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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명의 목숨을 구했던 선장의 뜻밖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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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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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5-05-06 15:15

퍼시픽님의 댓글

퍼시픽
그후엔 어떻게 되었나요?

글쎄님의 댓글

글쎄
보트피플 96명을 구출한 전제용씨
공지애(자유기고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나 할 수 없었던 일을 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죽음 앞에 직면한 96명의 생명을 구했지만 그 일로 심한 인격적인 모욕을 당했고, 삶의 터전까지 잃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렇게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자 그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그가 한 행동은 진정한 용기였고, 값진 선택이었다며 박수를 보낸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랴만 그에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이 있다. 사람의 생명은 그 어느 무엇보다 소중하며, 물질로 환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고도 모진 수모를 다 당했지만 지금 다시 같은 일이 벌어져도 망설임 없이 사람 생명이 먼저라는 그의 소신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가슴 속에 꼭꼭 묻고 살아온 20년 전의 그 일을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고, 생사조차 확인할 길 없던 20년 전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한 없이 큰 기쁨이고 행복이다.

젊은 청년, 원양어선 선장이 되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전제용 씨는 20대 젊은 시절, 돈 벌겠다고 서울에 올라왔다. 하지만 친구들과 모여 의리 찾고 술 찾느라 하루가 멀다하고 손목시계가 전당포를 왔다 갔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지내다간 안 되겠다, 놈팽이 밖에 더 되겠나’ 싶은 마음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선장이 되어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자’
수산학교를 졸업했던 전제용 씨는 부푼 꿈을 안고 초보항해사 자격증을 따서 원양어선을 타기 시작했다. 그 뒤 2등 항해사로 2년 반, 1등 항해사 2년 반을 거쳐 4년 뒤 명실공히 400톤에 달하는 원양어선을 이끄는 ‘선장’이 되었다.
“당시 원양어업이 활성화되던 시기였어요. 25년간 원양어선을 탔으니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 등 북극 빼고는 다 다녀봤네요”

남자 25명이 몇 달씩 바다에서 생활 하다 보면 별별일 들이 많다. 선원 중에는 커다란 낚시 바늘이 손바닥에 박히거나, 하품하다 턱이 빠지기도 하고, 맹장염에 걸리는 등 선박에서의 생활은 언제나 초긴장 상태다.
무엇보다 선장을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일은 4~5일이 지나도 어획량이 없을 때다. 물론 고기가 형성되는 위치와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기다리면 반드시 몰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술술 거둬 올리는 다른 어선을 볼 때면 어지간히 노련한 선장이 아니라면 초조함을 감출 수 없다. 이때가 바로 연륜과 경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http://blog.daum.net/hkchoi42/7357582
생명이 먼저다
1985년 11월 14일, 광명87호(400t급)를 이끈 전제용 씨는 여느 때처럼 배 한 가득 참치를 싫고 만선의 풍요를 만끽하며 귀항하고 있었다.
“오후 5~6시 되었을 겁니다. 해는 수평선으로 기울고 있었고, 파고는 3~4미터나 되는 좋지 않은 날씨였죠. 말라카 해협으로 해서 싱가포르를 통과해 가던 중 300~400m 떨어진 곳에 어떤 물체가 보이더군요. 얼른 망원경으로 보니 구조를 요청하는 난민들이었어요”
베트남 난민(보트 피플)은 작은 나뭇 배에 의지해 표류 중이었다. 엔진 고장에 설상가상으로 구멍까지 뚫려 낡은 배에는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침몰 직전의 절박한 상황에서 전제용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였다.

난민 곁으로 40여 척의 선박이 지나갔다. 하지만 어느 한 척도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그들은 쉴새없이 물을 퍼내면서도 선박이 지나가면 사력을 다해 구호를 요청했다. SOS를 외치다 혼절하기도 하며 지칠 대로 지쳐 자포자기 상태에 있을 때 나타난 전제용 씨는 생명의 신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뉴스에서는 보트피플이 구조를 거부당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했었다. 강제송환이나 상륙거부로 인한 참상이 전해지면서 ‘바다의 아우슈비츠’라는 말도 생겼다.
‘항해 중이든 아니든 내 선박이 위험하지만 않다면 조난선을 구조할 의무가 있다’고 배워 온 전제용 씨는 ‘나는 보트피플 만나면 반드시 구조할 거다’ 마음먹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는 침착하게 선원들을 먼저 불러 모았다.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활해 온 선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다. 선원들이 반대하는 일을 감행한다면 귀항길 내내 갈등의 연속일 것이 불 보듯 훤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난민이 10명 정도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배 밑바닥에서 수십 명이 쏟아져 나오는데 세어보니 모두 96명이더군요”

