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설, 비방, 광고, 도배질 글은 임의로 삭제됩니다.

"번영 원한다면 오직 능력주의뿐이다"

페이지 정보

산들강

본문

에이드리언 울드리지 《재능 귀족》

"평등주의가 되레 약자의 계층이동 막아
시험이 공직자 선발의 역사 물줄기 바꿔"

 "번영 원한다면 오직 능력주의뿐이다"

능력주의(meritocracy)란 개인의 사회 내 지위와 그에 따른 보상이 그의 가문, 배경, 친분, 특권 등을 배제하고 오직 그 사람의 능력에만 의존해 결정돼야 한다는 원리다. 뜻은 분명하다. 최근 마이클 센델을 포함한 공동체주의자와 평등주의자들이 일제히 능력주의에 뭇매를 퍼붓고 있다. 개인 간 경쟁을 조장함으로써 공동체와 인간성을 파괴하고, 인간을 계급으로 서열화하는 원흉이라면서 말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의 편집자이자 저명한 경영저술가인 에이드리언 울드리지는 《재능 귀족: 능력주의는 어떻게 근대 세계를 만들었나(The Aristocracy of Talent: How Meritocracy Made the Modern World)》에서 이 모든 비판에 내재한 무지와 불합리성, 그리고 능력주의가 지닌 복잡다단한 속성을 역사와 현실의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막대한 사교육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비판자들은 부유층만이 사교육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며, 빈곤층은 말할 것도 없고 중산층조차 이 경쟁에서 탈락함으로서 사회적 계층이동이 단절되고 부는 양극화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원흉이 능력주의라고 지목한다.

능력주의는 18세기 후반 서구에서 영국의 민주주의 혁명, 프랑스 혁명 그리고 미국 혁명 시기를 중심으로 사회적 약자와 하층민을 해방시키는 수단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혁명적 사상이었다. 그 이전에는 공직을 비롯한 사회의 상류 지위는 대개 가족세습, 매관매직, 연고와 친분을 통해서만 이뤄졌다. 족벌주의와 정실주의 사회에서 재능있는 하층민이 개인의 능력으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할 길은 거의 막혀 있었다.

그러다가 출신 가문이나 유력자 연고 대신에 시험을 통해 공직자를 선발하는 관행이 등장하면서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었다. 여성과 유색인종 차별도 뒤늦게 해소되고,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교육과 취업의 기회가 제공되기 시작했다. 근대 자본주 기업이 인력 채용 과정에서 능력주의를 천명했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공정하게 마련된 기회가 오늘날에는 전혀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명문대학 졸업이 취업에 유리하다면, 이는 이미 천문학적 사교육비 지원이 가능한 부자에게 유리한 게임이 돼버렸다는 뜻이다. 나아가 명문대 졸업 후 성공한 엘리트들은 세습귀족화돼 현대판 정실주의가 되살아나고 계급 폐쇄성은 고착돼가기만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능력주의가 기준으로 삼는 재능이 사실은 개인의 재능이 아니라 그 가문과 배경의 재능이므로 철폐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입 수능시험, 예컨대 미국식 SAT조차 능력주의의 산물이란 비난을 들었다. 전인교육과 다양한 인성을 고려한 선발이 필요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의도와 달랐다. 사람을 점수로 서열화하지 말고 전인교육을 시행하자는 주장은 오히려 온갖 종류의 스펙쌓기를 지원할 수 있는 부유한 학부모에게만 도움을 줬거나, 기껏 쉽고 즐거운 배움을 강조하면서 지력 퇴화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학교가 추구하는 교육 방향에 맞춰 엄격한 학생 선발과 가혹한 시험제도를 운영한 곳이야말로 수많은 나라에서 하층민을 사회적 성공에 이르도록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반면에 허울 좋은 무시험이나 추천 전형에 의존한 교육기관은 사회적 이동성 증대에 기여하지 못했다.

