔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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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충렬 지음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오마이뉴스 박도 기자]

 유엔 아프가니스탄 인권 특별보고관 재임 중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 앞에서 백충현 교수의 망중한 모습.
ⓒ 백영진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어떠한 사람의 죽음도 나를 축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누가 죽었기에 조종이 울리는지 알려고 결코 사람을 보내지 말라.
조종은 너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까.)

영국 시인 존 던(John Donne)의 '명상 17' 한 대목이다. 존 던은 이 시에서  좀 더 큰 눈으로 이 세상을 보면, "사람은 인류의 한 분자로 모든 사람의 삶은 서로 연결돼 있다"고 읊고 있다. 존 던은 심지어 낯모르는 사람의 죽음까지도 곰곰이 따지고 보면 자기 삶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세상은 그물코처럼 얽혀 있다. 이것은 내가 70여 년 간 살아오면서 터득한 진리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지난 세월도 언저리의 숱한 사람들의 인연으로 이어왔고, 앞으로도 나는 이 인연의 굴레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표지
ⓒ 김영사
지난 4월 하순, 한 제자(백영진)로부터 책을 한 권 우송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때 나는 장편소설을 집필한다고 오대산 월정사 명상관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달 뒤 집에 와보니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이란 책이었다. 이충렬 작가가 쓴 제자 아버지의 전기였다.
그때 나는 막 '한국전쟁, 그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복원'이라는 한국전쟁 비망록을 곧장 두 매체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책을 그대로 서가에 꽂아두고는 그 연재가 끝난 뒤에 읽기로 했다. 엊그제 그 연재가 끝났기에 비로소 서가에 꽂아둔 이 책을 폈다.

꼭 10년 전인 2007년에 서거한 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장 백충현 교수. 그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동료들이 판검사로 입신양명을 꿈꿀 때 홀로 국제법학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연구하는데 매진하여 국제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그는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명백히 밝히고자 일본인이 만든 지도 발굴에 나섰다.

'...1997년 8월 중순, 일본 도쿄에 있는 고지도 전문점 중경당의 주인 이마이 데츠오(今井哲夫) 씨로부터 국제전화가 왔다.<관판실측일본지도>(官板實測日本地圖)가 매물로 나왔으니 구입 의사가 있으면 와서 직접 보라는 내용이었다. 백 교수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출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때부터 백 교수는 지도 값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의 월급은 서울국제법연구원 운영비로 들어가기 때문에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튿날 일본 도쿄 중경당에 이르자 데츠오 사장은 백 교수를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사무실 안쪽 방에서 네 권으로 된 푸른색 표지의 <관판실측일본지도>를 들고 나왔다.

"백 교수님, 이 지도가 바로 백 교수님께서 찾으시던 <관판실측일본지도>입니다. 이노우 다다타가 선생이 17년간 전국을 다니며 실측한 일본 최고의 관찬 지도입니다. 일본 정부에서는 이 지도를 한국인이 소장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서점을 처음 시작하신 아버님으로부터 귀한 지도는 그 가치를 알고 꼭 필요로 하는 분에게 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백 교수님에게 연락을 드린 겁니다." - 이충렬 지음 김영사 간행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219~220 요약정리

사실 나는 한 법학자의 평범한 전기인 줄 알았는데, 우리 현대사와 직결되는 아주 귀중한 책임을 뒤늦게 깨닫고, 모처럼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백 교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지도를 한 권 한 권 펼쳤다. 메이지대학교 박물관에서 보았던 판본과 같은 지도였다. 경상도 지방의 산 이름도 표기되어 있었지만 그 오른쪽에 울릉도와 독도는 없었다. … 한 장의 낙장(落張)도 없는 완벽한 지도였다.

백 교수는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표기하지 않은 이 지도가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결정적 단서'이고, 이로써 독도 영유권 분쟁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아직 기뻐하기는 일렀다.

