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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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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멘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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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 / 오탁번

감곡에 사는 여자들이
꽃 피는 원서헌에 놀러왔다
국수 말아 점심 먹고
술기운이 노을빛으로 물들 때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다

내 옆에 선 여자가 살갑게 말했다
-이래도 되죠?
내 팔짱을 꼭 꼈다
-더 꼭!
사진 찍는 여자가 호들갑을 떨었다

이럴 때면 나는
마냥 달콤한 생각에
폭 빠진다
-나랑 사랑이 하고 싶은 걸까

헤어질 때
또 팔짱을 꼭 꼈다
나는 살짝 속삭였다
-나랑 동침(同寢)이 하고 싶지?

속삭이는 내 말을 듣고
그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치미 먹고 싶으세요?

허허, 나는 꼭 이렇다니까

++

-가령.. 내가 너를 지금 만난다면

가령
내가 너를 지금 만난다면

여인숙으로 들어가던 그 추운 골목길에서
내 손을 꼭 잡던 너의 뜨거운 그 손을 기억이나 할까

여인숙 앞 공중전화에서 집으로 전화를 해야 한다며
발만 동동 구르던 너의 안타까운 작은 가슴이 생각날까

떨리는 손으로 숙박계를 쓰던 내 앞에서
고개만 숙이고 애꿋은 이불만 돌돌말던 너의 어색함을 생각할까

겉옷을 벗을까 말을까 망설이던
너의 갈등과 결심에 찬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을까

그 추운 긴 긴 밤을
소주 한 잔에 의지하여 내 눈만 처다보던

너의 그 깊은 눈동자속에 비치던 내 눈동자를
조금이라도 기억을 할까

아니
가령..내가 지금 너를 만난다면

나를 지금 만난 너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이나 할까

혹시
너와 나는 지금이 꿈이라 생각하지는 않을까

헛 꿈이라 생각하며
그저 무심히 서로를 지나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