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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석의 네델란드 회장과 초라한 한국해외지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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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ilv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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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에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며 국민소득을 높이는 길로써 해외수출을 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핵심으로 삼았다. 일본과 국교정상화의 댓가로 36년 간의 수탈보상금으로 몇 억불을 이미 받아서 경부고속도로 부터 완공했었고, 신진기업들을 격려하여 국제무대로 진출할 것을 추진하였다.

이런 국가정책을 목적으로 해외지사를 세우는 일은 한국 무역역사 상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선경이 현대, 삼성, 대우, 금성 등등의 10대 종합무역상사 중의 하나로 지명을 받았다. 회사 내에는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고 수출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결국 호주지점을 개설하라는 명령이 나에게 떨어졌다. 가족이 없이 혼자 가야한다는 조건을 수락하고, 나는 내 생전 처음으로 국외로 여행할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친세라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그 길로 나섰다.

여권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무역협회에 가서 정부의 해외지사 개발금으로 약간의 보조금을 받아 쥐었고, 회사 내에서는 해외지사를 가져본 적이 없어던지라 그 운영의 내규를 총무부 부장과 상의하여 그 첫 초안을 작성하며 출국할 준비를 서둘렀다. 내 가족에게는 내가 받던 월급을 지불하게 했고, 현지에서의 내 생활비로 $500불과 별도의 지사 운영비를 따로 계상해서 매달 송금해 주기로 내정하였다.

공항에는 우리 부모님과 집사람과 첫딸 그리고 여동생 식구들... 사촌형님들과 사촌누이들이 나를 전송하고자 그 곳에 나와 있었다. 나는 이미 여러번 말렸다. 그들 말이 "네 덕택에 김포공항을 구경한다는데 굳이 말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처음 나가는 출국수속에 경황이 없는 중에도, 이들을 대접하고 배가 막삭이된 여편네를 붙잡고 석별의 정을 나누면서 한국을 떠났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때는 무슨 특권층이나 하는 짓거리로 보이던 시절이었다.

내가 탄 비행기가 힘겹게 떠오르면서 구름 위로 일본을 향하여 날아갔다. 창밖에 기묘하게 전개되는 구름모양에 넋을 잃고 살펴보던 나는 갑자기 안주머니에 넣어둔 상용여권을 상기했다. 출국수속의 경황 없었던 기억을 멀리하고 비로소 주위가 단조로와짐을 느끼게 하는 순항의 속력으로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내가 출국하기 직전에 김응초란 인물로 수출과 상무로 바꿔치기를 했은가를 후에 짐작해 보건대, 독고상무는 일본통이었지만, 박통이 요구하는 전 세계로 무역하기에는 그 방면에서 잔 뼈가 굵은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김응초란 사람은 함경도 출신으로 서울高를 졸업한 나의 선배가 되고, 일찌기 김우중과 같이 동남아 일대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던 인물이었던 거라.

나는 자랑스러운 내 여권을 꺼내들었다. 내 나이 30살에 처음으로 해외로 나갈 수 있는 복수상용 여권번호 MB11747 이라... 그때 '보잉'의 747 비행기가 새로 취항하던 때라 이 번호를 기억하기가 쉬웠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자는 듯이, 내 인생에 희망찬 새 출발이란 '11'이 앞에 써있었다. 그리고 MB란 Multiple Business의 약자다. 그 여권으로는 다시 여권발급 수속을 밟을 필요가 없는... 나는 앞으로 화려하게 전개될 미래를 연상하며 가슴을 부풀리다가 일본의 '오사카' 공항에 내렸다.

이런 상용여권을 귀국 후에 총무부에 반납했던 것은 대 실수였다. 그것은 나 개인에게 주어진 여권인 것을 모르고 회사에 반납했던 결과가 한 사기꾼에 의하여 도용당하는 결과를 낳았고, 그 者가 미국으로 잠입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당시의 여권은 사진만 바꿔넣으면 누구든지 조작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거기에는 해외무역개척의 상업용이란 외무부도장이 찍혀있지 않았다. 그저 나라는 한 사람의 복수여권일뿐...

그때 일본, ‘오사카’에서는 국제무역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 곳 공항에서 한동안 기다리다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1 등석에 다시 앉게 되었다. 우리가 1 등석의 표를 산것이 아닌데도, 박람회 때문에 일반석에 자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침 서양사람의 옆에 앉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네델란드"의 어느 큰 회사의 회장이라며 자기를 소개했다. 서양사람에, 더구나 높은 분을 곁눈질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자주 살피던 중에 점심식사 시간이 됐던 모양이다.

