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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같던 윗집 할아버지 잘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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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다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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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에 있는 윗집 이상한 할아버지 글을 보고
저는 너무 좋은 분을 만나서 참 감사했던 기억이 있어서
글로 적어봐요. 아직 세상에는 좋은 사람과 좋은 인연이 많다는걸
나누고 싶어서요
저는 40대 후반 아줌마고
11년 전쯤에 지금 아파트로 이사를 왔어요
요즘은 잘 안하지만 그래도 제가 떡 만드는 걸 좋아해서
직접 콩가루떡과 시루떡을 쪄서 이사떡으로 돌렸었어요
바로 윗집에 인사를 하러가니
벨을 눌렀는데도 한참 소리가 없길래
가려고 하는 찰나에 문이 스르륵 열리시더니
할아버지가 옷을 입느라 늦으셨다고 하시면서 나오시더라고요
떡 드리니까 요새는 이런집 잘 없는데
하면서 감사하다고 하시더니
떡 다 돌리고 나서 오니까 저희집 문 손잡이에
검은 비닐봉지로 작은 호박 두개랑 호박잎이 들어있었어요
그리고 종이에 정성들여 쓴 글씨로 반가워요 라고 적혀있어서
할아버지일거 같다고 유추했었죠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밖에서 휠체어 타신 할머니와 산책 나오신 할아버지를
뵙게되었어요
반가워서 혹시 호박 주신게 할아버지시냐고 잘 먹었다고 말씀드렸는데
할아버지만 인사하시고 할머니는 거의 말씀을 못하시더라고요
알고보니 4년전쯤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거동 자체가 아주 불편하신데
할아버지가 혼자 다 수발하면서 지내시는 거였어요.
근데 정말 지극 정성으로 아침저녁 매일 두번씩 꼬박꼬박
산책하시고 할머니 옷도 매일 정성껏 색색깔로 갈아입히셔서
봄에는 꽃무늬 여름에는 시원한 삼베 가을에는 형형색색 코트 등등으로
직접 다 챙겨주시고 신발도 꼬박꼬박 예쁜걸로 신겨서 산책나오시더라고요
저도 뵐때마다 항상 반갑게 인사드리고
한번씩 음식하면 가져다 드리고 그랬거든요
제가 또 손이 커서 식당 수준으로 음식하고.. 한번씩 챙겨드리고 하는 날에는
꼭 검은 비닐봉지가 문고리에 걸려있었어요
쌀튀밥, 김부각, 깻잎, 콩잎, 장단콩, 귤, 사과, 곶감 등등..
안 그러셔도 된다고 하는데도 꼬박꼬박 놓고가시더라고요..
아무튼 그렇게 지내던 중에 한번 사건이 일어났어요
낮에 저 혼자 집에서 식탁에서 가계부 정리하고 있는데
위에서 쿵 소리가 나더라고요
평소에 휠체어소리도 한번 안나는데
갑자기 소리가 나니까 촉이 안좋았어요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인터폰을 했는데 안 받으시더라고요
얼른 올라가서 문을 두드렸는데도 아무 소리가 없어서
느낌이 정말 안좋았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119로 신고했었어요
정말 금방 오시더라고요
이상한 기계로 급하게 문을 뜯어내고 들어가니
평소엔 정말 구린 제 촉이 그날따라 맞아서
거실에 할머니가 휠체어에서 떨어져서 쓰러져 계셨어요
사람들 다 구경나오는 와중에 동대표아저씨를 보호자 삼아서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하고 문 뜯긴 윗집 현관 밖에 서서
한 15분여를 기다리니 할아버지가 오셨어요
자초지종 설명드리고 급하게 헐레벌떡 할아버지랑 택시타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뭐 으레 하는 말이겠지만 늦었으면 큰일날 뻔했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할아버지가 덜덜 떠는 손으로 절 붙잡고 계셔서
저도 꽈악 잡아드렸어요.
그렇게 병원 계실동안 열쇠수리공도 불러드리고
정신이 없어서 그날 저녁은 애들 밥도 못 차려주고
떡볶이랑 치킨 시켜줬더니 더 좋아하더라고요..
