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로 사치스러운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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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의 이멜다 마르코스   필리핀의 현직 하원의원이자 기업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전 대통령의 부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현 필리핀 대통령의 어머니.  인류 역사상 가장 사치스러운 인물'이라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치 행각으로 유명했다.     이멜다 로무알데스 마르코스  1929년 7월 2일 (93세)  “그녀는 8년 간 매일 구두를 갈아 신었다고 한다. 하루도 같은 구두를 신은 적이 없다.”  그녀의 전기 영화 〈이멜다(Imelda)>의 도입부          이멜다는 성인이 되면서 미인에 말솜씨도 좋은 편이라 인기가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마닐라에 유학할 당시 늘 곁에 남자들이 졸졸 따라다녔을 정도였다고.  미스 마닐라에 도전하기도 했는데, 1등은 못했지만 뮤즈 오브 마닐라로 선발되었다. 이멜다는 그것을 바탕으로 상류 사회에 진입하였고, 사교계에서 상당한 유명인사가 되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이멜다는 파티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페르디난드는 이멜다에게 한눈에 반해 버렸다고 한다.   문제는 이멜다에 비해 키도 작고 외모도 별로였을 뿐더러, 나이도 무려 12살이나 많아 처음 이멜다는 페르디난드에게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페르디난드는 이 당시 이멜다와 결혼하기 위해서 기이한 행동을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매일매일 이멜다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내는 것이였다.   하루에 1개씩, 총 11일 동안 다이아몬드 반지를 하루도 빠짐없이 보냈음에도 이멜다는 페르디난드에게 넘어오지 않았다.   페르디난드는 "이멜다, 언젠가 영부인이 될 생각은 없어요?"라고 간신히 프러포즈를 한 끝에 이멜다와 결혼했다고 한다,   이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필리핀 대통령을 목표로 하자, 이멜다도 이를 위해서 열심히 뛰어 다녔다.   특히 놀랍게도 필리핀 대통령 선거 당시 이멜다의 행적은, 내조의 여신이자 현숙한 귀부인이었다고 한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성실한 양처이자 품위있는 영부인이었다.    남편의 2기 재임기부터 점차 사치향락에 맛을 들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그녀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하게 된다.    남편의 계엄령 선포 이후로는 누가 신경쓰든 말든 대놓고 명품들을 쓸어 담아갔다.   당연히 이멜다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데 쓰이는 돈은 모두 국가재정에서 지출되었다.   흔히 이멜다 마르코스가 사치스러운 사실은 알지만 얼마나 사치스러운지는 잘 모른다.    심지어 대중적으로 알려진 정보가 진실보다 훨씬 축소된 내용일 정도다.   이멜다가 남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함께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을 때 이멜다가 살던 말라카냥궁 지하에는 가로 21m, 세로 21m나 되는 커다란 방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이멜다의 사치품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당시 대통령궁을 방문한 영국의 사진기자 알렉스 보위는 대통령궁 지하에 있는 이멜다 마르코스의 옷장 속에 쌓여있는 세계 최일류 유명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최고급 의상과 구두, 핸드백, 그리고 장신구들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고 한다.         최고급 브랜드의 구두 3,000켤레. 심지어 금이나 은으로 장식된 구두는 기본이고, 그 1980년대에 배터리를 구두에 장착해서 당시에 움직일 때마다 빛이 나오는 구두까지 있었다고 한다.  너무 많아서 올리지도 못함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는 청구서들을 조사한 결과, 이멜다는 오전에 100만 달러, 오후에는 200만 달러어치의 골동품을 사들였다고 하는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났으며, 이멜다는 10만 7천 달러의 이브닝 가운을 구입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고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 발렌티노에게는 실크 드레스 6벌을 한꺼번에 주문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고작 한 방에서만 발견된 사치품들인데, 심지어 이것들은 망명지에 다 가져가는 것이 불가능해서 진짜 귀한 건 챙기고 남은 것들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필리핀을 말아먹었으니, 1986년 민주화 혁명 이후로 필리핀에서 하와이로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했다.   1991년 필리핀 대법원의 사면을 받았고 이때를 기점으로 필리핀에 귀국한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234만표의 득표하여 건재함을 과시하였고, 1993년에 부패혐의로 기소되었다가 1998년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이멜다 컬랙션이라는 패션 브랜드를 차렸는데, 기업가로도 대성공하여 영부인 시절 못지않게 돈을 무진장 끌어모았다.  그렇게 정의구현을 어느 정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축재 혐의로 환수당한 재산을 제외한 마르코스 일가의 남은 재산 역시 어마어마하다.    2016년 총선에서도 일로코스 노르테 2구에 출마해서 99.0%? 의 득표율로 재선되었다.   딸도 노르테 주지사에 여전히 당선     2019년 7월 3일 이멜다의 구순 잔치에 참석한 일반 하객들 261명이 식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사고가 생겼다.  일반인에게 제공된 음식은 VIP 손님의 것과 달랐다고 한다.또한 환자들이 실려 가고 있는데도 공연이 계속됐다고 알려졌다.   2022년 5월 9일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쫓겨난 영부인에서 대통령의 어머니로 돌아왔다.   93세 생일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다시 사치 행각을 이어가고 있는데, 93세 생일잔치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통령궁에서 열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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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09-2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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