서양여자 승무원이 상냥한 미소를 내게 보내오면서 무었을 먹을 건가를 물어왔다. 내 옆의 회장이 마침 '치즈'라는 초록색의 겉껍질을 칼로 짤라내면서 빨간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어줍은 시늉을 하면서 같은 것을 달라고 여승무원에게 영어로 주문했다. 그 녀는 내가 처음 보는 초록색의 눈을 가진 '스튀어디스'였다. 서양의 젊은 여성들이란 이렇게 상냥한 미소를 한껏 먹음은 그런 사람들인가? 한국에서 성난 얼굴을 하던 한국의 여자들과는 천지의 차이를 느끼게하는 그런 인상이 내게 기분좋게 비추어 왔다.

이럭저럭 무료한 두어시간 후에 비행기가 홍콩에 도착하고 있다는 기내방송이 들려왔다. 불안하던 여행이었던 차에 홍콩이라는 말이 들려오자 회장의 앉은 자리를 넘겨 앉았다 일어섰다 들썩들썩거리며 창밖에 온 신경을 쏟아 살폈다. 착륙하는 비행기가 높은 삘딩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간신히 피했다는 듯이 공항에 서서히 내렸다. 비행기가 드디어 멈추어 서자 후덥지근한 습기가 갑자기 기내로 몰려 들어왔다. 마치 목욕탕에 들어선듯 후끈한 더운 기운이 내 몸을 감쌌다.

비가 내리고 있는 공항 밖으로 나와서 택시를 잡아타고 2층 뻐쓰와 중국사람들의 물결을 헤치면서, 대륙 쪽인 "쿠어룽"의 어느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김상무가 나같은 촌뜨기가 겁낼 겨를이 없이 이 모든 출입국 행사를 앞서가며 해결해 주었던 것은 문론 말할 필요가 없겠다. 실은 그런 목적에서 나를 따라 나왔지만서도...

호텔에 도착하자 마자 김상무는 나를 내팽개 쳐놓고 어디론가 살아졌다. 저녁 나절에나 돌아왔다가, 다시 곧 누구를 만나겠다 하면서 나를 이끌고 호텔 밖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달려 갔다. 결국 현지인들이 사는 어느 아파트를 찾아서 노크하게 되었다. 그 아파트의 주인인 듯한 인도사람이 비좁은 방으로 우리를 맞아 들였다. 두 사람은 구면이었던지 서로 반가워 하면서 나를 소개도 했고, 또 이것저것 방안을 치워서 우리들에게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김상무가 대짜고짜로 "조니 워커"가 있는가를 물었다. 자기가 마시다 남은 반 병짜리도 괜찮냐고 되물으면서 그것을 우리들 앞에 내어 놓았다. 문론 안주라는 것은 없었다. 주인이 술잔 둘을 내어놓자 김상무가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당신도 같이 하자고 했으나 그가 사양했다. 우리 둘이 몇잔을 마시다 보니 금세 바닥이 나고 말았다.

아직 술기운이 돌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주인을 쳐다보자, 그가 따지 않은 새 병을 꺼내서 우리들에게 내주었다. 자기네들 끼리만 아는 얘기를 주거나 받거니 하다가는 취기가 꽤 돌기 시작했다는 건지 김상무가 나한테만 자꾸 술잔을 되돌려댔다. 불청객으로 온 내가 극구 사양했지만, 무료하던 남어지 그럭저럭 혼자서 거의 한 병을 다 마셨다. 호텔 방으로 돌아오기 까지 얼큰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견딜만 했었다. 침대에 누워서 그날 사들인 양담배 한 보루를 뜯어서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었었다.

다음날 쇼핑을 하고 내 호텔 방을 찾아드니, 호텔 종업원같은 친구가 방 가운데 서서 나를 보자마자 담요 한 장을 쳐들어 보였다. 댓짜곳짜로 당신은 누구냐고 내가 물을수 밖에... 그는 대꾸 않고 담요의 한가운데에 꺼멓게 불탄 구멍을 더욱 높이 들어 보였다. So...? What is the matter?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라고 내가 영어로 물었다. 불에 탄 구멍을 내가 태웠다는 말이 나왔다. 내가 놀랬다. 그래서 내가 연거퍼 "No... No" 를 외치다가 잠들기 전에 내가 담배 한 대를 입에 붙혀물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왔다. 나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호텔을 ‘첵크 아웉’할 때에 담요 한장 값을 변상하면서 김상무가 내게 내뱉은 역정의 소리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나? 불이나서 내가 그 때 그 곳에서 황천행 하지 않았던 것만은 아무튼 천만다행이라 해야겠지만...