번영을 원한다면 오직 능력주의다. 정치권이 정실주의로 치우친 정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부패와 저성장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여러 실증 연구에서도 밝혀졌다. 반면에 능력주의 선발 및 훈련에 철저한 기업과 스포츠 경기는 줄곧 위대한 성과를 낳았다. 오히려 능력주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강화해야 할 원리다. 능력 경쟁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사회 정의, 민주, 평등이라는 꿀 발린 말을 한다 해도 본심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송경모 <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추천 0

작성일2021-10-23 10:26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04817 미국인이 만든줄 모르는 한국 전통주 댓글[2] 새글인기글 1 pike 2024-04-18 465
104816 中관영매체, 한국인 82%, 한·중 우호관계 원해??? 댓글[2] 새글인기글 pike 2024-04-18 223
104815 동탄 건설현장 댓글[2] 새글인기글 pike 2024-04-18 650
104814 골반 45인치 한녀 "애프리" 새글인기글 pike 2024-04-18 624
104813 스튜어디스가 소유한 자동차 bmw i8 댓글[3] 새글인기글 pike 2024-04-18 635
104812 오늘... 배달음식 상습 절도한 40대 여성 댓글[3] 새글인기글 pike 2024-04-18 525
104811 한식 회전 뷔페 댓글[1] 새글인기글 1 pike 2024-04-18 565
104810 의대생 증원 논란, 진정한 해법이 없는가? 댓글[1] 새글 Mason할배 2024-04-18 136
104809 밀라노에서 전시회 중인 노홍철 최근 새글인기글 pike 2024-04-18 505
104808 카페서 점심 휴식 즐기던 직장인들, 돌진차량에 날벼락 새글인기글 pike 2024-04-18 504
104807 이혼전쟁 끝내고 제발 잘 지내!” 17살 딸 샤일로, 피트-졸리 부모에게 간청 새글인기글 pike 2024-04-18 345
104806 샤넬백 200만원 싸다”…해외 명품 쇼핑객 ‘이 나라’로 몰린다는데 새글인기글 pike 2024-04-18 430
104805 역사상 최악의 사기꾼, 그는 어떻게 나랏돈 6조를 횡령했나? 조 로우 새글인기글 양심 2024-04-18 341
104804 우버 드라이버 쏘는 미국 미친놈 댓글[4] 인기글 Gymlife2 2024-04-17 433
104803 감동적인 가족 광고 인기글 FlowerGirl 2024-04-17 360
104802 비명소리에 경찰이 왔는데... 인기글 1 pike 2024-04-17 710
104801 편지 쓰기 대회 대상작 인기글 8 원조다안다 2024-04-17 376
104800 고독사 하기 직전 보낸 마지막 문자 댓글[1] 인기글 8 원조다안다 2024-04-17 502
104799 치매에 걸린 엄마와 시어머니를 동시에 돌본 딸이자 며느리 인기글 7 원조다안다 2024-04-17 287
104798 과소평가하는 질병의 위험성 인기글 2 원조다안다 2024-04-17 466
104797 3천명을 살린 촌장의 고집 인기글 4 원조다안다 2024-04-17 420
104796 모네의 그림 같은 대한민국 구석구석의 봄 인기글 1 원조다안다 2024-04-17 362
104795 미세먼지 최악 찍은 오늘 인기글 pike 2024-04-17 541
104794 요즘 가장 핫한 여배우의 피팅모델 시절 인기글 pike 2024-04-17 840
104793 중국이 중국했다 - 국제마라톤 승부조작 댓글[3] 인기글 소소한행복 2024-04-17 357
104792 70년간 약속을 지킨 일본인 댓글[1] 인기글 6 원조다안다 2024-04-17 589
104791 EBS가 이번에 공개한 역대급 시리즈 인기글 원조다안다 2024-04-17 556
104790 '6월 민주항쟁' 박종철 열사 어머니 정차순 여사 별세 댓글[1] 인기글 4 원조다안다 2024-04-17 261
104789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진짜' 이유 댓글[1] 인기글 3 원조다안다 2024-04-17 519
104788 히딩크 감독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2002월드컵 장면 댓글[1] 인기글 1 원조다안다 2024-04-17 439
게시물 검색
* 게시일 1년씩 검색합니다. '이전검색','다음검색'으로 계속 검색할 수 있습니다.
** 본 게시판의 게시물에 대하여 회사가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