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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사과 통지문, 남측에서 37곳 이상 북한식으로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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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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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20-10-15 11:16:23

청와대가 말합니다 사이트의 9월25일 화면(위)과 9월 26일 화면.
청와대가 말합니다 사이트의 9월25일 화면(위)과 9월 26일 화면.

북한 수역에서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무참하게 살해된 사건에 대해 지금 정부와 여당의 기류는 북한이 사과를 했으니 더 이상의 책임추궁은 하지 말자는 쪽이다. 전해철 국회 정보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공무원이 사망했는데 북한의 사과 한마디가 뭐 그리 대수냐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과는 의미가 매우 크다. 북한이 보내는 시그널을 잡아야 한다”며 “김 위원장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만큼 공동조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9월 25일 오전 10시 문 대통령은 경기도 이천 육군 특수전사령부에서 열린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가하기로 돼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그날 아침 일찍 박지원 국정원장은 북측이 보낸 사과문을 갖고 청와대에 들어가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한 정부 관계자는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북한 조선노동당 산하 정보기관인 통일전선부의 핫라인이 가동된 것으로 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청와대가 처음 공개한 사과문에서는 매우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했다’ 식의 반말 문장과 ‘합니다’의 존대 문장이 혼용됐고 두음 법칙 등 맞춤법이 북한식이 아니었다.

북한이 ‘조선로동당’으로 표기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이 사과문에는 ‘조선노동당’으로 표현돼 있었다. 북한은 두음법칙을 덜 적용하기에 우리와 맞춤법이 다르다. 사과문에서는 남한 맞춤법에 따른 단어가 여럿 발견되었다. 그때만 해도 김정은이 사과를 했다고 했기에 친서인줄 알았는데, 이 사과문의 첫 문구는 ‘청와대 앞’으로 돼 있었다. ‘세상에 대통령이 아닌 기관으로 보내는 친서도 다 있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당시 사과문은 대한민국 ‘청와대 > 청와대 뉴스룸 > 청와대가 전합니다’ 코너에 올라 있었다. 기자는 그 화면을 캡쳐해 놓았다. 북한 김정은이 사과문을 보냈다는 청와대 발표가 있은 지 몇 시간 뒤 이애란 박사를 비롯한 여러 탈북자들이 “북한은 ‘리해’라고 하지 ‘이해’라고 표기하지 않는다. ‘미터’가 아닌 ‘메타’로 적는다”며 “사과문이 이상하다”고 연락해왔다. 기자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다음날(9월26일) 기자가 못 찾았던 단어를 찾아보려고 다시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기자가 확인했던 반말체 표현과 ‘조선노동당’은 물론이고 탈북자들이 이야기한 단어들도 거의 대부분 북한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기자 혼자만 이상한 점을 봤었다면 ‘잘 못 봤나’ 했을 터인데 여러 탈북자들도 이상하다고 했었기에,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식 표현으로 다 돼 있는데요. 내 기억과 좀 다르긴 하지만…”이라고 했더니, 그들은 “그럴 리가∼”하며 당황해 했다. 9월25일 캡쳐해놓은 화면이 있다는 것이 떠올라 둘을 비교해봤더니 아래와 같은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아래 자료에서 ‘영해’ 식으로 가운데에 줄을 그은 글자들은 9월25일 판에 있다가 26일 판에는 수정돼 있었다. 26일 판에서 수정된 글자는 ‘(령해)’식으로 가운데 줄을 그은 글자 다음의 괄호 안에 넣어 놓았다. 가운데 줄을 그은 글자가 없이 ‘(황해남도)’처럼 그냥 괄호 안에 넣은 글자는 9월25일 판에는 없었는데 26일 판에 삽입된 것이다. 그리고 26일자 판에서도 북한식 단어로 수정하지 못한 우리식 표현은 ‘괄호 안에 **’를 찍은 다음 따로 설명해 놓았다.

9월25일과 26일 통지문에서는 띄어쓰기가 바뀐 것, 없던 구두점이 추가된 것, 문단의 행갈이가 바뀐 것도 있었다. 나중에 끼워 넣은 말이나 조사, 띄어쓰기를 빼고도 37곳이 북한식으로 수정됐다. 정부 여당이 ‘김정은 사과문’이라고 우기고 있는 이 통지문은 ‘엉터리’라는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가와 국가, 정부 대 정부가 주고받는 문서라면 글자 하나라도 수정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수신 후 수정이 가해지면 이 문서는 가짜라는 소리를 들어도 무방할 정도로 효력을 상실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아래 통지문을 보면 하루 사이 어떻게 수정됐는지 알 수 있다.

청와대앞

귀측이 보도한 바와 같이 (지난) 22일 저녁 (황해남도) 강령군 금동리 연안 수역에서 정체불명(의) 인원 1명이 우리 측 영해(령해) 깊이 불법 침입했다(하였다)가 우리 군인들에 의해 사살(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했(하였습니)다.

사건 경위를 조사한 바에(데) 의하면 우리 측 해당수역 경비담당 군부대가 어로작업 중이던(에 있던) (우리) 수산사업소 부업선으로부터 정체불명(의) 남자 1명을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고(하였으며) 강령반도 앞 우리 측 연안에 부유물을(*부력대를*) 타고 불법 침입한 자에게 80미터(m, **북한식 표현의 메타*)까지 접근해(하여) 신분확인(을) 요구했(하였)으나 처음에는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는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측 군인들의 단속명령에 (계속) 함구(무언)하고 불응하기에 더 접근하며(면서) 두(2)발(의) 공포(탄)을 쏘자 놀라 엎드리며(면서) 정체불명(의) 대상이 도주할 듯한 상황(이) 조성됐(되었)다고(**북한식 표현은 조성되였다고**) 합니다.

