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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부장 등 정치망명자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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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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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인사관리에 매정했다.

아무리 가까운 동지라도 용도가 끝났다 싶으면 거침없이 폐기했다. 쿠데타 동지들 중에 다수가 반혁명의 누명을 쓰고 제거되고, 남로당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은인’들도 버렸다. 김종필ㆍ김성곤ㆍ윤필용 등 최측근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대표적인 인물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김형욱은 6년 동안 지켜온 중앙정보부장직에서 밀려나자 박정희에게 보복하고자 하는 복수심에서 미국 망명을 택했다.

김형욱은 3선개헌과 이른바 동베를린 간첩단사건 등 각종 악역을 맡아 박정희에 대한 최고의 충성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해임이 예상되자 이에 앙심을 품고 미국망명을 치밀하게 계획하여 이를 실천에 옮겼다. 김형욱은 정보부장으로 있으면서 언젠가 해임에 대비하여 미국 뉴저지주에 당시 시가로 27만 달러짜리 고급 저택을 마련하고 부인과 두 아들과 딸을 먼저 미국으로 보내놓고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기회를 노리던 김형욱은 1973년 4월 15일 대만의 학술원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슬그머니 김포공항을 빠져나가 망명길에 올랐다.

그는 공화당의 전국구의원 5번으로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박정희가 언제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목을 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었다. 누구보다 박정희 권력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형욱이 얼마나 많은 돈을 반출해갔는지는 여전히 비밀에 속한다. 그러나 미하원 프레이저위원회가 나중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의 재산규모는 1천 5백만 달러 내지 2천만 달러에 이른 것으로 밝혀졌다. 뉴욕은행에 450만 달러가 정기예금되어 있었고 스위스은행에도 정보부장 제직시에 거액을 맡겨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도착한 김형욱은 초기 2년여 동안은 외부와 담을 쌓고 지냈다. 그가 즐긴 소일거리는 라스베이거스나 파리의 카지노 출입과 골프, 그리고 가족끼리의 세계여행이 전부였다.

그러던 김형욱이 1976년 초부터는 칩거생활을 끝내고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국제관계 소위원회에 박정권의 비리, 즉 박동선 사건의 내막을 알리는가 하면, 미의회의 청문회에 나서고 미국과 일본의 유력한 매스컴과 회견하는 등 적극적인 반박정희 활동을 벌였다.

김형욱은 1979년 10월 초 파리에서 의문의 실종사건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의 실종사건은 지금까지 하나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는데, 한국 정보부 요원에 의한 현지암살 또는 강제납치살해 등의 의문이 따르고 있다.

김형욱의 망명을 전후하여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김상근씨가 미국에 망명한 것은 1976년 11월 24일이다. 5ㆍ16 직후인 61년 7월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김형욱 부장의 비서관으로 일한 적도 있는 김씨는 70년 일등서기관의 직함을 갖고 주미대사관에 근무발령을 받은 다음 76년 참사관으로 승진했다.

김씨가 미국에서 맡은 임무는 교민들의 반정부적 활동을 봉쇄하고 유신지지로 유도하는 일이었다. 그는 특히 75년 8월부터 한국 정부로부터 ‘백설작전’이란 비밀임무를 부여받는다. 이 작전은 미국 내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나 학자들을 포섭하여 박정희 지지로 여론을 유도하는 임무였다. 그러나 유신체제의 인권탄압과 부패문제 등으로 미국의 여론이 극도로 좋지 않을 때였기 때문에 김씨의 임무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한국 정부는 그를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본국 정부의 소환명령을 받은 그는 정치적 보복이 두려워 미국 FBI에 망명을 신청하게 되었고, FBI로부터 보호와 생활비를 받으면서 77년 10월에는 미하원 윤리위원회에 나타나 ‘백설작전’의 진상을 폭로하고 박정권의 치부를 들추어내는 등 반정부활동을 계속했다.

뉴욕총영사관 손호영 참사가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것은 77년 9월 16일이다. 손씨의 공식직함은 뉴욕 총영사관 참사관일 뿐이고 실제 신분은 뉴욕지구 KCIA 책임자였다. 그는 한국 정부로부터 김형욱을 귀국시키거나 최소한 미의회 증언을 막도록 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김형욱의 반정부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고 손씨는 귀국명령을 받았다. 귀국 후의 엄중한 문책을 두려워한 그는 FBI 요원들에게 망명신청을 하게 되었고, 망명선물로 <1976년 대미공작 계획서>라는 한국정부의 비밀 대미 로비활동 계획서를 프레이저위원회에 넘겨주었다.

