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부터 블라인드 채용 "보이지 않는 것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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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열린 채용설명회. 블라인드 채용을 대비해 마련됐다.
“블라인드 채용이 실시되면 그동한 했던 노력들을 더 알아주지 않을까요?”
지난 23일 서울의 한 취업설명회에서 만난 김모(26·여)씨는 올 하반기부터 블라인드 채용이 본격적으로 도입 된다는 소식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마케팅 분야 취업을 준비한다는 그녀는 상반기까지 50여 곳에 지원서를 냈지만 서류전형 합격률은 고작 10%정도였다고 한다. 김씨는 “서류에서 탈락할 때마다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보다 먼저 드는 생각이 대학, 전공, 성별 등 이었다”며 “기업에서 학력, 스펙을 보지 않는다고 해도 믿을 수 없었는데 의무적으로 비공개하도록 하면 조금은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자신의 대선시절 공약이었던 ‘블라인드 채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하반기부터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을 추진할 것이며 민간 대기업에도 ‘권유’ 하고 싶다”는 입장을 전했다.블라인드 채용이란 이력서에 학력, 출신지, 가족관계, 신체조건 등 인적사항과 직무에 불필요한 스펙을 게재하지 않는 채용방식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5일 공공기관이 사용 할 ‘표준이력서’를 공개하며 서류면접 전형에서 편견이 개입될 수 있는 항목을 삭제하고 이를 민간부분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표준이력서에는 직무관련 교육사항, 자격사항, 경력사항 등을 기입하도록 돼 있다.숭실대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정준(26)씨도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학벌을 안 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섬유 계열 회사에 취업을 희망한다는 그는 “블라인드 채용이 실시되면 학벌보다 사람 자체를 보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나”면서 “면접도 심층적으로 바뀔 것 같아 회사에 맞는 인재를 효과적으로 선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취업준비생 997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찬반을 설문한 결과 82%가 찬성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이유로는 ‘불필요한 개인신상 정보 등 기존 이력서 항목의 불합리함(56.5%, 복수응답)’과 ‘스펙과 실무역량의 낮은 연관성(51.6%)’을 가장 많이 꼽았다.반면 일부 취업준비생은 블라인드 채용이 과연 직무역량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전하고 있었다.
취업준비생 김동현(27)씨는 “블라인드 채용으로 면접의 비중이 확대될 텐데 짧은 시간에 직무에 대한 노력을 얼마나 알아줄지 의문이 든다”고 걱정했다. IT(정보통신)계열 취업을 준비하는 그는 모바일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며 직무에 대한 역량을 쌓고 있었다.김씨는 “작은 기업 면접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다”며 “면접관들은 내 이력서를 읽어보지 않았는지 내가 준비하는 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질문만 늘어 놓더라”라고 과거 경험을 털어놨다. 이어 그는 “각자 다른 경험을 쌓은 수많은 지원자가 모일텐데 짧은 시간 면접관들이 그들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라며 면접 확대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전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IT관련 학과를 전공한 최모(31)씨는 “블라인드 채용에선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차이가 없다”며 “이건 4년 동안 관련 공부를 한 해당 전공자가 역차별 받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이어 그는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채용은 각각 필기시험으로 NCS(국가직무능력시험), 적성검사를 보는데 전공과 상관성을 모르겠다”며 “직무역량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결국 필기시험, 면접기술이 중요할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취업준비생 361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채용’이 과연 우리 사회에 안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안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구직자는 52%, ‘안착하기 어려울 것’이라 우려한 구직자는 48%로 나타났다.‘블라인드 채용 실시 후에도 어학·학점·인턴 등 기존의 스펙 준비를 계속할 의향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도 76%가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어차피 기본 스펙은 갖추어야 할 것 같아서(39%)’,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하지 않는 기업들도 별도로 준비해야 할 것이므로(21%)’가 뒤를 이었다.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 ‘표준이력서’ 등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은 잡혔지만 아직 공공기관, 민간기업이 어떤 식으로 새로운 채용 프로세스를 도입할지에 대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직무에 따라 요구되는 자격증이나 어학성적 등이 달라 정량적인 ‘스펙’의 중요성이 낮아졌다고 말하기도 어렵다.한 중견기업 인사담당자는 “인사팀의 규모가 크면 모르겠지만 보통 기업은 그 많은 이력서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해 서류전형에서 액셀을 돌려 역량 키워드나 학력·스펙으로 지원자를 가리고 있다”면서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취지는 공감하나 아직 어떻게 도입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전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957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올 하반기 채용에서 중시할 이력서 항목’을 조사한 결과 아직 대다수 인사담당자들은 ‘출신대학교 및 전공(72.75%)’을 보겠다고 답했다. 이어 실무경험(64.64%), 학점(62.16%) 등이 뒤를 이어 ‘블라인드 채용’을 강조하는 정부의 기조와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NCS(국가직무능력표준)를 총괄하고 있는 한국산업인력공단 김진실 팀장은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무분별하게 스펙을 쌓기보다 (기업에 필요한) 명확한 필요한 스펙을 쌓으라는 것”이라며 “필기시험은 직무상황, 판단력, 전공 관련이 증가할 것이고 면접도 직무와 관련된 지표와 질문 문항을 만들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일보 안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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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7-08-2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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