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칼럼] 불체자가 경쟁 상대가 아닌 이유

요즘 불법체류자들은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느낌일 것 같다. 언제,어디에서 "당신을 체포하러 왔다"는 목소리가 들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녀를 등교시키려다 잡히고, 교통위반으로 적발됐다 추방 대상에 오르는 일도 벌어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이후 진행되는 살풍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달 28일 취임 후 첫 의회합동연설에서도 불법체류자 문제를 언급했다. '마약과 살인 범죄를 저지르고 갱단에 가입해 시민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고… . 마치 불법체류자를 '악의 축'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이날 연설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었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78%가 '긍정적'이라고 답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달라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불법체류자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심각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다. 몇몇 사례를 근거로 마치 전체가 그런 것처럼 매도했다. 1100만 명으로 추산된다는 불체자 전부가 범죄자는 아닌 까닭이다.'불법체류 자체가 범죄'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정책중의 하나가 일자리 창출이다. 이를 위해 미국 기업들에는 유턴을, 외국 기업에는 미국투자를 종용하고 국경세 등 관세장벽 카드도 만지작 거리고 있다. '반이민 정책'도 이런 흐름에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슬로건이지만 그 속에는 '일자리 확보'라는 경제적 함의가 담겨 있다고 생각된다. 어찌보면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일자리를 잃고 좌절에 빠진 지지층에게 분풀이의 대상을 만들어 준 셈이다.

그렇다면 불법체류자들은 미국에 해악만 끼치는 존재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경제부문에선 '그렇지 않다'가 중론이다. 그동안의 많은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매년 이들이 납부하는 세금이 얼마고, 국내총생산(GDP)에는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 등 숫자적인 내용은 연구 주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실'보다 '득'이 많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불법체류자들은 미국경제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주요 종사 분야가 이른바 3D 업종이고, 그것도 대부분 저임금으로 일한다.

만약 이들을 모두 추방하고 그 자리를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로 대체해야 한다면 엄청난 추가 비용의 발생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것이 뻔하다. 한정된 분야의 일자리는 늘어나겠지만 부담도 커지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연방정부나 지역정부의 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것도 아니다. 체류신분 탓에 제한적인 복지혜택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는 것도 혜택아니냐고 하지만 경제적 기여도에 비하면 큰 부분은 아니다.

펜실베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도 지난해 불법체류자 경제 활동 보고서를 내놓은 적이 있다. 주요 취업분야,수입,연령,학력 등을 세밀히 분석한 자료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이 '불법체류자는 노동시장의 대체 인력이 아니라 보조 역할만 할 뿐'이라는 내용이다.

대부분 특별한 기술이 없고 학력 수준도 낮은데다, 결정적으로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 취업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미국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인력과 일자리 경쟁을 벌일 상대가 되기 어렵다는 의미다.

위협보다는 옥석을 가리고 득.실을 따지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동필 /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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