약간 마음에 스크래치가 좀 갔어요..
그러고 다음날에 할아버지가 박카스 한박스를 들고
감사인사를 하러 오셨어요
괜찮다고 하는데도 돈 10만원(열쇠 수리비)하고 박카스 한박스를
손에 쥐어주고 가셨어요
근데 그 뒤로 할아버지가 너무너무 잘해주시는거예요
남편이 아침 7시에 출근인데..
누가 자꾸 차를 닦아놓는다고해서 보니까
아침 5시30분에 할아버지가 나오셔서 차를 닦아주시는거예요
심지어 겨울에는 뜨거운 물로 앞유리창에 눈 얼은거까지
다 닦아주셔서 제가 그러지마시라고 제발 그러다 병나신다고
하는데도 어떻게 요리조리 차를 숨겨놓으려고 구석에 놔도
귀신같이 찾아내셔서는 차를 닦아놓으시는데..
한참 고생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손세차가 취미라서 자꾸 할아버지가 이러시면
곤란하다. 본인이 주말 할일이 없다고 징징댄다 하고
합의를 보았어요
그 뒤로도 꼬박꼬박 일주일에 두세번씩
문앞에 각종 채소와 야채 군것질거리들이 걸려있었어요
요앞 트럭에서 산 따끈한 옥수수나
요구르트 등등 늘 다양해서 서프라이즈 선물 마냥
뭘까 하고 기대감이 들었네요
저도 받는만큼 열심히 반찬 만들어드렸고요
그렇게 3년이 더 지나서 할머니가 좋은곳으로 멀리 떠나셨어요
그리고는 자식들이 와서 모시고 사는것으로 합의가 났는지
다음주에 이사를 간다고 인사를 하러 오셨더라고요
너무 아쉽다고 저희 친정아버지보다도 아버지처럼 자주 뵙고 따랐는데
했더니 나도 아들만 둘인데 막내딸 생긴 기분이어서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는 제 손에 뭔가를 쥐어주셨어요
펴보니까 옥가락지 하나랑 은거북 가락지 하나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이런거 받을 수 없다고 그랬더니
할머니가 생전에 쓰시던거 다 정리했는데
붙박이장 치우다보니까 서랍틈에 딱 그 두개만 남아있더래요
그러시더니 할망구가 막내딸 생겨서 주라고 냄겨놓은건가보다 싶어서
들고 내려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몇번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엔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나중엔 화를 내시더라고요...기운빠져서 쓰러지면 책임질거냐고 반 협박성으로...
그래서 결국엔 받았고 자식들이 모시러온 날에
밑에 따라내려가서 배웅했어요
아들들도 그때 처음 뵀는데 아버지 통해서 이야기 많이 들었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하셔서 민망하더라고요..
그렇게 떠나시고 윗집에는..
신혼부부가 이사와서 그 집 애가 벌써 5살이 되어가네요
가끔씩 엘레베이터에서 인사할때마다 문득 할아버지가 떠올라요
요즘 같은 세상에 누군지 몰라도 엘레베이터만 타면
고개숙여 인사하시고 별일 없냐고 물어봐 주시던 할아버지 덕분에
저희 동은 아직도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꼭 인사를 나누거든요
아직 세상에 따뜻한 사람이 많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싶어서
오랜만에 추억속에 사연을 꺼내보았네요.
803호 할아버지 잘 계시지요? 덕분에 많이 행복했었어요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세요
이 글을 읽어봐주시는 모든 분들도 행복하세요~
추천 4

작성일2024-04-27 19:53

이에수님의 댓글

이에수
차~ㅁ 글을 잘 쓰시는 분이네요,

글을 쉬지 않고 계속 읽게 되는  803호 할아버지의 아름다움과 어울려 '그분의 막둥이 딸'이 된 필자가 한없이 부럽네요.
내게도 뇌졸중으로 쓰러져 3년동안 요양병원에 있는 아들있고 --- 80세가 넘어 그 녀석때문에 괴롭고 힘든데 --- 803호 할아버지의 '천사'같은 이야길 읽으니 맘이 더 아프네요.

내겐 필자 같은 딸도 없고, 그런 분을 기다릴 늙은이도 아니지만 ---


참으로 마음의 평온과 행복한 미소가 풍부하게 넘치는 분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하네요.

윗글의 두 주인공 두분다 천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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