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설, 비방, 광고, 도배질 글은 임의로 삭제됩니다.

12년이 걸린 복수

페이지 정보

산울림

본문

복수, 12년 걸렸다

전광판의 시계가 멎고 8분이나 지난 후반 53분, 가나 축구대표팀 감독 오토 아도는 0대 2로 끌려가던 그 상황 대기심에게 선수 교체 의사를 내비쳤다. 이미 주어진 추가 시간을 모두 쓴 상태라, 현실적으로 16강 진출에 필요한 3골을 넣을 시간이 없던 때였다. 1골을 먹히면 우루과이가 한국을 골득실차로 제치고 16강에 진출하는 상황이었다.

뭘 해도 뾰족한 수가 없던 그 시간대, 가나는 굳이 최전방에서 뛰던 공격수 모하메드 쿠두스를 빼고 공격수 압둘 파타우 이사하쿠를 넣었다. 1분도 안 남은 상황의 공격수 끼리 교체, ‘시간 끌기’에 들어간 것이었다.

느릿느릿 들어온 이사하쿠가 뜀박질을 시작할 때쯤 경기는 바로 끝났다. 한국 시간 3일 오전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H조 조별 예선 최종전 가나와 우르과이의 경기에서 가나가 2골만 내준 덕에 한국은 우루과이와 같은 승점에 같은 득실차에도 다득점으로 16강에 진출하게 됐다.

이 경기 하이라이트는 1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를 뒤집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나가 시간 끌기용으로 선수를 교체했던 장면이었다. 군자(君子)는 복수하는데 10년도 기다린다는데, 가나는 12년을 기다렸던 것일까.

3일 오전 가나와 우루과이 경기가 끝난 직후, 우르과이의 16강 패배를 알리는 기사 하단에 달린 댓글에서 가나의 선수 교체 이유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추가 시간 다 보내고 1분도 안 남은 그 순간 선수 교체를 하는 건 ‘목적’이 있어서다. 넣어 봐야 1골 정도 더 넣을 수 있는 시간만 남았었다. 1골을 넣더라도 가나에겐 의미 없었다. 어차피 이기지 못하면 16강에 진출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교체는 그냥 우루과이를 절대 16강으로 보낼 수 없다는 뒷다리 잡기용 교체였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을 기다려도 부족하다는데 가나는 12년 걸린 듯.”

무슨 복수일까.

가나와 우루과이의 악연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이래 우르과이의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는 가나의 주적이었다. 당시 월드컵 8강전에서 우루과이와 붙었던 가나는 1대 1로 진행되던 연장전에서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회심의 슛을 때렸지만, 이를 막아낸 건 골키퍼의 손이 아닌, 공격수 수아레스의 손이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8강 경기 연장전 1대 1로 비기던 상황에서 가나의 슛팅을 손으로 막아내는 우루과이의 공격수 수아레스 /FIFA 제공
2010년 남아공 월드컵 8강 경기 연장전 1대 1로 비기던 상황에서 가나의 슛팅을 손으로 막아내는 우루과이의 공격수 수아레스 /FIFA 제공
수아레스는 자신의 진영 골문에 서서 정면으로 날아오는 가나 도미니카 아디이아 헤더를 손으로 쳐냈다. 수아레스는 핸드볼 파울로 바로 퇴장 당했고, 페널티 킥을 얻은 가나가 이를 실패하며 결국 우르과이가 승부차기 끝에 4대 2로 이겼다.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처럼 은밀하게 손을 써서 공격수가 골을 넣는 장면은 가끔 있었지만,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기행으로 ‘골을 막았던 공격수’는 월드컵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아레스의 기행 탓에 가나는 4강 진출에 실패한 것이었다.

12년 만의 리턴 매치를 앞둔 한국 시간 2일 H조 4팀의 기자회견에서 ‘그날의 일’에 대한 사과 의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수아레스가 한 말은 가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때 나 레드 카드 받았잖나. 사과 않겠다.”

수아레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가나 선수가 페널티 킥 실축한 게 내 잘못인가? 내가 만약 가나 선수에게 부상을 입혔다면 사과했을 것”이라며 “난 당시에 레드 카드를 받았다”고 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충분한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가나 팬들이나 선수들이 날 향해 ‘복수심’을 품는다면, 그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누리꾼들은 수아레스의 이 기자회견 답변이 가나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본 것이다.

이와 동시에 가나 감독 오토 아도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남긴 말도 재조명됐다. 아도는 “2010년 일어났던 일은 매우 슬픈 일이었다”면서 “과거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가 늘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루과이는 별일 아니라고 치부했던 그 일이 가나에겐 ‘매우 슬픈 일’이었고 ‘복수의 기회’로 보였던 셈이다.