그 전의 어느 저녁은 홍콩의 단골거래 수입상인 왕서방이 우리를 대접한다 해서, 부둣가에 떠있는 큰 보트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 사람은 정말 비단장사 왕서방인데, 한국에 가끔 올적 마다 다이아몬드 반지, 다이아 넥타이 핀, 다이아 목거리를 착용했다가는, 그 다음 방문할 때는 금이나 '루비' 등등의 보석을 '셑트로 맞추어서 온 몸에 장식하고 나타났었던 사람이었다. 아무튼 중국인들이 법석이는 그 식당에서 그렇게 맛있는 중국요리는 그 때 처음 먹어봤다.

식사 후에 그는 자기의 "멜세데즈 벤츠"에 우리들을 태워서 어두컴컴하고 외진 어떤 데로 우리를 몰고 갔다. 덩치 좋은 문지기가 문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우리를 통과시키서 안으로 들여보내자, 환하게 밝혀진 넓직한 홀이 갑자기 내 앞에 나섰다. 불빛에 눈이 익숙해지자 그 영업장소의 이것저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앙의 홀을 끼고 한 단계 높게 마련된 주위로 둥그런 회랑이 둘러져 있었다. 그 중앙에 비추는 조명에 대조되어 그 곳의 탁자와 의자가 한결 어두워진 그늘 속에 마련되어 있었다. 넓직한 마루바닥의 한 복판이 손님들을 춤 추게 하자는 모양이다. 아직 이르다는 건지 고객이 별로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우리 일행은 한 곳에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좀 있으려니 한 사나이가 공책 크기의 나무판대기를 우리들에게 돌렸다. 보자하니 그 붉으무레한 나무는 두 조각으로 겹처져 있었다. 처음 보는 것이라 내가 유심히 살피는 중에, 왕서방이 그 판을 열어서 중국말로 뭐라고 웨이타'로 보이는 자에게 주문하는 것 같았다. 아하~ 이게 그 메뉴라는 것이구나... 그렇게 짐작하고 나도 그것을 열고 자세히 살폈다. 한문의 글씨들이 좌우로 또 아래로 뭔가가 쫙 써있었다. 무었인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어느 젊은 중국아가씨가 내 옆에 와 앉았다. 무슨 일인 가를 새삼 묻기도 뭣해서, 그냥 꼿꼿이 정색하고 앉아 있으려니까 그 처녀가 말도 없이 가버렸다. 잠시 후에 또 누가 와서 앉았다.

나는 그 때서야 겨우 그 메뉴라는 것이 소위 조선시대의 성춘향이 기생 점고판이라는 것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중국은 그때까지도 그런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가? 내가 놓칠세라, Do you speak English?라고 두째 여자에게 말을 거니까 이 여자가 무슨 이유인지 아무 대꾸도 없이 또 사라졌다. 세번째로 누가 왔는데, 영어고 뭐고 상관않고 이젠 아주 눌러앉아 버리고 말지 않았던가. 삼세번이면 끝장이라는 거다. 내가 이러고 앉아 있는데 왕서방은 그의 첫 여자와 뭔가를 숙덕거리다 못해 '춤의 마루'를 들락거리며 춤을 추었다. 김상무도 이처럼 자기 자리를 떳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그 역시 한국사람이 아니던가? 뻔할 뻔자가 분명했을 것이다.

이 아기씨들이 본토에서 팔려왔는지 영어를 전혀 못했다. 나 역시 춤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 말도 안 통하고 춤출 줄도 몰랐고, 그 결과를 더 말해 무었하리... 우리가 현시대를 살려면 모두가 이런 정도는 할줄 알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국제무대로 무었인가를 팔러다녀야 할 사람들 만이 하는 짓을 말하는게 아니다. 한국사람들 결혼식에 가 보시라. 한국의 촌뜨기들이 여기가 미국이라고 멋적은 판을 벌려놓고는 점잖은 체 두리번거리며 아직도 버티고 앉아있는 꼴이란, 그런 데서는 다리가 얼어붙지만 사촌의 땅에는 배가 아푸고, 웹페지에서는 게거품물고 붕어입질로 된 소리 않된 소리를 내어뱉는 이 작자들......하여간에 별도로 알아 모셔야 해!

다음날에 '홍콩'을 등지고 '말레이지아'의 수도인 '쿠아라룸풀'에 잠간 내렸다가 우리를 '싱가폴'로 다시 모셔갔다. 중국과 로마를 통하던 두 갈래의 길이 옛날에 있었다. 하나는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란 육로였고, 또 하나가 말라카 해협을 거치는 바닷길이었다. 인도양으로 들어서서 아라비아 반도의 마호멭의 고향인 ‘메카’를 통과하는 ‘카라반의 남쪽 육로가 있었다. 또 다른 길은 紅海(홍해)를 더 서북쪽으로 항해하다가 보면, 오늘날의 Jordan의 유일한 항구인 Aqaba에 이른다. 거기서 현 시대의 관광지로 둔갑한 Petra 사막을 거치면서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북쪽 길목에 다다른다. 이렇게 東과 西의 문물이 통과하던 한 무역의 요충지가 오늘 날의 '싱가폴'이란 도시국가다.

