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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만 오면 “엄마, 아빠”...헤어짐 먼저 알아버린 3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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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만 오면 “엄마, 아빠”...헤어짐 먼저 알아버린 3살

등록: 2018-01-22 18:11
수정: 2018-01-22 22:25

[2018 나눔꽃 캠페인]
‘상어가족’이 부러운 조손가정 슬비

19살 출산 미혼모 엄마는 집 떠나고
남친인 아빠는 진작 연락 끊고 잠적
허름한 월세방서 작은 블록상자와
칠순 외할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라

좋아하는 고기·뽀로로 사달랄 땐
할머니 “돈 없으니 애써 못들은 척
어떻게든 내가 돌봐야 하는데…”

이슬비(가명)양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자택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블록놀이를 하며 웃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슬비(가명)양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자택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블록놀이를 하며 웃고 있다. 백소아 기자


세살배기 슬비(가명)는 할머니 등에 매달려 노는 게 제일 좋다. “아까까까. 까르르. 까르르.” 슬비의 즐거운 웃음이 할머니의 굽은 등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슬비의 콧물이 쏙 하고 얼굴을 내밀자 할머니는 손으로 쓱 닦아주었다.

“노는 게 예뻐. 하는 짓이.” 슬비의 외할머니 심아무개(70)씨가 가엾다는 듯 슬비를 바라봤다. “내가 없으면 잠을 못 자, 우리 슬비는.” 할머니가 껌딱지처럼 붙어 까르르 웃는 손녀를 보면서 가여움을 느끼는 건 슬비가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슬비의 엄마는 1년여 전 집을 나갔다. 아빠는 슬비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연락이 끊겼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가정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슬비가 달려나와 기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반겼다. 슬비는 작은 입술을 꼬물거리며 뭔가 말하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슬비네 가정을 돌보고 있는 사회복지사 조혜민(33)씨는 “슬비는 엄마와 아빠 나이 또래 어른이 집에 오면 그냥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슬비는 외할머니와 함께 6평(19㎡) 남짓한 허름한 월세방에 살고 있다.

슬비의 엄마는 열아홉에 슬비를 낳았다. “우연히 하게 된 임신”이라고 심씨가 설명했다. 엄마는 아이 아빠인 남자친구와 상의해 슬비를 낳기로 했다. 하지만 출산을 앞둘 무렵 슬비 아빠는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다.

3년여간 홀로 아이를 돌보던 슬비 엄마는 스물두살이 되던 지난해 봄 외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어딘가로 떠나버린 뒤 소식이 없다. “힘들었던 거 같아요.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졌는데 애 아빠도 잠적해버리고, 혼자 키울 자신은 없고. 슬비 엄마도 어린 나이니까 방황하는 것일 테니까…, 언젠가 정리하고 돌아올 거라 믿어요.” 심씨가 슬비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심씨는 손녀를 고아원 같은 아동보호시설로 보낼까 생각도 했다고 한다. 일흔 나이에 아이를 키우는 건 무리였다. 심씨의 남편은 십여년간 췌장암을 앓다가 세상을 등진 지 오래다. 가진 재산은 병 치료를 하느라 모두 쓰고 월셋집 보증금 2천만원만 남았다. 최근까지 아동 돌보미 일을 하면서 근근이 먹고살았지만 이제 무릎관절염과 허리디스크가 심해져 그나마도 할 수 없게 됐다.

이슬비(가명)양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월세방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블록놀이를 하며 웃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슬비(가명)양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월세방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블록놀이를 하며 웃고 있다. 백소아 기자


그래도 차마 손녀를 시설로 보낼 수 없었다. “3년이나 자라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동안 쌓인 정도 있고 어른으로서 책임감이 있는데 차마 못 보내겠더라고요. 지금까지 구김살 없이 밝게 자랐는데 시설로 옮기면 애가 받게 될 상처도 클 거고. 제가 어떻게든 건강할 때까지만이라도 애를 돌보고 슬비 엄마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야죠.”