"데츠오 사징님, 이 지도의 가치를 어느 정도로 평가하시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데츠오 사장은 백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백 교수님이 아시다시피 이 지도는 일본 최고의 권위가 있는 관찬 지도이고 다케시마 영유권 문제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지도가 매물로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는 <관판실측일본지도>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이 지도가 그의 서점에 매물로 나온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그의 신용과 실력 때문이었다. 그는 한참 뜸을 들인 뒤 말했다.

"백 교수님, 고심 끝에 이 지도의 가치를 1,000만 엔으로 책정했습니다."

당시 환율로 1억 원이었다. 그 며칠 후 백 교수는 <관판실측일본지도>를 앞에 두고 데초오 사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바로 하네다공항으로 향했다. 언젠가 일본은 또 다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것이다. 백 교수는 그때 <관판실측일본지도>를 기초로 논문을 발표해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리라고 생각하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앞의 책 220~228 요약정리

이처럼 그는 국제법학자로서 역사의 뒤꼍에서 평생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살다가셨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상에서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문세광 사건이 발발했을 때, 그는 국제법학자로 일본의 책임을 조목조목 추궁케 하여 당시 내한한 일본 자민당 시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부총재 진사 사절단의 정중한 사과를 받아냈다.

 일본 고서점에서 한국 독도 관련 자료를 찾고 있는 3인의 한국인 학자(맨 앞에서부터 백충현 서울대 교수, 김덕주 국립외교원 교수, 이태진 서울대 교수).
ⓒ 백영진

1983년 중국여객기 한국에 불시착한 것을 그의 조언에 따라 원만히 처리케 하여 한중 두 나라 관계를 개선케 하는 디딤돌을 놓았다. 또한 그는 국제법 불모지인 한국에 서울 국제법연구원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온 힘을 쏟았다.

그는 재일동포와 종군 위안부 문제에도 깊이 천착하여 그들의 법적 지위 향상에 이바지 하였으며, 프랑스 측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힘써 마침내 프랑스 정부로부터 그 도서를 반환받을 수 있었다.

그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35년간 근속 정년 퇴직한 뒤에도 외교통상부 국제법자문위원장으로 독도 문제를 더욱 집중 연구하는 등, 국익을 위한 외교통상부 국제법 자문에 이바지하다가 2007년 뇌종양 제거수술 후유증으로 영면하였다.

2010년 정부에서는 고 백충현 교수에게 독도 영유권 수호 유공자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하였고, 이듬해에는 '외규장각 의궤 반환에 기여한 주요 인사'로 선정했다.

아시아국제법학회, '백충현상' 제정

 아시아국제법학회 학술대회에서 개최한 제1회 '백충현상' 수여식장에서 수상자 유족들과 고 백충현 교수 부인 이명숙 여사(가운데)의 기념촬영(2017. 8. 26. 롯데호텔).
ⓒ 백영진

2007년에 설립된 아시아국제법학회는 2년마다 정기 학술대회를 개최한 바, 2017년 제6차 대회는 서울 롯데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대회부터 국제법 교육과 연구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서울대 대학원장, 법대 학장을 역임한 백충현 교수를 기리기 위하여 '백충현상'을 제정하였다.

백충현상 첫 수상자로 △인도 출신 아난드(R.P. Anand) 전 자와할랄 네루대 교수 △필리핀 출신 펠리시아노(Florentino Feliciano) 전 세계무역기구 상소기구 재판관 △중국 출신 왕티에야(Wang Tieya) 구(舊) 유고전범재판소 판사 △스리랑카 출신 위어라만트리(C.G. Weeramantry) 전 국제사법재판소 판사 등 4명을 선정했다.

이분들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 국제법학계를 주도하고 최근 작고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생전에 백충현 교수님을 두어 번 뵌 적이 있었다. 여느 대학의 과묵 온화한, 한 평범한 대학교수로만 알았는데 그런 큰 일을 하신 분인지는 미처 몰랐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분은 "강은 깊을수록 고요하다"는 금언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참 애국자'로 새겨졌다. 그분의 전기인 이충렬 지음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을 첫 장부터 끝장까지 나는 모처럼 뜨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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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7-10-04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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