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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없는 낙태 없어"..'낙태 공범' 의사들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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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낙태를 말하다] 낙태 의사의 ‘상담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최근 5년간 낙태 관련 판결문 80건 전체를 입수했습니다. 분석 결과 법정에 선 피고인 10명 중 7명은 의사 등 의료진이었습니다.취재팀은 낙태수술 경험이 있는 산부인과 의사 3명을 만났습니다. 1980년대 정부 가족계획위원으로 합법적 ‘낙태의사’였다가 30대 여성 낙태수술 혐의로 처벌받은 이모 씨(78), 20년 넘게 한 낙태수술을 5년 전부터 중단한 김모 씨(57) 그리고 약물·알코올 중독 여성에게 낙태수술을 해준 혐의로 기소된 박모 씨(55·여)입니다.

낙태에 관한 이들의 생각은 모두 달랐습니다. 그래서 세 의사가 자신의 상담실에서 환자들과 나눴던 대화를 재구성했습니다. 법과 윤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의사들의 딜레마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산부인과 원장 이 씨가 쇳물에 누렇게 물든 산부인과 간판 옆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봤다. 허름한 유흥가 곳곳에 도박장과 당구장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었다. 그 사이로 한 여성이 서둘러 건물로 걸어 들어왔다. 쫓기는 듯 발걸음만 봐도 어떤 환자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씨는 차트와 여성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책상 모서리만 바라봤다. 차트에 적힌 여성의 주소지는 이 씨 병원에서 시외버스로 1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다. 보호자 칸은 비어있었다.

“기혼이세요?”

“…”

“첫 임신인가요?”

“…”

“보호자 같이 왔어요?”

“…”

여성은 대답 없이 고개만 가로저었다. 이 씨는 더 묻지 않고 여성을 초음파실로 안내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정이 있음을 직감했다. 낙태를 말려도 다른 병원을 전전할게 불 보듯 뻔했다.시선을 계속 피하며 초음파실 침대에 눕는 여성을 보자 옛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1980년대 정부 지정 가족계획위원이었다. 인구가 너무 빨리 늘어나자 국가에서 낙태를 하도록 지원까지 했다.

그 때는 여성들이 진료실에 죄인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12주 이전 임신부에게 “세포를 떼어내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며 수술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인구가 줄자 낙태는 다시 범죄행위가 됐다.초음파 검사 결과 임신 8주였다. 여성은 까만 영상 속 아기집을 보고도 미동하지 않았다.

“오늘 수술 할 건가요?”

“…”

여성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수술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수술 후 문제가 없는지 봐야 되니 한 번 더 오세요.”

회복실에 누운 여성은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몇 달 뒤 이 씨를 찾아온 건 고소장이었다. 여성의 낙태를 도운 죄였다. 고소한 사람은 여성의 남편이었다. 두 사람은 이혼 소송을 앞두고 있었다. 이 씨가 여성의 목소리를 처음 제대로 들은 건 법정에서다.

“남편이 동성애자인 것 같아요. 곧 이혼할 예정이고 성관계도 거의 없었습니다.”

여성은 울먹이며 말했다. 법정에는 적막이 흘렀다.

억울한 건 이 씨도 마찬가지였다. 산부인과 경력 45년인 이 씨는 12주 미만의 태아는 생명체가 아니라고,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는’ 세포라고 생각했다. 이 씨는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가릴 수 있게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한 때 가족계획위원으로 국가의 부름을 받았던 그는 30년이 지나 범법자가 됐다.

“그런 수술은 하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에 마주 앉은 여성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이달 초 서울의 한 산부인과 상담실에 잠시 적막이 흘렀다.

“선생님, 여기 해주는 병원이라고 하던데요.”

28년차 산부인과 의사 김 씨가 바로 맞받았다.

“안 한지 꽤 됐습니다.”

“여기 버스타고 오는데 1시간 반이 걸렸어요. 그냥 해주시면 안 돼요?”

여성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24세 직장인이었다. 애인과 이별한 직후였다. “안 만나주면 죽이겠다”는 남자친구를 겨우 떼어놓았을 때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선생님, 수술 안 하면 제 인생 망해요. 돈도 없고 집도 없어요. 무조건 지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5년 전까지만 해도 김 씨는 낙태수술을 했다. 일명 ‘낙태의사’였다. 한 달에 20~30명이 왔다. 사연 없는 여성은 없었다. 이날 찾아온 환자도 다르지 않았다. 김 씨가 상담실 모니터 화면을 보며 말했다.

“5주차네요. (화면 속 동그란 점을 가리키며) 이게 아기예요.”

“부탁이에요. 선생님. 지워주세요.”

이 순간이면 김 씨는 늘 고민에 빠진다. 낙태수술 비용은 임신기간이 1주일 길어질 때마다 보통 10만 원씩 늘어난다. 5주차면 최소 50만 원, 10주차면 100만 원 이상 받는다. 출산 환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무시하기 어렵다. 김 씨는 마주 앉은 여성에게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조금 더 생각해보세요. 엄마가 된 여성들은 후회하지 않아요.”

