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일 SBS는 '해수부가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유리하게 하려고 세월호 인양 시기를
일부러 늦췄고 문 후보는 그 대가로 해수부 조직을 늘려주기로 했다'는 해수부 공무원 인터뷰를 보도했다.
문 후보는 대통령이 탄핵 당하던 날 팽목항에 가서 사망 학생들을 향해 '미안하고 고맙다'고
쓰기도 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모습의 공통점은 비극적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문 후보는 스스로 정치화한 사건에 부메랑처럼 피해를 보게 되자 격분하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의 주장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같은 피해를 보았을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 문재인은 탄핵이 결정되자마자 팽목항을 방문하여 방명록에"얘들아 너희가
촛불광장의 별이었다" "미안하고 고맙다" 라고 썼다, 바다에 빠져서 죽은 그많은 학생들에게 고맙다니 뭐가 고맙다는 말인가? 그 말의 뜻은? 이게 할 말이고 이게 할 행동인가?
(2)해양수산부 세월호 현장수습본부가 17일 오전 세월호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골을 수습하고도 5일간 은폐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18일 영결식을 치렀다.
[조선사설] '2017.05.05
SBS가 '해수부가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유리하게 하려고 세월호 인양 시기를 일부러 늦췄고
1912년 4월 14일은 공포의 날이었습니다. 사고로 1,514명이 사망했고 710명이 구조되었습니다. 사고 당시 38세였던 타이타닉호의 이등 항해사 찰스·래히틀러 씨는 구조된 승객을 책임지기 위해 선원 중 유일하게 구조된 승무원이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주요 승무원 50여 명 중 구조를 책임졌던 이등 항해사 래히틀러 외 전부 자리를 양보하고 배와 함께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래는 찰스·래히틀러 씨의 타이타닉호 참사의 자세한
사정을 담은 17페이지 분량의 회고록입니다.
선장은 침몰을 앞두고 여성과 아이를 먼저 구조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많은 여성승객들이 가족과의 이별 대신 남아있기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높은 소리로 ‘여성과 아이들은 이리 오세요!’라고 불렀지만, 가족을 버리고 혼자 구명보트에 오르려는 여성과 아이는 몇 명 없었습니다. 래히틀러는 ‘살아 있는 동안 그 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첫 구명보트가 바다로 내려가고, 저는 갑판 위에 한 여성에게 말했습니다. “부인, 어서 구명보트에 오르세요!”그녀는 뜻밖에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니요, 저는 배에 남겠어요.”이 말을 들은 여성의 남편이 “그러지말고 어서 타세요! 여보!”라고 말하자, 여성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혼자 가지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이 배에 남을거에요.” 그것이 제가 본 그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애스터 IV(당시 세계 최고 부자) 씨는 임신 5개월 된 아내를 구명보트에 태워 보내며 갑판 위에 앉아, 한 손에는 강아지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시가 한 대를 피우면서 멀리 가는 보트를 향해 외쳤습니다. ‘사랑해요 여보!’승객들을 대피시키던 선원 한 명이 애스터 씨에게 보트에 타라고 하자, 애스터 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애스터 Ⅳ 부부
‘사람이 최소한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자리를 곁에 있던 한 아일랜드 여성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배의 파편들에 의해 찢겨진 애스터 씨의 시신을 생존자 수색 중이던 승무원이 발견했습니다. 그는 타아타닉호 10대도 만들 수 있는 자산을 가진 부호였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거절했습니다.자신의 목숨으로 양심을 지킨 위대한 사나이의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성공한 은행가였던 구겐하임 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도 화려한 이브닝드레스로 갈아 입으며 이처럼 말했습니다. “죽더라도 체통을 지키고 신사처럼 죽겠습니다.”구겐하임 씨가 아내에게 남긴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