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의 두 사건 -2019/3/23 해 산
페이지 정보
유샤인관련링크
본문
< 경제사의 두 사건 >해방 후에 단행된 “토지개혁”과 1972년의 “8.3 경제조치”는 한국 경제사에서 가장큰 영향을 준 두 개의 사건이라 하겠다.<제1화 토지개혁>일본으로부터 해방된 후에 남과 북은 각기 천지개벽할 정도의 큰일인 토지개혁을 단행하였다.
남쪽은 1950년에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하고,
북쪽은 남한보다 먼저 1946년에 무상몰 수 무상분배를 하였다.
그러나 북은 말로만 무상분배이지 다시 집단화시킴으로써 사실은 분배 없는 몰수뿐이었다. 그리고 지주들의 거주지를 대폭 이동시켰다. 때문에 유산자를 포함하여 100여만 명의 북쪽 사람들이 대거 남하하였다. 그 당시 북한의 인구는 천만 명이었다. 북한은 이를 일제 잔재의 청산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남한에도 불평은 있었다. 지주들은 토지 대금을 한꺼번에 받아야 이를 산업자본이나 상업자본으로 바꿀 터인데, 일시불이 아닌 지가 증권으로 받고 그것도 분할 상환으로 여러 번에 걸쳐 나누어 받으니, 상실감과 불만이 어찌 없었겠는가. 하지만 남한의 토지개혁은 오래 내려오던 신분사회를 평등사회로 변화 시킬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마련하였고 농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산당의 선전을 차단시켰다.
반면에 북한은 토지를 집단화시킴으로써 소유욕을 자극하지 못하여 효율적인 생산성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해방 후 남북 모두 토지개혁을 하였는데 남한은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하였고 북한은 무상몰수 국유화를 하였다.
당시 남한의 대통령은 이승만이었고 북한은 김일성이 지배하였다.<제2화 " 8.3 조치 ">1972년 8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이 단행한 기업의 사채동결 조치를 " 8.3 경제조치 "라고 한다.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당시엔 국민들이 저축할 여유가 없었으므로 은행에는 빌려줄 돈이 부족하였고 사채업자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기업을 운영하려면 사채업자로부터 고율의 돈을 빌리지 않고는 사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의 대기업인 현대, 삼성, LG와 같은 기업들도 그땐 사채에 크게 의존하였다. 사채업자들의 세력은 크고 막강하였다. 이런 중에 박정희 대통령은 기업을 살리려면 사체부터 해결하여야겠다고 판단하고 1972년 8월 3일 전격적으로 사채동결 조치를 발표하였다.
이는 분명히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조치였다. 사채업자들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빼앗은 것이다. 여론은 독재라며 비난했고, 저항도 심했다. 사회는 심히 혼란스러웠다.
그끝에 탄생한 것이 유명한 1972년 “10월 유신”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사채업자들에게 은행에 돈을 넣고 기업에 투자를 하면 돈의 출처를 묻지 않고 세금도 감면해줄 것이라고 했고, 기업가들에게는 회사를 많이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하면 세금 혜택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을 지켰다.
이렇게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 그 결과, 지하에 숨어 있던 돈은 은행으로 들어갔고, 기업의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크게 늘어났으며 경제는 급상승하기 시작하였다. 단기간 내에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 무렵에 형성된 것이 30대 기업집단이다. 우리나라의 재벌은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탄생하고 성장하여 대한민국의 경제에 꽃을 피웠다.
1973년의 1차 오일 쇼크로 전 세계가 성장을 멈추고 하향하였으나 한국의 기업들은 오히려 계열사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8.3 경제조치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는 발전시켰지만 독재정치는 잘못이라고 비난을 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독재가 아니었다면 과연 사채업자들의 횡포를 막을 수 있었겠는가, 또 놀랍고 과감한 경제조치를 누가 감히 취할 수 있었겠는가? 화살 하나로 두 개의 과녁을 맞힐 수 있는가?
역사에는 만약이란 없다. 하나의 결과만 있을 뿐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내 무덤에 돌을 던지라고 하였다. 지금 그 무덤에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인류를 발전시키는 것은 다수의 군중들이 아니라 소수의 천재들이다. 우리 경제는 구호로 이룬 것이 아니라 희생과 땀 흘려 이룬 것이다. 공짜는 없는 것이다.
8.3조치는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이나, 애국심과 강력한 지도력에 의해 성공한 비상조치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여 이 경우는 독재가 나라를 구한 경우라 하겠다.
2019/3/23 해 산
추천 0
작성일2019-04-02 16:28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