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설, 비방, 광고, 도배질 글은 임의로 삭제됩니다.

당신의 당신

페이지 정보

목멘천사

본문

당신의 당신 - 문혜연  (2019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새들의 울음은 그들의 이름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갖게 될까요
원래 인간은 제 이름보다 남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는 종이잖아요
나는 당신의, 당신은 나의 이름을
새들에게 우리는 우리일까요

우리를 대신할 말을 찾아요
수많은 단어들이 사라져요
뻐끔거리던 입술들이 짝을 짓습니다
입술을 부딪치며, 서로에게 옮아가는 인간들
새들은 인간과 상관없이 날아다닙니다
새들은 새들이고, 우리는 우리입니다
부리를 부딪치는 새들은
정다운 만큼 가벼운가 봐요

자신을 닮은 사람을 세 번 만나면 죽는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어요
지렁이와, 지렁이 모양 젤리
그걸 공포라 할 수 있나요
머리와 꼬리를 알 수 없는 젤리는
달콤하고 모호한, 주인모를 관계들
우리는 점점 닮아 가는데
누가 누굴 닮은 건지 모를 때는
어떻게 할까요, 당신은 지금
2%의 당신 자신과, 98%의 당신의 당신
순도 높지 않은 당신, 그리고 나
끝 모를 바닥으로 가라앉아요

새들은 언제나 아득한 높이에서 웁니다
그림자도 생기지 않을 물에는
새의 밑면만 지나갑니다
깊이 가라앉은 바닥, 그곳에서 우리는
떠오를 수 없는 낮은 음, 낮은 울음

새들의 이름은 그들의 인사가 됩니다
우리의 울음도 우리의 내일이 될까요
안녕, 당신, 안녕
유언 같은 안부를 주고받아요
우리는 새들의 세계에서도, 서로의 이름만 부르고
인간은 역시, 새들에게는 이해받을 수 없나봅니다

++

나의 너 혹은 너의 나 - 초저녁 술마시고 목메어서 꺼이 꺼이 울랑 말랑 하는 이상한 남자

이제 해 지고 절망같은 어둠이 세상을 덮으니 항상 수채화같이 투명한 웃음을 흘리던 
네 얇은 입술같은 바람이 내 입술을 스치운다.
  
그 바람은 이제 너처럼 찬 것같기도 하고 아직 나처럼 뜨거운 것 같기도 하다. 

아직 걸어가야할 나의 밤은 멀고 내게는 그리움 처럼 아득한 너의 새벽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음에
나는 不眠의 꿈속에서 너의 긴 목을 혀로 핥으며 너의 찬 숨결에서 퍼지는 忘却의 냄새를 맡는다.

나는 아직 그 봄의 아픈 기억을 가슴에 저장하고, 지난 여름의 뜨겁고도 아픈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그리움처럼 차갑기도 하고 뜨겁기도 한 아주 이상한 감정의 덩어리들을 품고 있는데

너는 아직 그때 그 자리에 서서 안녕이라 말을 차마 안하고 하늘의 별을 눈을 감고 처다본다,
바람이 흐느적 대는대로 흐느적 거린다, 현실처럼 밝게 빛나는 달로 변한다.

나의 너는 이제 무심히 길을 떠나는 바람이며 구름이며 흐르는 물이 되었지만
너의 나는 네가 그리울때 마음껏 그리워 할수있는 가난한 보우헤미안이 되어간다, 혹은 되어가고 싶다.

나는 너의 너무 오래입어 싫증이 난 낡은 옷, 아니면 그 옷을 닮은 음악
너는 나의 오랜 시집 속 시인, 아니면 그 시인의 노래

너는 이 밤에 이곳에 없는데 나는 이곳에 이 밤처럼 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