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도 그대로 보존중인 이완용의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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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시가도(1927)에 나타난 종로구 옥인동의 이완용 가옥
▲ 이완용의 옥인동 가옥 신축 기사(1909년 12월 6일자 매일신보)
▲ 이완용 장례식 기사(1926년 2월 13일자 매일신보)에 나타난 이완용가옥
▲ 이완용이 1913년 새로 지어 1926년 사망할 때까지 거주한 종로구 옥인동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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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8-01-31 06:33
sansu님의 댓글
sansu
이조말 식민시대의 아무 힘없이 희생됐던 국가가 조선이었소. 그때 외무대신으로 있던 매국노 이완용이 을사 조약에 사인 아니 했더라면 일본이 그대로 순순히 그들의 야욕을 버렸을까 한번 생각해 봅니다.
가이님의 댓글
가이
이완용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대대로 역사의 심판을 받는 것일뿐. 허울좋은 명분이야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차라리 이름없는 촌로로 살았으면 욕은 먹지않았을터, 아마도 나라를 일본에 넘기는 결정을 할때, "나를 욕하라"는 말로 그 결정을 강행했을것. 그래서 욕하는 것임.
차라리 이름없는 촌로로 살았으면 욕은 먹지않았을터, 아마도 나라를 일본에 넘기는 결정을 할때, "나를 욕하라"는 말로 그 결정을 강행했을것. 그래서 욕하는 것임.
결론은미친짓이다님의 댓글
결론은미친짓이다
''
이완용이 을사조약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면 일본이 순순히?....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부조리도 망국의 역적질도 얼마든지 정당화 합리화 시킬 수 있다는
궤변을 보는 것 같아 매우 위험한 역사관이라는 지적질을 하고싶다
이승만이 육이오 때 한강다리를 폭파하지 않았다면..
시간적으로 유엔군이 도착하기 전에 과연 우리남한이 낙동강 조차 사수할 수 있었겠느냐며
피날길의 궁민들도 함께 수장시켜버린 살인행위를 정당화 합리화 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지....
정황상의 추측을 내세워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저랬를 것이다 라는 논리는
이완용을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 매국노를 정당화시킬 수 없는 궤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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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이 을사조약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면 일본이 순순히?....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부조리도 망국의 역적질도 얼마든지 정당화 합리화 시킬 수 있다는
궤변을 보는 것 같아 매우 위험한 역사관이라는 지적질을 하고싶다
이승만이 육이오 때 한강다리를 폭파하지 않았다면..
시간적으로 유엔군이 도착하기 전에 과연 우리남한이 낙동강 조차 사수할 수 있었겠느냐며
피날길의 궁민들도 함께 수장시켜버린 살인행위를 정당화 합리화 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지....
정황상의 추측을 내세워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저랬를 것이다 라는 논리는
이완용을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 매국노를 정당화시킬 수 없는 궤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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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미친짓이다님의 댓글
결론은미친짓이다
저택을 보존하고 안하고는
매국노의 역사적 산물로 역사학자들의 결정에 맡기거나
산호세 시에서 약탈자와 학살자의 이미지로 굳어버린
콜럼버스의 동상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처럼
궁민들의 정서에 맡기는 방법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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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노의 역사적 산물로 역사학자들의 결정에 맡기거나
산호세 시에서 약탈자와 학살자의 이미지로 굳어버린
콜럼버스의 동상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처럼
궁민들의 정서에 맡기는 방법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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