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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를 기념하자는 사람들에게 - 백악관 출입기자 문명자의 40년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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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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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를 기념하자는 사람들에게

 

- 파시스트의 망령을 끌고 21세기로 갈 것인가 -
박정희 기념관을 건립한다고 한다. '박정희와의 화해'를 역설한 김대중 대통령이 그 사업의 명예회장을 맡았다고 한다. 이국 땅에서 유신독재 철폐를 위해 평생 동안 싸웠던 사람들이 그런 소식을 들을때 어떤 심정이 되는지는 아무도 상상치 못할 것이다.
 물론 어려운 일을 당하면 과거를 미화해 거기서 안식처를 찾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현상이다. 현재와 같은 IMF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총결집해서 "박" 정권이 이룩한 '한강의 기적'과 같은 '제2의 경제도약'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에 온 나라가 휩쓸릴 만도 한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대한 착오가 있다. 우리가 하루아침에 IMF를 맞은 근본 원인이 정치권력과 결탁한 재벌중심의 경제구조에 있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 하면서도, 바로 그 재벌 경제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 박정희 정권이라는 점은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이룩한 '한강의 기적' 하에서 구로공단의 여성 노동자들은 잠 쫓는 알약을 먹어가며 미싱을 돌려야 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죽어간 전태일의 외침은, 유신체제의 종말을 알리며 죽어간 YH 여성노동자 김경숙에게까지 이어졌다. 어떤 이들은 전두환-노태우의 부정부패와 그들을 모방한 김현철의 작태에 진저리치면서 "박정희 시대에는 이렇지 않았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절에는 그런 사건들이 거론조차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철저히 잊고 잊는 것이다.

 지난 97년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각 당 후보들이 앞다투어 박정희 신화를 제창하고 다닐 때 박정희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씨는 모 일간지에 박정희 회고담을 연재했다. 팔이 안으로 굽는 정도도 아니고 바로 그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비서실장의 증언을 사실 확인도 없이 객관적 진실인 양 보도하는 언론사의 양식도 문제이려니와, '청렴결백했던 박 대통령 이야기에 열화 같은 성원을 보냈다는 많은 독자들의 때이른 건망증에도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정렴씨의 말대로 대통령 박정희가 한여름에도 집무실에서 선풍기를 틀지 않았고, 파리채로 손수 파리를 잡았으며 구멍난 러닝 셔츠를 마다 않고 입었던 사람이라 치자. 과연 그것이 그의 진면목었는가. 그렇다면 그의 18년 통치는 간디사상과 같은 고귀한 정신철학에 입각한 철인정치 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 침실 변기에 벽돌을 집어넣어 한 방울의 물까지도 아끼려 했다는 박정희가 스위스 은행에 비밀구좌를 만들어 거액의 외화를 예치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박정희 자신이 온갖 특혜를 퍼부어 육성한 재벌들에게서 뜯어 낸 돈은 대체 어디로 흘러갔는가. 아울러 수도꼭지까지 금으로 된 안가에 뭇 여성들을 불러들여 방종한 생활을 일삼은 그의 행적과 '청와대 변기의 물 한 방울 아끼기'는 어떻게 비교, 해석되어야 하는가.
 그의 18년 독제체제가 남긴 가장 큰 문제는 4.19 이후 한국민들이 씨 뿌리고 키워 가던 민주주의의 싹을 근원부터 잘라 버린 일이다. 그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후 이 나라에서는 오직 그의 말과 뜻만이 법이었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자.

 학생들의 반유신 운동을 지원했다 해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받다 숨진 최종길 교수에 대해 중앙정보부는 "그가 취조중 변소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주장했으나 시신을 끝내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그만큼 최 교수에게 가해진 고문이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거나 그의 죽음에 밝히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박' 정권은 또 64년 국가 전복을 음모했다 하여 41명의 지식인들을 구속해 이른바 '인혁당 사건'이란 이름 하에 무리하게 기소하려다가 일선 담당 검사들의 사표파동까지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박' 정권은 이 사건 관련자들을 74년 다시 국가 전복 혐의로 잡아 넣었고, 불과 반년 후인 이듬해 4월 이들 중 8명을 전격 처형했다. 격화되고 있는 민중의 저항을 공포정치로 차단하려 한 것이었다.