물론 현실은 차갑다. 심씨는 최근에 차상위 생활보장 대상자 지정 신청을 했다. 승인되면 50만원의 수급비와 노령연금 20여만원을 생활비로 쓸 수 있다. 하지만 월세를 내고 도시가스비 등 공과금을 내고, 식비까지 쓰려면 늘 부족하다. “얼마 전 겨울 털장화를 애한테 사줬어요. 근데 그러니까 생활비가 똑 떨어진 거예요.” 따뜻하게 지내려면 식비를 포기해야 하는 처지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9개월치 월세를 밀려 심씨와 슬비는 하마터면 거리로 나앉을 뻔도 했다.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지역주민센터에서 급히 밀린 월세를 해결해주었지만 심씨의 경제력으로는 월세가 계속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담당 사회복지사가 심씨에게 서울시 위탁아동 전세자금 지원제도를 알려주어 최근에 신청을 마쳤지만 선정과 주거지 이전까지 1년여 시간이 걸려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슬비가 요구하는 것도 많아질 거다. 최근에 어린이집에서 ‘고기’라는 단어를 배워서일까. 부쩍 할머니에게 고기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고 한다. 슬비는 평소 고기를 좋아하고, 생선 튀겨주는 것을 잘 먹는다. 심씨는 슬비가 고기란 단어를 말할 때 못 들은 척할 때가 많다고 한다. 아이가 단어 하나하나를 배워가며 크는 게 대견하면서도 근심 걱정은 늘어간다.

“아직 손녀가 가족 소풍이란 걸 가본 적이 없어요. 텔레비전에서 어린이대공원이 나오면 계속 쳐다봐요. 뽀로로 만화가 나오면 인형을 사달라고도 해요. 하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마음만 아프죠.”

방 안을 둘러보니 슬비가 혼자일 때 친구가 되어줄 장난감은 이웃이 선물해준 작은 레고블록 상자가 전부였다. 동화책도 대여섯권이 다였다. 또래에 견줘 키도 작고 아직 말을 제대로 못 뗀 슬비가 혹여 열악한 가정환경 탓에 성장이 더뎌지는 건 아닌지 심씨는 걱정이 태산 같다.

이슬비(가명)양과 이양의 외할머니인 임아무개씨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자택으로 향하고 있다. 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슬비(가명)양과 이양의 외할머니인 임아무개씨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자택으로 향하고 있다. 소아 기자


상처와 헤어짐이라는 단어를 아직 슬비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슬비는 알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안 자고 있으면 ‘할미 자, 할미 자’ 하고 옆에 누울 때까지 기다려요. 잠시 바깥에라도 나가려 하면 ‘할미 어디 가. 할미 슬비 거’라고 소리를 질러요. 그럴수록 슬비를 꼭 지켜줘야겠다고 결심하는데 할미가 능력이 없어서….”

다행인 건 어려운 환경에서도 항상 웃고 있는 슬비의 표정이다. “할머니라도 옆에 없었다면 슬비가 이렇게 밝고 건강하지 못할 거예요. 슬비 할머니처럼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는 분이 많지 않거든요. 불안정한 현실에 할머니가 우울증을 앓고 그 감정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돼 소아 우울증을 앓는 경우가 많아요.” 사회복지사 조씨가 말했다.

경제적 형편이 불안하거나 여러 사정으로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부모가 우리 사회에는 생각보다 많다. 부모들이 아이에 대해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가도 중요한 문제지만, 일단 태어난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유년기를 넘기도록 돕는 것이 급선무다. 아이들은 태어난 자체로 축복받아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김은정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은 “우리 사회에 매년 발생하는 ‘요보호 아동’의 수는 4천~5천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상태는, 난민 아동 다음으로 열악한 편이다. 2차적 양육 책임이 있는 사회와 이웃이 함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불우 아동을 돕는 건 우리 사회 미래의 건강함을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

슬비의 엄마는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었다는 현실에 잠시 방황하고 있지만 심씨의 기대대로 언젠가 아이에게 돌아올지 모른다. 그때까지 슬비가 할머니와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면, 슬비는 지금처럼 구김살 없는 웃음으로 엄마를 맞이할 것이다. 딸을 잃고 손녀를 보살펴온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도 그때 비로소 활짝 펴질 것이다.

혼자 놀다 지루해진 듯 슬비는 어린이집에서 배워 온 ‘상어 가족’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기 상어 뚜루룻 뚜루/ 귀여운 뚜루룻 뚜루/ 바닷속 뚜루룻 뚜루/ 귀여운 아기 상어/ 어여쁜 엄마 상어/ 힘이 센 아빠 상어”

슬비는 언젠가 자신의 가족이 단란한 ‘상어 가족’과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될 테다. 그러나 그 다름이 상처로 남지 않도록 사회의 ‘희망 연고’를 발라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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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비네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기업은행 035-100411-01-456, 예금주: 사회복지법인어린이재단)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누리집(www.childfund.or.kr)과 네이버 해피빈(happybean.naver.com)에서도 후원이 가능합니다.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1588-1940)으로 문의해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으로 연락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10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슬비와 슬비 할머니를 위한 주거·생활비 지원 등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슬비양이 안정적으로 커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살피며 후원금을 투명하고 성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1000만원 이상 모금될 경우, 슬비양 보호자의 뜻에 따라 다른 위기가정 지원에 사용될 계획입니다.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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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8-01-23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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