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홍어, 이유 모를 그리움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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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현의 허름해서 오히려] 전남 목포 '덕인집'
"홍어는 아직 안 먹어봤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 저녁에 홍어 먹으러 가자."
신입 사원 시절이던 스물여덟 살에 처음 홍어를 먹었다. 반백(斑白)인 데다 삼국지 속 마량(馬良)처럼 백미(白眉), 작고 단단한 체구에 눈이 맑고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내 첫 상사는 홍어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날 저녁 목적지는 서울 화곡동 어디 유명한 홍어집. 그 골목에 들어서자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했다. 정체는 홍어 삭은 내. 처음 맛본 홍어는 오미(五味)로 설명할 수 없었고 젓가락질 몇 번에 지치고 말았다. 그리고 받은 질문 하나.
"무슨 맛인지 알겠냐?" "맛이 독특합니다."
상사는 씩 웃고 말이 없었다. 홍어 맛 좀 안다는 사람들은 타인의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그 맛의 정체를 굳이 나누지 않는 비밀스러운 홍어 애호가들이 나는 부러웠다. 도대체 무슨 맛일까? 나는 그날 이후 '열심히'라는 부사가 어울릴 만큼 홍어를 찾아 먹었다. 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럴수록 홍어 맛은 신기루 같았다. 그래서 나는 목포로 향했다.
흑산도산 홍어 삼합
조선 3대 항구였다던 목포. 서울에서 KTX로 3시간 걸리는 이 항구 도시의 평일은 적막하다. 건물은 낮고 거리는 어둡다. 하지만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홍어 식당이 목포에 있다. 그러나 내가 찾은 곳은 금메달 딴 그곳이 아니다. 목포 원도심 무안동의 '덕인집'이다.
흑산도산 홍어 삼합<사진>이 8만원. 가볍게 술 한잔! 하는 구호에 어울리는 값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 마리에 몇 십만원이 쉽게 넘어가는 흑산도 홍어 시세를 알기에 불만이 없다. 30년 넘게 이 식당을 운영해온 주인장이 인심 담아 도톰하게 썬 홍어는 은은히 빛나는 연분홍빛. 삼합의 또 다른 주인공인 돼지 수육 역시 그 겉모습만으로도 맛을 짐작할 수 있다. 기름기 분포와 살코기 색깔에서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풍미를 예감한다. 옆에 놓인 묵은지 색은 계통을 따지자면 레드(red)보다 진하고 와인(wine)보다는 채도 높은 스칼릿(scarlet)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입에 침이 돈다.
이제 맛을 볼 차례. 내륙으로 갈수록 삭힌 정도가 더하다는 홍어는 목포에서 그 맛이 온순하다. 몸속 가득 차는 암모니아의 발효취는 프랑스산 블루치즈의 풍미를 닮았다. 보드라운 수육은 그 뒤를 묵묵히 받치며 맛에 양감(量感)을 더한다. 말캉한 묵은지는 카랑카랑하게 미뢰(味蕾)를 자극하다가도 색을 덧칠한 듯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이 셋을 모아 입에 넣고 막걸리를 들이켜면 비로소 목포에 와야 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휘청거리며 덜컹거리는 가게 문을 열고 나오니 건너편에 어떤 광경이 펼쳐졌다. 손님 없는 가게 너른 한가운데 아주머니 몇몇이 문을 열고 앉아 타령조 노래를 부르며 젓가락을 두들기고 있었다.
러시아 철학자 미하일 바흐친은 이 세상 어느 것도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잊힌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내 몸속 어딘가에 쌓여간다. 그 때문에 나는 문득문득 이유 모를 그리움에 사무친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 도시에서 바쁨을 핑계로 잊고 또 지우며 산 얼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상사에게 보낸 가벼운 문자 한 통과 명쾌한 대답. '잘 계시나요?' '그래! 너는 잘 지내냐?' 나는 그제야 묵은 홍어의 맛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홍어는 아직 안 먹어봤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 저녁에 홍어 먹으러 가자."
신입 사원 시절이던 스물여덟 살에 처음 홍어를 먹었다. 반백(斑白)인 데다 삼국지 속 마량(馬良)처럼 백미(白眉), 작고 단단한 체구에 눈이 맑고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내 첫 상사는 홍어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날 저녁 목적지는 서울 화곡동 어디 유명한 홍어집. 그 골목에 들어서자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했다. 정체는 홍어 삭은 내. 처음 맛본 홍어는 오미(五味)로 설명할 수 없었고 젓가락질 몇 번에 지치고 말았다. 그리고 받은 질문 하나.
