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씨애틀에서) -심심풀이 땅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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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에서 샌디에고로 이사를 하게됐다.
시애틀에선 아파트를 세얻어서 이층집 아파트 이층에서 살게됐다.
한국에서 이삿짐을 컨테이너로 보내는 바람에 적은 짐은 아니였다.
지금 생각하면 뭔 짐을 그리 많이 보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 학교 하구는 가까워서 좋았는데,우리 식구가 살기엔 좀 복잡했다.
처음 미국으로 이주할 마음을 굳혔을땐, 시카고와 얼바인으로 답사를 했는데,
뭐! 시애틀의 빌게이츠 학교가 어떻구, 시애틀에 밤이 어떡구 하는 바람에 시애틀로 짐을 보냈다.
시애틀에 와보구 나서야 비가 부슬부슬 많이 온다는 사실을 쏙 뺀걸 알았다.
시애틀에 와보니 그래도 사람들 마음이 따뜻하고 넉넉하게 보여서 좋았다.
차가 눈속에 파묻혀도 삽을 들고 나와서 서로 꺼내주는 기지를 발휘 할줄아는 고마운 동네였다.
아이들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샌디에고로 이사를 하게됐다.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이삿짐 업체를 전화 번호책에서 찿아서 결정을 했다.
엘에이에 있는 이삿짐 회사였다.
아무래도 나한텐 한국업체가 좋을듯 싶어서...
날자와 시간을 정해놓군, 점심때 부터 기다렸지만 초저녁이 지나고 밤에 도착했다.
짐나르는 인부가 달랑 두명인데,한명은 멕시칸이고, 한명은 흑인인데,
이 흑인 친구는 핏죽도 못먹은, 즈그 나라에서 이제 막온 토종 같았다.
한국 업체라서 당연히 한국 등치들이 오는줄 알았는데, 여기가 미국이란걸 머리 나쁜 난 잊어먹었다.
그래도그렇치 미국이라고 하면서, 허연 백인 한명 정도는 보내 줬어야 되는게 아닌가?,
이게 말이나 될법 한가 말이다. 갑작이 미국이 싫어진다.
일하는 사람왈! 다른 한군데 짐을 풀어 놓구 오는 바람에 늦었단다.
일을 얼마나 못하면 몇시간을 차질이 생기게 하느냐 말이다.
짐에다 번호 스티커를 붙이면서,세월아~네월아~하기에, 스티커도 붙이지 말고(시간절약상),
빨리! 빨리!(한국식)으로 전 식구가 달라 붙어서 옮기기 시작했는데,
아랫층 사람이고, 옆집 사람이구 다들 잠자는 시간에
오르락,내리락, 왔다리, 갔다리,계단 소리가 나의 살빠지는 소리 같아서 안절부절했다.
밤이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짐 나르기를 하자구 우리애가 말을 했으나 안된단다.
약속은 지들이 어겨놓구두 막무가내다.
엘에이 사무실로 전화를 했으나 받지도 않는다. 뭐 이런 썩어 빠진놈들이 다있냐!
밤12시가 지나고, 1시 가까이 돼서야 간신히 마쳤다.
아마도 아랫층 사람과 옆집 사람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는 걸로 아는데,잠을 설쳤으리라 본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이 나와서 째려본 사람들은 없었다.
그렇다구 내가 미안 하다구 말할 실력이나 되나.
다음날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하이" 인사를 했고, 그들은 마음씨 좋은 아군 이였다.
“하이” 아주 좋은 인삿말이다. 미국에 오자마자 곧 숙달이 됐다. 잊어 먹진 않을것 같다.
그들에겐 진심으로 미안했다.
시애틀에서 잠간 만난 학부모가 헤어지기 섭섭하다구 동네 공원에서 갈비 파티까지 해줘서 잘먹고,
고마운 마음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오래곤에서 하루,샌프란에서 이틀,산타바바라에서 하루,엘에이에서 하루,
미서부를 둘러둘러 구경하면서 쉬엄 쉬엄 내려왔다.
*살아가면서 다들 “이사"란걸 경험 했으리라 봅니다.
우리집의 경우를 적어 본것입니다.
다음은 샌디에고에 도착하여 일어난 일입니다.