5년 전, 양손에 오렌지 주스를 가득 든 채 김 씨를 찾아온 여성이 있었다. 오래 전 낙태를 해주지 않고 돌려보낸 환자였다. 이혼을 앞두고 임신했던 이 여성도 처음 상담실에 왔을 땐 낙태하겠다는 뜻이 확고했다.

“이혼은 이혼이고 아이의 생명은 별개”라는 김 씨의 말에 여성은 발길을 돌렸다. 두 달쯤 뒤 그는 김 씨를 다시 찾았다.

“선생님, 이혼서류 접수했어요. 제발 수술해주세요.”

“임신 13주가 넘어 위험합니다. 못 해줘요.”

다른 병원에서 얼마든 낙태할 수 있을 텐데 두 달 가까이 아이를 뱃속에 간직했다면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이라고 김 씨는 생각했다.3년 후 김 씨를 다시 찾은 여성은 “그때 말려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여성은 이혼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김 씨는 20년 넘게 낙태수술을 하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어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수술대에 누워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여성들을 보며 내가 정말 이 사람을 돕고 있는지 스스로 묻곤 했다. 김 씨가 수술을 거부하자 결국 출산한 뒤 아이를 입양 보낸 20대 초반의 한 산모는 “최소한 아이에게 살 기회를 줬다”며 위안 삼았다고 한다.이달 초 “생각해보라”며 돌려보냈던 24세 직장인은 2주 만에 김 씨의 상담실을 다시 찾았다. 여전히 단호했다.

“더 커지기 전에 수술 받고 싶어요. 더 커지기 전에….”

김 씨의 대답도 그대로였다.

“아이 낳은 여성은 대부분 후회하지 않습니다. 지우면 두고두고 괴로울 거예요.”

여성은 상담실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문을 열고 나가려다 고개를 돌려 물었다.

“선생님은 따님이 있으세요?”

“….”

“따님이 저 같은 상황이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피임 교육 잘 시킬 겁니다.”

“저도 피임했는데 임신한 거예요. 선생님은 따님한테도 낳으라고 하실 건가요?”

대답을 원하는 듯 잠시 기다리던 여성이 상담실 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김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문밖에서 간호사가 환자를 호명했다. 상담실로 향하는 발자국 소리가 문 앞에서 멈춘 뒤 몇 초가 흐르도록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지방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28년 경력의 의사 박 씨는 상황을 직감했다. 상담실 문을 쉽게 열지 못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비슷한 처지다.

“어떻게 오셨어요?”

앳돼 보이는 여학생 한 명이 상담실 의자에 앉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함께 들어온 중년 여성이 의자를 끌어와 옆에 앉았다.

“저희 애가 일주일 집에 안 들어온 적이 있어요. 그래도 돌아와서 다행인줄 알았는데….”

여학생은 헐렁한 맨투맨 티셔츠 차림이었다. 배 부분이 동그란 모습이었다. 열일곱 살의 임신부였다.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얘가 가출해서 친구 집에서 지낼 때 남학생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어요.”

박 씨는 모녀가 병원에 온 이유를 굳이 묻지 않았다.

“이 수술 원래 불법인 건 아시죠? 근데 성폭행으로 확인되면 수술해도 법적으로 괜찮아요. 일단 경찰에 신고하시고….”

“안 돼요, 선생님!”

내내 울먹이던 엄마는 단호한 목소리로 막아섰다.

“성폭행으로 확인 받으려면 수사 받고 뭐 하고 몇 달 걸리잖아요. 엊그제 갔던 병원에서 성폭행 판결문 없으면 수술 안 해준다고 해서 그냥 나왔어요.”

여학생은 임신 18주차였다. 성폭행 피해를 알리기 두려워 임신 3개월이 지나서야 엄마에게 털어놨다. 수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여러 산부인과를 전전하고 있었다. 여학생은 불안한 듯 쉬지 않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긁었다. 박 씨는 한숨이 나왔다.

“올라가세요.”

수술은 30분 만에 끝났다. 수술대에서 내려온 여학생은 몸을 휘청거리다 엄마에게 기댔다. 박 씨는 진료실을 나서는 모녀를 바라보며 대기실을 향해 말했다.

“다음 분 들어오시라고 해요.”

배가 볼록 나온 28세 여성이 상담실로 들어섰다. 한 눈에도 임신부였다.

“6개월이 지났는데 이제와 중절수술을 받겠다고요? 지금까지 뭐 했어요?”

“아이가 있으면 남친이 못 떠날 줄 알았는데 끝까지 저랑 헤어지겠대요.”

“아가씨는 뱃속 아이가 어떤 존재에요? 남자친구 잡지 못한다고 버려도 되는 물건은 아니죠.”

여성은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하다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아빠가 없는데 어떻게 해요. 두 시간 걸려서 왔는데, 다른 곳도 모두 안 된다고만 하고….”

여성은 인사 없이 상담실을 나갔다. 박 씨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다른 병원을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동아일보 이지훈,김예윤,최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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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7-11-29 07:36

봄가을님의 댓글

봄가을
에고..21세기에도 맨날 이런일들이..플랜비는 안파나 ..왜들 그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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