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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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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멘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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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연애 시 - 서동욱

오랜만에 만난 애인은 목감기가 심하다 
수첩을 꺼내 ‘난 인어공주예요, 말을 못 하니까’라고 쓴다 
그러곤 벙어리로 가장한 사기꾼처럼 웃는다 
말 못하는 게 인어공주뿐일까? 
한보 정태수 회장도 창살 뒤에서 이렇게 필담을 즐겼거늘 
테이블 밑으로 가만히 발끝에 걸어 치마를 들어 올리자
난생 처음 바다에서 걸어 나와 해변에 아프게 서 있는 인간의 다리…
저 다리가 처음 허리를 감던 날 
나는 뱃전에서 주정하다 물속으로 곤두박질친 뱃사람, 반쯤 목숨을 놓아버리자 
팔이 목에 휘감기며 물 표면으로 끌어올려져 하푸, 가쁘게 숨을 들이켰었지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땐 해변에 누워 처음 보는 여인의 젖꼭지를 쓰다듬고 있었다…
여관들이 간판에 하나둘 불을 넣는 이 저녁의 맹한 카페 창문
갑자기 다시 수첩에 쓴다 ―‘눈이다!’ 
고개 들자 수만 송이 새하얀 물거품은 바닷속에 남아 손 흔드는 그녀의 자매들 
‘잘 지내고 있지?’ 창문에 부딪쳐 잠시 이승의 막내와 필담을 나누고는 
이내 물결에 실려 광화문 네거리로 헤엄쳐 간다.

++

연애 시 (詩) - 나이 팔십을 카운트다운 하다 갑자기 목이메인 불쌍한 남자

연애 詩라 제목을 붙이고
한때는 아름다웠던 사랑 詩라 쓰겠다

눈이 시리도록 아프던 이별 詩라 쓰겠다
전설처럼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추억 詩라 쓰겠다.

오늘 처럼 차가운 겨울 밤에는
눈물 詩라 쓸 것이고

한때는 불처럼 뜨거웠던
욕정(欲情)의 詩라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