난민 구조의 혹독한 대가 치르다
본사에서는 ‘뗏목을 만들어 바다에 내려놓고 와라’, ‘무인도로 보내라’는 등의 강압적인 지시를 해왔다. 하지만 기껏 살려 놓은 난민을 다시 사지로 내모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지시대로 했다가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국제적 망신이요, 외교문제까지 발생하게 된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반문하며 부산 입항을 통보했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난민들을 되돌려 보낸다면 평생을 가슴 아파하며 후회할 자신을 잘 알기에 ‘설마 나를 죽이기야 하겠냐’는 마음으로 부산항에 도착할 때까지 난민들을 극진히 보살폈다.

각오는 했지만 난민구호의 대가는 혹독했다. 부산항에 도착한 그와 선원들은 정부의 관계기관으로부터 강도 높은 심문을 받았다. ‘보트피플 선주와 사전에 모의가 있었느냐, 돈을 얼마나 받았느냐’는 등 모욕적인 언행에 마음고생도 많았다.

구조된 난민들은 전제용 씨와 격리되었으며 면회금지명령을 내렸다. 그 뒤 부산 난민 수용소에서 1년을 대기하던 난민들은 미국이나 프랑스 호주 등 제3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바보같이 그런 사람들을 왜 데려왔어’, ‘전 선장이니까 데려왔지, 아무도 하나’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 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회사에서도 해고되어 몇 년간 다른 회사에도 취직하지 못했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랬고, ‘전제용’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이 파다하게 났었다. 하지만 언론에 공개되지 못했고, 얼마 전까지 긴 시간을 가슴에 묻어왔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하다
50대 초반에 원양어선 승선생활을 마친 전제용 씨는 1995년, 우여곡절 끝에 고향 통영에서 멍게 어장을 시작했다. 멍게는 산란 후 2년이 좀 지나야 어른 주먹만해지며 비로소 상품가치가 된다. 그리고 수온에 따라 어장을 옮겨가며 아이를 키우듯 늘 조심스럽게 상태를 점검하고 살펴야 한다.
“요즘 지구 온난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 15년 전과 비교해 보면 수온이 0.2~0.3℃ 정도 차이가 나요. 그리고 백화현상이라고 하죠? 바위에 해초가 참 많았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바다풀을 먹고 사는 전복도 살 수가 없죠”멍게 어장에도 변화가 많았다. 전에는 난 10개 중 8~9개가 살았는데 지금은 반대로 10개 중 1~2개만 겨우 살아남는다. 그래서 경북이나 강원도 어장으로 보내 양식을 해 여름나고 실어오기도 한다. 녹록치 않은 일이지만 40년 넘게 바다만 보고 살아온 그에게 바닷일은 천직이고, 바다는 그의 생활의 터전이자 직장이다.

20년 만의 해후
통영에서 멍게어장을 하며 조용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날아온다.
“20년 전 보트피플을 구한 전 선장이 맞습니까?”
전제용 씨는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세월은 흐르고 흘러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생명을 구해준 이나 생명을 구한 이 모두 서로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구조된 난민 중 한 사람이었던 피터누엔 씨는 베트남에 있을 때 영어교사였다. 영어에 능통하다보니 베트남전쟁 당시 통역장교를 맡게 되었고, 그 덕분에 전쟁 후 징역을 살았다. 복역 후 세상에 나와 보니 그가 발붙일 곳은 아무 데도 없었고, 그래서 탈출을 감행하게 됐다.

광명 87호에 구출되었을 때, 전제용 씨는 난민을 통솔할 대표를 뽑게 했는데 거기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피터 누엔 씨가 뽑히게 됐다. 그러다보니 전제용 씨와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꽤 인간적인 정도 쌓았다.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간 피터누엔 씨는 LA의 모 병원 간호사로 취직해 중증환자들을 돌보았다. 당시 수간호사는 한국인 김순희 씨였다.
지난 2002년 김순희 씨가 잠시 한국에 다녀올 일이 생기게 되자, 피터누엔 씨는 영문 이름이 적힌 사진 한 장을 건네주며 전 선장을 꼭 찾아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전 선장 찾기는 한강에서 바늘찾기였다.

그래도 방법이 없진 않았다. 김순자 씨는 수협중앙회에 근무하던 제부에게 도움을 청했다. 제부는 대한민국 어선에게 보내는 전문 등을 총괄하는 업무를 담당했었다. 김순자 씨의 제부는 후배를 통해 인천에서부터 서해로 목포까지, 그리고 다시 속초에서부터 부산까지 동해 무선국 18곳을 샅샅이 뒤졌다. 마지막 부산에서 20년 전 ‘광명87호’의 선장 전제용 씨를 찾았다. 40년이 넘도록 바뀌지 않은 집 전화번호가 그 두 사람의 질긴 인연의 끈을 이어주었다. 이를 계기로 20년이 지난 뒤에야 전제용 씨의 미담이 알려졌고 한국은 물론 미국언론에서도 대서득필했다.