일부 군인들(의) 진술에 의하면 엎드리면서 무엇인가 몸에 뒤집어쓰려는 듯 한 행동(을) 한 것같다고도 했(을 보았다고도 하였)습니다.

우리 군인들은 정장의 결심 밑에 해상경계근무 규정이 승인한 행동준칙에 따라 10여 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를) 향해 사격했고(하였으며,) 이때(의) 거리는 40~50미터(m, 북한식 표현은 메타**)였다고 합니다.

사격 후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어 10여미터(m, 북한식 표현은 메타**)m(까지) 접근해(하여) 확인 수색했(하였)으나 정체불명(의) 침입자는 부유물(**북한식 표현은 부력대**) 위(우)에 없었으며 많은 양(량)의 혈흔(**북한식 표현은 핏자국**)이 확인됐(되였)다고 합니다.

우리 군인들은 불법 침입자가 사살된 것으로 판단했(하였)으며, 침입자가 타고 있던 부유물(**북한식 표현은 부력대**)은 국가비상방역 규정에 따라 해상 현지에서 소각했(하였)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우리 지도부에 보고된 사건 전말에 대한 조사 결과는 이상과 같습니다.

우리는 귀측 군부가 무슨 증거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불법 침입자 단속과 단속과정 해명에 대한 요구(도) 없이 일방적(인) 억측으로 <<만행>>, <<응분의 대가>> (등과) 같은 불경스럽고 대결적 색채가 강한(깊은) 어휘(표현들을) 골라 쓰는지 커다란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지도부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발생했다고 평하면서 이 같은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상경계 감시(와) 근무(를) 강화하며, 단속 과정의(에) 사소한 실수나 큰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일이 없도록 (앞으로는) 해상에서(의) 단속취급 전 과정을 수록하는 체계를 세우라고 지시했(하였)습니다.

우리 측은 북남 사이 관계에 분명 재미없는 작용(을) 할 일이 우리 측 수역에서 발생한 데 대해(하여) 귀측에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 지도부는 이런(와 같은) 유감스러운 사건으로 인해(하여) 최근에 적게나마 쌓아온 북남 사이(의)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허물어지지 않게 더(욱) 긴장하고 각성하며, 필요한 안전대책을 강구할 것에(데) 대해(하여) 거듭 강조했(하였)습니다.

국무위원장 김정은 동지는 가뜩이나 악성비루스 병마(의)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런(러운) 일이 발생해(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했(하시였)습니다. 벌어진 사건에 대한 귀측의 정확한 이(리)해를 바란(랍니)다.

조선노(로)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2020.9.25(2020년 9월 25일)

2018년 4월 판문점 정상회담 때 눈물 훔치는 서훈 당시 국정원장(왼쪽). 오른쪽은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뉴시스]
2018년 4월 판문점 정상회담 때 눈물 훔치는 서훈 당시 국정원장(왼쪽). 오른쪽은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뉴시스]

이 자료는 사과문이 아니라 통지문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과문이라는 제목은 김정은의 사과를 강조하기 위해 정부여당 사람들이 붙인 이름일 뿐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가정보원과 통일전전선부 간의 핫라인이 가동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런데 ‘청와대 앞’으로 해놓았으니 이상하고 불편한 것이다.

통일전선부는 북한의 유일무이한 여당인 조선로동당에 있는 조직지도부로 선전선동부 다음에 있는 일개 부서일 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최고 조직인 청와대를 상대로 통지문을 보냈으니 이는 한마디로 ‘건방이 하늘을 찌른’ 행동을 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정식 문서’가 아니라고 보고 무시해도 될 것을 정부여당 사람들은 ‘김정은 사과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식 친서와 딴판인 통지문
그렇다면 북한이 보내온 정식 친서는 어떤 모양일까. 친절하게도 그 답을 ‘청와대는 말합니다’ 사이트는 보여주었다(https://www1.president.go.kr/articles/9239). 9월 25일 청와대에서는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기자실에서 북한이 보내왔다는 사과문(통지문)을 공개했다. 9월 8일 우리가 보낸 친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 귀하’란 제목을 붙이고 반말체와 존대체의 혼용 없이 우리식 단어로 정중하게 문장을 꾸며놓았다. 그에 대한 답신으로 북한이 보낸 친서도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귀하’란 제목 하에 역시 반말체와 존대체 혼용 없이 정중하게 작성돼 있었다.

이 두 친서의 문장에 비하면 9월 25일 수신했다가 26일 수정된 통지문은 장난 같은 느낌을 준다. 북쪽에서 전화로 불러준 것을 이쪽에서 받아 적었기에 반말과 존대어가 섞이고 일부 단어는 우리 식으로 이해해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서 남북 사이에 특사를 해봤던 이들은 이 통지문을 김정은이 보고 ‘OK’라고 비준을 했겠느냐고 반문한다. “비준을 했다면 다음날 문구를 수정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랬다면 북한에서 여러 명이 날아간다”란 말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정보의 세계에는 이러한 장난과 심리전이 감행되기에 국가정보기관에서는 입수한 자료가 있으면 ‘첩보’로 보고 반드시 분석과 판단을 한다. 분석관들이 과거 자료와 비교해 이상한 점은 없는지, 북한에서 보낸 것이 맞는지 등을 반드시 체크한 후 이들의 책임자인 판단과장까지 ‘맞다’고 판단한 것만 ‘정보’로 확정해 국정원장과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현재 나온 보도를 종합하면 과연 국정원에서 분석과 판단을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라고 말했다.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국가정보원장이었던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였다. 남북정상회담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도 많이 북한을 접촉한 서 실장은 과연 이 통지문을 진짜로 보고 기자실에서 낭독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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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10-1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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