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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내 가난한 발바닥의 上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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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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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내 가난한 발바닥의 上疏
忠犬이란 주인님 심기 섬세히 살피되 그른 길 가면 짖어댈 수도 있어야
주변에 쓴소리 충신 떠나고 찬가 부르는 이들만 북적이니 불행의 징조라백성은 한해 넘길 양식이 없는데
20년 권력을 누린다 하니 개들도 웃네

내 이름은 해피, 진돗개 암놈입니다. 다섯 해 전, 북악산 기슭 오래된 기와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우리 오 남매를 한꺼번에 낳았는데, 집주인은 아직 눈도 못 뜬 우리를 이웃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잘생긴 강아지들은 처음이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두 살 때인가, 새 주인이 벼락처럼 이사 오면서 우린 천덕꾸러기가 됐습니다. 산
벚꽃 흩날리는 뒷산에서 친구들과 뜀박질하다 돌아오니,
엄마 오빠 언니들은 간데없고 새 주인이 데려온 개들이 대청마루 밑을 차지하고 있더군요.
어슷비슷한 혈통이라 내쳐지진 않았으나, 저의 눈칫밥 견생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눈칫밥 먹는 것이 꼭 서러웠던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개 노릇의 구 할은 눈치!
무엇이 주인을 기쁘게 하고 괴롭히는지 재빨리 알아차려야 충견이 될 수 있지요.
사람들은 남의 눈치 잘 보는 사람을 비겁하다 여기지만, 그건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부모의 눈치를 잘 살펴야 효자가 되고, 고객의 눈치를 헤아려야 히트 상품이 나오지 않던가요.
지체 높은 분일수록 더욱 민첩해야 합니다. 아랫사람들이 왜 슬퍼하는지, 왜 분해하고,
허탈해 하는지 낯빛만 보고도 척 알아차려야 난세를 헤쳐나갈 수 있지요.
우리 새 주인님도 처음엔 눈치가 빨랐습니다. 송아지 같은 눈망울로 구석구석을 살폈지요.
 
한데 언제부턴가 방에 앉아 있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오가는 친구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인데 하나같이 눈치 없는 사람들입니다.
엄마 배 속에서부터 따라 부른 노래를 부르지 마라며 눈알을 부라리는 분,
남의 집 자식 더듬어놓고 제 아버지한테 죄송하다며 고개 조아리는 분, 찬스란 찬스는
 다 써놓고 난 억울하다며 기타 치고 노래하는 분, 날만 새면 산발한 머리를 메가폰에 박고 배후를 밝히라 외치는 분,
 1 더하기 1은 2라고 했을 뿐인데 감히 뉘 앞에서 소설을 쓰냐며 호통치는 분. 세상 깨끗한 척이라도 안 하면 좋을 것을.
생선 내장에 달려드는 새 떼처럼 먹을 것 앞에서 그토록 채신머리없는 분들도 처음 보았습니다.

텁텁한 공기에 현기증 날라치면 담장을 뛰어넘어 세상 구경을 나갑니다. 자고로 개란 세상의
 온갖 진창을 뒹굴고 또 달리며 네 개의 발바닥에 단단한 굳은살을 박고 살아야 하는 법.
한데 마실의 즐거움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역병으로 거리가 텅 빈 탓입니다. 보이는 거라곤,
아파트 공사장에서 때에 전 목수건을 질끈 동인 채 비지땀을 흘리는 막일꾼들뿐.
시래기처럼 누렇게 뜬 얼굴로 막걸리를 들이켜던 늙은 남자가 탄식합니다. ‘하늘이 노했는가, 천지에 재변이 끊이지 않고 나라엔 소인이 득세하네, 없는 사람 편이라더니, 백성들 화급한 살림살이엔 오불관언,
똘똘한 한 채에 서캐처럼 달려드는 고관대작들만 득실하니,

남의 집 짓느라 육골이 문드러진 나는 이 한 몸 누일 방 한 칸이 없네.’ 밥집 아주머니의 한숨도 깊습니다.
‘만민이 지화자 부르며 태평성대 누리게 한다던 말 믿었더니, 온갖 죄 엮어 사람 잡아가느라 나라가 시끄럽고, 우리네 부엌엔 서리만 쌓이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느 집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음악 소리에 발을 멈춥니다. 엄마가 좋아했던 피아노 소리입니다.
폭풍 몰아치는 밤에도 엄마 품에 안겨 있으면 무섭지 않았는데, 다들 어디로 간 걸까요.
어둑해진 골목길을 두 남자가 걸어갑니다. 고단한 하루였는지 어깨가 축 늘어졌습니다.

 “시무 7존가 8존가 하는 거 봤어? 구구절절 사이다더군. 공사판 떠돌던 사람이래. 골통에 먹물 든 것들은 뭐 하고 쯧쯧,
국민은 한 해 넘길 양식이 없는데 권력에 취해 20년을 더 누리겠다니 도적이 따로 없지.”
세상을 호령하던 권세가들이 화무십일홍으로 영락한 건 백성들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엄마는 말했습니다.
개만도 못한 눈치로 세상을 오판하고 편 가르는 자들이 많으면 집안도 나라도 망한다고,
그래서 짖고 또 짖었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고요.

그러고 보니 우리 새 주인님에겐 쓴소리하는 친구가 없습니다. 머리가 깨진 사람들만 모여 연일 찬가를 부릅니다.
비록 더부살이 신세이나 충견의 도리를 다하려면 저라도 짖어야 할까요.
이제라도 중생을 살리는 활인검 찾아내시어 썩고 무능한 이들을 도려내라고,
그래야 주인님 그토록 원하던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이 온다고,
그래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이 아귀다툼의 시대를 끝낼 수 있다고, 컹컹!

이 글은 김훈의 소설 ‘개,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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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9-01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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