주미공보관장 이재현 씨가 미국에 망명신청을 한 것은 73년 6월이다. 70년부터 주미공보관장직을 맡고 있던 이씨는 재직중에 유신을 맞아 한국 정부로부터 유신체제 지지를 적극 홍보하라는 훈령을 받았다.

이 훈령은 독재체제인 유신의 지지를 위해 일반 외교관의 활동영역을 넘어서는 각종 불법공작을 벌이라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가뜩이나 미국사회에서 인기 없는 유신체제를 홍보하고 여기에다 불법공작 임무까지 부여받은 이씨는 한국 정부의 공작지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따라 그의 행동은 감시를 받았고, 언제 소환될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되어 결국 망명을 택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에 정치망명을 택한 이씨는 일리노이 대학에서 준교수로 재직하면서 비교적 조용히 지내다가 77년 10월 미하원 윤리위원회 청문회에 나가 의회의원 매수 공작 등 불법 로비활동 사실을 증언하는 등 반정부 활동에 나섰다.

70년대 중반 미주 지역의 한국공관은 잇따른 공관원 망명사건으로 긴장되고 있었다. 이재현ㆍ김상근ㆍ손호영과 더불어 73년 5월 주미 공보관 직원 한혁훈이 한국의 유신 쿠데타에 반대의사를 밝히고 사표를 제출, 미국에 영주권을 신청하였다.

또 73년부터 75년까지 주미공보관에 근무한 김성한은 한국 정부의 마닐라 전근발령에 반발, 가족과 함께 미국에 영주권을 신청했다. 김씨는 사직 후 반정부 활동을 벌였다.

뉴욕대표부 지역책임자 이영인은 77년 귀국 명령을 받고 미국에 영주권을 신청한 바 있고, 캐나다 주재 한국대사관 양영만 영사는 78년 한국 정부로부터 캐나다 지역의 반정부적 교민활동에 강경하게 대응하라는 훈령을 받고 이를 거부, 망명을 선택했다.

고위 군 출신 인사들이 권력투쟁에서 패배하거나 쿠데타사건에 연루되어 정치적 망명을 택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인물에는 최덕신ㆍ최홍희ㆍ최석남ㆍ이용운ㆍ김응수를 들 수 있다. 예비역 육군중장 출신으로 박정희 정권에서 외무장관과 주서독대사 등을 지낸 최덕신은 주서독대사 재직시 불미한 사건 등으로 박 대통령과 틈이 벌어지더니 74년 초대 유신학술원 이사장에 임명되었으나 이에 불복, 미국 망명을 택했다. 최덕신은 반정부 활동에 그치지 않고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최덕신과 함께 미국에서 ‘배달군인회’를 조직하여 반정부활동에 앞장선 최홍희는 예비역 소장 출신으로 주말레이지아 대사를 지내다가 미국에 망명했다.

예비역 육군준장 출신인 최석남은 70년대 초 미국에 망명하여 반정부 리더의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5ㆍ16쿠데타 당시 6군단장으로 쿠데타에 반대하다가 62년 미국에 망명한 김응수는 워싱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워싱턴 카돌릭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김씨는 5ㆍ16 후 반혁명사건으로 기소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62년 5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어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어 망명을 택한 군인 출신이다.


김형욱은 1963년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에 취임해 6여 년이라는
역대 가장 오랜 재임기록을 세운 인물로, 재임기간이 말해주듯 박정희의 최측근이었다

추천 2

작성일2020-09-16 15:44

zenilvana님의 댓글

zenilvana
김형욱은 어째 됐던 배신자다. 권력자는 반드시 측근 인사를 잘 관래해야 한다. 그가 정보부장 시절에 수천만불을 착복했으나 당연히 제거대상이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박대통을 씹는 대담을 할 정도의 멍청한 인간이다. 자기가 뭔데? 그런 중임을 맡겼던 데에 박통의 인물판단에 잘못이 있었다.

한국 풍토에 제대로 된 인간이 드물기도 하고, 그들을 골라내는 데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깁재규는 대구사범의 후배라고 해서 중용했었다. 그런 후한 대우를 받은 놈이 박통을 죽여?  한국인들 중에 이런 배반자들이 자주 나오는 것은 한국의 전통적 현상이다. 역사가 그걸 말해준다.

그가 불란서 파리의 도박장을 나오다가 중정의 행동대원들에게 납치되어 농촌의 한 집에 서있던 사료분쇄기에 넣어져서 가루로 처리됐다는... 어느 잡지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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