현지 시간 28일 오후 카타르 알 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에서 이강인의 슛을 막아내는 가나의 골키퍼 로렌스 아티 지기 /뉴스1
현지 시간 28일 오후 카타르 알 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에서 이강인의 슛을 막아내는 가나의 골키퍼 로렌스 아티 지기 /뉴스1
결국 가나의 12년 걸린 복수극 덕에 한국은 12년 만에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날 한국은 전반 5분 포르투갈 공격수 히카르두 오르타에게 골을 먹으며 0대 1로 끌려 가다, 전반 막판 김영권의 동점골과 후반 추가시간의 황희찬 역전골로 2대 1 승리했다.

추천 1

작성일2022-12-02 17:2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7855 마지막 손흥민 패스 장면 댓글[1] 인기글 3 pike 2022-12-02 2286
17854 황희찬 올때까지 기다리는 손흥민 패스 직전 장면 댓글[1] 인기글 2 pike 2022-12-02 1836
17853 2022 월드컵 최고의 사진 댓글[1] 인기글 2 pike 2022-12-02 1901
17852 H조 예선 애해가 가능한 한짤요약 인기글 1 pike 2022-12-02 1486
17851 집에 떠모스테트 (thermostat, 온도 조절기) 빠떼리 점검하세요. 인기글 GymLife김인생 2022-12-02 1059
17850 노자사상이 한물간 구시대 사상인 이유 인기글 GymLife김인생 2022-12-02 1032
17849 '재명아 내려와서 조사받아!' 댓글[5] 인기글 8 자몽 2022-12-02 1560
17848 한국vs포르투갈 카타르월드컵 16강 확정 순간!!! 댓글[1] 인기글 1 pike 2022-12-02 1914
17847 손흥민 벤투와 사이 좋아짐 인기글 1 pike 2022-12-02 1839
17846 [월넛크릭/콩코드/샌라몬/더블린/플레즌튼/리버모어] UCSF COVID-19 Test for Koreans … 인기글 UCSFcovidtest4k… 2022-12-02 1060
17845 자유게시판은 맨 밑에 있어야 하는 이유 인기글 GymLife김인생 2022-12-02 1173
17844 내 현제 이상적인 최소구비 옷에 대한 생각. 인기글첨부파일 GymLife김인생 2022-12-02 982
17843 카메룬 유쾌한 퇴장... 인기글 pike 2022-12-02 1944
17842 "(영화.두사부일체)선생에게 개기는 일찐/혼내주는 정준호 인기글 자몽 2022-12-02 1528
17841 "한동훈 법무부장관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에게 일침 댓글[1] 인기글 자몽 2022-12-02 1304
17840 밝혀낸 저고리, 핫바지의 비밀. 모기에 특화한 옷. 인기글첨부파일 GymLife김인생 2022-12-02 1182
17839 지금바도 센슈얼한 윤시내의 옛날과 오늘 인기글 GymLife김인생 2022-12-02 1182
17838 카타르월드컵 16강 대진표 댓글[2] 인기글 pike 2022-12-02 1525
열람중 12년이 걸린 복수 인기글첨부파일 1 산울림 2022-12-02 1375
17836 가나랑 경기후 샘 오취리 인스타에 인종차별 글 남긴 사람들 댓글[2] 인기글 pike 2022-12-02 2708
17835 머리가 이상한 애들은 이 영상보고 거품 물던데 왜그런지 아는 사람? 댓글[3] 인기글 1 BNBS 2022-12-02 1448
17834 아니 오취리에게 무슨 인종차별적인 말을 한국사람들이 했다는것? 댓글[1] 인기글첨부파일 GymLife김인생 2022-12-02 993
17833 아우 난 가나한테는 상관없고 포루투갈한테 이긴게 쪽바리한테 이긴듯 기쁘다. 댓글[1] 인기글 GymLife김인생 2022-12-02 1103
17832 북한 2030세대 근황 댓글[1] 인기글 4 원조다안다 2022-12-02 1482
17831 전설적인 세계 최연소 사기꾼 인기글 2 원조다안다 2022-12-02 1490
17830 1억으로 1년만에 156억 번 사람 인기글 4 원조다안다 2022-12-02 1850
17829 베트남 현지인의 대한국군 평가 댓글[3] 인기글 2 원조다안다 2022-12-02 1992
17828 한준희가 말하는 현재 한일축구 격차 및 미래 인기글 4 원조다안다 2022-12-02 1452
17827 한인 엄마에게 아이를 탈취 당한 미국인 인기글 4 원조다안다 2022-12-02 2122
17826 나의 스웨덴 병원 댓글[1] 인기글 8 원조다안다 2022-12-02 1539
게시물 검색
* 게시일 1년씩 검색합니다. '이전검색','다음검색'으로 계속 검색할 수 있습니다.
** 본 게시판의 게시물에 대하여 회사가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