이러다간 우리집 숫가락, 밥그릇, 숫자까지 나올것 같습니다.하하하
시애틀에선 아파트를 세얻어서 이층집 아파트 이층에서 살게됐다.
한국에서 이삿짐을 컨테이너로 보내는 바람에 적은 짐은 아니였다.
지금 생각하면 뭔 짐을 그리 많이 보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 학교 하구는 가까워서 좋았는데,우리 식구가 살기엔 좀 복잡했다.
처음 미국으로 이주할 마음을 굳혔을땐, 시카고와 얼바인으로 답사를 했는데,
뭐! 시애틀의 빌게이츠 학교가 어떻구, 시애틀에 밤이 어떡구 하는 바람에 시애틀로 짐을 보냈다.
시애틀에 와보구 나서야 비가 부슬부슬 많이 온다는 사실을 쏙 뺀걸 알았다.
시애틀에 와보니 그래도 사람들 마음이 따뜻하고 넉넉하게 보여서 좋았다.
차가 눈속에 파묻혀도 삽을 들고 나와서 서로 꺼내주는 기지를 발휘 할줄아는 고마운 동네였다.
아이들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샌디에고로 이사를 하게됐다.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이삿짐 업체를 전화 번호책에서 찿아서 결정을 했다.
엘에이에 있는 이삿짐 회사였다.
아무래도 나한텐 한국업체가 좋을듯 싶어서...
날자와 시간을 정해놓군, 점심때 부터 기다렸지만 초저녁이 지나고 밤에 도착했다.
짐나르는 인부가 달랑 두명인데,한명은 멕시칸이고, 한명은 흑인인데,
이 흑인 친구는 핏죽도 못먹은, 즈그 나라에서 이제 막온 토종 같았다.
한국 업체라서 당연히 한국 등치들이 오는줄 알았는데, 여기가 미국이란걸 머리 나쁜 난 잊어먹었다.
그래도그렇치 미국이라고 하면서, 허연 백인 한명 정도는 보내 줬어야 되는게 아닌가?,
이게 말이나 될법 한가 말이다. 갑작이 미국이 싫어진다.
일하는 사람왈! 다른 한군데 짐을 풀어 놓구 오는 바람에 늦었단다.
일을 얼마나 못하면 몇시간을 차질이 생기게 하느냐 말이다.
짐에다 번호 스티커를 붙이면서,세월아~네월아~하기에, 스티커도 붙이지 말고(시간절약상),
빨리! 빨리!(한국식)으로 전 식구가 달라 붙어서 옮기기 시작했는데,
아랫층 사람이고, 옆집 사람이구 다들 잠자는 시간에
오르락,내리락, 왔다리, 갔다리,계단 소리가 나의 살빠지는 소리 같아서 안절부절했다.
밤이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짐 나르기를 하자구 우리애가 말을 했으나 안된단다.
약속은 지들이 어겨놓구두 막무가내다.
엘에이 사무실로 전화를 했으나 받지도 않는다. 뭐 이런 썩어 빠진놈들이 다있냐!
밤12시가 지나고, 1시 가까이 돼서야 간신히 마쳤다.
아마도 아랫층 사람과 옆집 사람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는 걸로 아는데,잠을 설쳤으리라 본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이 나와서 째려본 사람들은 없었다.
그렇다구 내가 미안 하다구 말할 실력이나 되나.
다음날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하이" 인사를 했고, 그들은 마음씨 좋은 아군 이였다.
“하이” 아주 좋은 인삿말이다. 미국에 오자마자 곧 숙달이 됐다. 잊어 먹진 않을것 같다.
그들에겐 진심으로 미안했다.
시애틀에서 잠간 만난 학부모가 헤어지기 섭섭하다구 동네 공원에서 갈비 파티까지 해줘서 잘먹고,
고마운 마음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오래곤에서 하루,샌프란에서 이틀,산타바바라에서 하루,엘에이에서 하루,
미서부를 둘러둘러 구경하면서 쉬엄 쉬엄 내려왔다.
*살아가면서 다들 “이사"란걸 경험 했으리라 봅니다.
우리집의 경우를 적어 본것입니다.
다음은 샌디에고에 도착하여 일어난 일입니다.
이러다간 우리집 숫가락, 밥그릇, 숫자까지 나올것 같습니다.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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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5-05-2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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