고층건물들과 영국풍의 저택들... 여기저기의 길가는 매우 깨끗했다. 그곳의 High Street라는 포목시장을 둘러 봤다. 상점들이 늘어선 좁은 길의 좌우에는 온갓 색갈의 천들이 아래 위로 걸려서 휘황찬란했다. 마치 ‘천일야화'에 나옴직한 '바그다트'의 미로가 이랬었는가를 상상하게 하는 그런 시장의 거리였다. 상점들을 하나 둘 지날적 마다 인도사람들의 특이한 향불냄새가 각각 다르게 내 코를 자극했다. 어떤 것은 'not bad'했는가 하면 다음의 것은 역한 것도 있어서 인도사람들의 특유한 향료문화를 상기시켰다. 김우중씨를 비롯하여 무역의 수많은 우리 선배들이 한국의 세계적 진출을 위한 노력이 이곳을 이미 누벼 갔던 그런 상점가였다. 아랍, 인도, 중국, 일본상인들의 오랜 역사 속에 뒤늦게 섞여들은 나같은 풋내기가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마지막 여정인 시드니를 향하여 그 곳에서 호주의 "콴타스" 비행기를 탔다. 언제 떠나는가 하고 궁금해 하며 창밖을 내다 보노라니, 어떤 인도인이 사진기로 보이는 것을 한 손에 높이 쳐들고 우리 비행기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내가 "아~ 내 캬메라!"... 나는 타랍의 계단을 정신없이 뛰어 내려가서 그것을 받아 쥐었다. 몇일 전에 홍콩에서 샀었던 내 생애에 처음 만져본 나만의 Cannon사진기였다. 돌아와 앉자, 김상무가 코웃음을 치면서 못마땅해 했다. 홍콩에서 부터 ‘본의 아닌 실수’가 거듭되어 왔었던 지라 이런 비슷한 일로 촌놈의 행각을 챙피하게 생각해 오던 차였다. 그런데 또다시...! 부끄러운 현실에 다시금 얼굴을 붉혔다.

한번은 '싱가폴'을 돌아다니다가, 야외꺄페에서 7UP 이란 사이다를 주문해 마신 적이 있다. 내가 싱가폴 돈을 내놨다. 그 종업원이 잔돈을 가져다 주길래 "You keep it" 이라고 말했다. 팁을 주어야 한다니, 그렇게 했던 것이다. 김상무가 "너가 재벌의 아들이냐?"고 비웃으며 나를 힐난했다. 아마도, 팁으로서는 지나치게 많았던 잔돈이었던 모양이다. 벌써 여러나라에서 환전(돈을 바꾸다)을 해왔었던 바라, 돈의 가치를 나라들마다 제대로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 지가 불과 몇일 전이다. 이번에 또 카메라를 대합실에 남겨놨던 것이다. 갑자기 바뀌어가는 새 환경에 모든 것이 내게 새로왔고, 두뇌는 이에 맞추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왜 갑자기 내가 이렇게 얼철철 해질 수가 있다는 건가? 더구나 나를 인솔한다는 웃사람은 나를 내버려 주기는 커녕, 일일이 빈정거리고 나무래기를 잠시도 그치지 않았다. 외국물을 처음 먹어보는 내 입장을 염려한다는 아량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나를 완전히 바보로 몰아넣는 것이 그가 할 일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무슨 의도에서 이렇게 해야하는지, 그를 만난지가 얼마 안됐던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 자리를 찾으려고 그 안쪽을 바라보니, 노랑머리의 서양사람들로 꽉 메어져 있었다. 그들이 우리들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까만머리를 한 승객은 우리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위축돼오는 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를 비행했는지 지루하기 시작하던 때에 승무원들이 종이 한장씩을 나누어 주었다. 무슨 증명서 같았다. 우리가 방금 적도선을 넘었단다. 옛날 바다와 싸우며 세계를 정복했던 그들다운 발상이었다. 적도를 넘어서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야 인도나 호주에 도착했던 영국민족의 역사적 기념장이었다.

드디어 시드니..., 그 공항에 내리니 여기가 가을에 접어든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듯 찬바람이 내 얼굴을 덮쳤다. 몇일 전에 한국의 봄을 떠났던 내가 아니었던가? 세상의 진리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이 말을 내가 새삼 깨닫는 내 인생의 새로운 커튼이 이렇게 열렸다. 그리고 가슴이 설레어 왔다.

禪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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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10-31 06:16

상식님의 댓글

상식
1970년에 30세 초임 해외지사 개척 발령을 받으셨다니 1940년생, 지금 80세 이시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벌써 반세기 전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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