 75년 8월17일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사한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답답해 온다. 그가 나에게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어도 박정희만은 안된다"고 역설하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광복군 간부로 일제에 저항하던 장준하로서는 관동군 중위로 독립투사들을 잡으러 다니던 박정희가 해방 조국의 대통령으로 행세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민중의 저항을 누르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급기야 박정희는 호남이라는 희생양을 동원했다. 국민 전체가 호남과 반호남으로 나뉘어 대립 갈등하게 만든 그의 분할 통치전략이 장기집권에는 주효했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지역주의라는 민주주의 최대의 장벽을 이 땅에 뿌리박게 만들고 말았다.

 이 같은 독재와 인권탄압에 대해 비판이 미국 조야에 빗발치자 박정희는 70년대 초부터 워싱턴 정가에 거액의 달러를 뿌리기 시작했다. 김동조 주미대사는 현직 대사의 신분임에도 의회를 돌면서 거액의 돈봉투로 미국 국회의원들을 매수하려다 말썽을 일으켰다. 박정희가 기용한 '대미 로비스트' 박동선 역시 로비를 한다며 의원들에게 수백만 달러의 뇌물을 뿌렸다가 자신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자 한국으로 도망갔다. 김한조 사건 역시 미국 국회의원 매수작정의 일환이었다. 전 대한적십자사의 총재 강영훈 씨도 중앙정보부의 돈으로 워싱턴에 한국문제연구소라는 것을 만들어 미국 학계와 언론계에 친박정희 여론을 조성하려고 활동하다가 FBI로부터 강제 소환장을 받자 가족을 놔두고 혼자 손가방 하나만 들고 한국으로 도망갔다.

 이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국익보다는 박정희 개인 찬양과 정권 연장에 힘썼다는 점이다. 심지어 한국 정부로부터 60만 달러를 받아 자신이 챙기고는, 푼돈으로 미국 국회의원을 매수해 국회 의사록 한 귀퉁이에 박정희를 찬양하는 발언을 올리게 하고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그 기록을 가져다가 박정희에게 보이고 대단한 공을 세운 양 과시한 자도 있었다.

내 인생을 바꾼 두 인물 박정희와 김대중

  사실 박정희는 내 인생을 결정적으로 뒤바꾼 인물이다. 나는 6.25 전쟁 중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61년부터 73년 미국에 정치망명 할 때까지 10여 년 간 워싱턴에서 특파원 생활을 했지만 미국에 정착하려는 생각은 전혀 해 본 적이 없었다. 미국이란 잠시 출장 나와 있는 곳에 불과할 뿐이었다. 비록 철권정치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곳이지만, 그럴수록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한국이라는 생각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이 발생했다. 한국 내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보도가 완전히 통제도고 있었다. 나는 당시 MBC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뉴스 시간에 유엔총회 보도 말미에 슬쩍 붙여 이 사건을 언급했다. 본사로부터 바로 귀국명령이 떨어졌다. 출국 전날 한밤중에 전화가 왔다. "김포에 내리자마자 중앙정보부로 연행될 것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였다. 한 동료가 나를 염려한 나머지 위험을 무릅쓰고 전화한 것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의 전화는 나로 하여금 서울행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행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유신체제 하에서 단 한 사람의 기자라도 살아남아 박정희의 정체를 사실 그대로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결국 나는 미국에 정치망명했고, 미국 시민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신체제가 무너지는 순간까지 한국에 있던 나의 형제자매들이 중앙정보부의 갖은 협박과 탄압에 시달려야 했던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 나는 나로 인해 고통받다 세상을 떠난 그들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 나 개인으로서는 박정희라는 인물을 철천지 원수로 치부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에 대한 나의 심리는 그처럼 단선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의 아내 육영수에 이르면 더욱 그렇다. 나에게 박정희는 자료속의 취재 대상이 아니라 만나서 악수하고 대화하고 밥 먹고 입씨를 했던 살아 숨쉬는 동시대인 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61년부터 72년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그와 만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로 날아가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무려 14간 동안 3선개헌에 대해 입씨름한 일도 있고, 육 여사의 초청으로 참석한 대통령 가족 식사 자리에도 '손잡고 일하자'고 권유하는 박정희 부부의 호의를 뿌리치기도 했다.