"무슨 맛인지 알겠냐?" "맛이 독특합니다."
상사는 씩 웃고 말이 없었다. 홍어 맛 좀 안다는 사람들은 타인의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그 맛의 정체를 굳이 나누지 않는 비밀스러운 홍어 애호가들이 나는 부러웠다. 도대체 무슨 맛일까? 나는 그날 이후 '열심히'라는 부사가 어울릴 만큼 홍어를 찾아 먹었다. 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럴수록 홍어 맛은 신기루 같았다. 그래서 나는 목포로 향했다.
흑산도산 홍어 삼합
조선 3대 항구였다던 목포. 서울에서 KTX로 3시간 걸리는 이 항구 도시의 평일은 적막하다. 건물은 낮고 거리는 어둡다. 하지만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홍어 식당이 목포에 있다. 그러나 내가 찾은 곳은 금메달 딴 그곳이 아니다. 목포 원도심 무안동의 '덕인집'이다.
흑산도산 홍어 삼합<사진>이 8만원. 가볍게 술 한잔! 하는 구호에 어울리는 값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 마리에 몇 십만원이 쉽게 넘어가는 흑산도 홍어 시세를 알기에 불만이 없다. 30년 넘게 이 식당을 운영해온 주인장이 인심 담아 도톰하게 썬 홍어는 은은히 빛나는 연분홍빛. 삼합의 또 다른 주인공인 돼지 수육 역시 그 겉모습만으로도 맛을 짐작할 수 있다. 기름기 분포와 살코기 색깔에서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풍미를 예감한다. 옆에 놓인 묵은지 색은 계통을 따지자면 레드(red)보다 진하고 와인(wine)보다는 채도 높은 스칼릿(scarlet)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입에 침이 돈다.
이제 맛을 볼 차례. 내륙으로 갈수록 삭힌 정도가 더하다는 홍어는 목포에서 그 맛이 온순하다. 몸속 가득 차는 암모니아의 발효취는 프랑스산 블루치즈의 풍미를 닮았다. 보드라운 수육은 그 뒤를 묵묵히 받치며 맛에 양감(量感)을 더한다. 말캉한 묵은지는 카랑카랑하게 미뢰(味蕾)를 자극하다가도 색을 덧칠한 듯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이 셋을 모아 입에 넣고 막걸리를 들이켜면 비로소 목포에 와야 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휘청거리며 덜컹거리는 가게 문을 열고 나오니 건너편에 어떤 광경이 펼쳐졌다. 손님 없는 가게 너른 한가운데 아주머니 몇몇이 문을 열고 앉아 타령조 노래를 부르며 젓가락을 두들기고 있었다.
러시아 철학자 미하일 바흐친은 이 세상 어느 것도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잊힌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내 몸속 어딘가에 쌓여간다. 그 때문에 나는 문득문득 이유 모를 그리움에 사무친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 도시에서 바쁨을 핑계로 잊고 또 지우며 산 얼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상사에게 보낸 가벼운 문자 한 통과 명쾌한 대답. '잘 계시나요?' '그래! 너는 잘 지내냐?' 나는 그제야 묵은 홍어의 맛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추천 1
작성일2017-04-08 17:40
캘리님의 댓글
캘리
한국가면 꼭 한번가서 먹어 봐야지..
요사이는 왜 이렇게 먹고 싶은것이 많은지...
이번 여행에서 너무나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보아서 자꾸 침이 꿀떡 넘어가네..
요사이는 왜 이렇게 먹고 싶은것이 많은지...
이번 여행에서 너무나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보아서 자꾸 침이 꿀떡 넘어가네..
캘리님의 댓글
캘리
앞으로는 다른 음식들과 우리집에서 먹은 음식들을 올리려고 하는데..
내리는빗물님의 댓글
내리는빗물
ㅋㅋㅋ, 캘리야 니가 원하는대로 한국에 전쟁날것 같은데 전쟁나도 한국에 가겠니?
저산은님의 댓글
저산은
흠 사진 좋다.. 컬러풀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