피터누엔 씨는 부산의 난민보호소를 떠나 생면부지 미국 땅에 도착하면서 세 가지 다짐을 했었다. ‘직장을 구해 자리를 잡고, 베트남에서 가족을 데려오겠다. 그리고 생명을 살려준 전 선장을 반드시 찾겠다’고. 전제용 씨를 다시 만나던 날, 피터 누엔은 세 가지를 모두 이루었다며 한 없이 눈물을 흘렸다.

피터 누엔 씨의 초대로 미국에 건너간 전제용 씨는 LA 베트남커뮤니티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이 일로 그동안 소원했던 미국 내 한인과 베트남인의 사이를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됐고, 그가 방문했던 8월 8일은 한국과 베트남 우정의 날로 정해졌다.
가족보다 더 깊은 정 나눠
전제용 씨는 피터 누엔 씨를 만난 이후 자신이 구조했던 베트남 난민들과의 소식이 닿기 시작했다. 미국, 태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새 삶을 찾은 그들은 아직도 전제용 씨를 ‘캡틴’이라고 부르며 한국을 방문하거나 편지 · 이메일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해온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편지 보내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라고는 하지만 받은 편지를 따로따로 보관해 적적할 때마다 펴서 읽고 또 읽을 만큼 전제용 씨에겐 커다란 즐거움이다.
피터누엔 씨는 전제용 씨를 ‘큰 형님(Big brother)’이라 부르며 따르고, 전제용 씨는 피터누엔 씨는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라고 표현한다.
“피터는 하루 4시간 이상을 안 자요. 병원 근무 외에 4~5가지 일을 해요. 독거노인 식사배달이나 목욕시켜 드리기, 병원 모셔가기, 전화상담 등 봉사하느라 잠이 부족해요. 노인들 상담전화 받다보면 밤새기 일쑤인데도 행복해 합니다”
다시 얻은 생명인 만큼 도우며 사는 일에 열심인 피터 누엔 씨를 보면서 전제용 씨의 마음도 흐뭇하다. 전제용 씨 역시 어려운 베트남인을 남모르게 도와 왔고, 앞으로도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인 최초 UN난센상 후보 올라
지난 4월 13일 전제용 씨는 96명의 베트남 난민을 구한 공로로 국회 인권포럼(대표 황우여)이 시상하는 ‘올해의 인권상’을 받았다. 그는 “상을 받을 만한 일을 했는지, 24년 전의 일을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전제용 씨는 UN의 노벨평화상이라 불리는 ‘난센상(Nansen Award)’ 올해의 후보에 올라 있다. 그를 UN난센상에 추천한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다. 피터 누엔 등 당시 함께 구조된 사람들을 비롯한 외국인단체들이다.

난센상은 난민구조에 크게 공헌한 개인 또는 단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인도양에서 아프가니스탄 해상난민을 구출한 노르웨이 선장, 20년간 10만 명 이상의 난민들에게 시력검사와 안경을 제공한 일본의 후지안경 회장,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이태리의 테너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이 이 상을 수상을 했다. 1954년 이래 지금껏 한국인은 이 상을 받지 못했고 전제용 씨가 유일하게 후보로 추대되었다.
‘잘 산다’는 소식이 가장 큰 기쁨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20년 전으로 돌아가도 난민을 다시 구조하겠느냐”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당연하죠. 사람이 생명을 구한다는 것 이상 고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거기에 물질적인 것과 비교한다거나 개인적인 불이익을 계산한다면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죠”라고 답변했다.

어렵게 진행된 그와의 인터뷰 말미에 고백처럼 내놓은 그의 이야기다.
“당시 구조됐던 사람들은 말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달라 보지도 못하고 편하게 의사소통도 못하지만 마음으로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만 어디에서든 그들이 그토록 갈구했던 자유를 누리며 살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요즘 그는 요즘 언론들의 취재열기와 뜨거운 관심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 그저 베트남 난민이었던 그들과 서신을 교환하고, 사진 들여다보면서 그리움을 달래는 것, 그것이 전제용 씨의 가장 큰 기쁨이고 행복이다.

노총각님의 댓글

노총각
아 감동적입니다.  전 선장님 멋진 행님 입니다.  저라면 과연 그랬을 수 있을까?  그랬으리라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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