 특히, 육영수 여사와의 만남은 '친교'라고도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처음 육 여사가 나를 불렀을 때 나는 육 여사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고, 그것은 나중에 애정과 연민으로 발전했다. 그녀가 털어놓는 내면의 갈등과 고통의 소리를 통해 나는 인간 박정희와 그 시대의 본질에 더욱 세밀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박정희와 함께 나의 인생 행로를 바꿔놓은 또 한 사람의 인물이 김대중이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박정희의 최대 정적이었다. 그러나 유신체제와 맞서 싸우는 민주화운동 세력에게 김대중은 한 개인이 아니었다.

 70년대 내내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인 재미 민주화 운동 세력들의 피켓에는 '김대중을 석방하라'고 씌어 있었다. 이 짧은 문장이야말로 유신체제의 폭압성과 그것이 무너져야 할 당위성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에게 덮어씌워진 무고한 혐의들을 벗기고 그를 살려 내는 것은 필자의 70년대 최대 과제였다.. 그 과정에서 김대중 부부와 나는 민주화 동지로서 깊은 우의를 맺었다.

 마침내 김대중 씨는 지역연합이라는 수단을 통해 그의 숙원이던 자리에 올랐다. 나는 지난 97년 대선 과정에서 김종필과 나란히 선 김대중 씨의 모습이 텔레비젼 화면에 비칠 때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결단코 DJP연합에 찬성할 수 없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복 형제들을 죽이는 반인륜적 방식을 통해 왕위에 오르긴 했어도 집권 기간 동안 세종시대라는 태평성대의 기초를 닦는 역할을 훌륭히 해낸 태종처럼, 김대중 씨가 이왕이면 재임중에 민족사에서 의미 있는 업적을 쌓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 책에서 김대중 씨에 관한 내용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것은 그가 아직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미완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를 중심으로 박정희와 유신시대를 평가해 보는 작업은 일단 뒷날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새삼 30~40년 전의 취재수첩을 들춰가며 죽은 박정희와 씨름하게 된 것은 한국 땅에서 들려오는 '박정희 신드롬' 이라는 푸닥거리 때문이었다. 21세기를 앞두고 그리워할 것이 그리도 없어 파시스트의 망령을 불러 댄단 말인가.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청산 없이 화해란 빈말일 뿐이다.


http://society-true.blogspot.com/#1_11
 박정희 권부의 언론통제로 빛을 보지 못했던 필자의 워싱턴 발 기사들을 이제 공개한다. 새까만 선글라스를 낀 조그많고 까무잡잡한 사내가 워싱턴 내셔널 공항에 나타나던 시절에서부터 시작해 보기로 하자.

[ 차례로가기 ]
1장 - 미 정보기관은 5.16을 지원했다.


눈 속에서 펼쳐진 케네디 취임식

6.25가 터졌을 때 나는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1학년생이었다. 막 들어간 대학을 석 달도 다니지 못한 채 학업은 중단되었다. 그 후 전쟁 중인 1951년 나는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피난지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유난히 교육열이 높으셨던 어머니가 나의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무진 애를 쓰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일본에서 메이지대학 경제학부를 마친 후 와세다대학 국제법 대학원에 다니면서 당시 한국 최대의 여성지였던 [여원]사의 도쿄지국장으로 1956년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1961년은 나에게는 여러모로 큰 변화가 있었던 해였다. 우선 61년 1월 미국의 일간지 [존 크로니클]의 초청으로 두 달 간 미국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존 크로니클]은 오랜 전통의 지방신문으로서 이승만에 대해 많이 보도했다. 그 때의 인연으로 나를 초청했던 것이다.
추천 1

작성일2016-11-20 15:04

학필이님의 댓글

학필이
좋은 자료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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