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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막대한 재력, 박물관으로 꽃 피우다`..한국의 대수장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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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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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에서도 오겠다고 했었는데, 정상회담 취재 때문에 오질 못한 거 같네요. 16세기 운코쿠 도간의 작품이나 산쥬로쿠닌카슈십이폭병풍 같은 작품은 일본 현지에서도 보기가 쉽지 않은 작품입니다.”

지난달 23일, 일본 회화 특별전 개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호림박물관 직원이 한 말입니다. 특별전에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작품이 나와 한국에 주재하는 일본 언론이 관심을 보였는데 마침 남북정상회담을 며칠 앞둔 시점이라 시간을 못낸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말에는 호림박물관의 소장품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했습니다.

수많은 박물관이 있지만 언론에 이런 자부심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겁니다. 공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이 막대한 돈과 지속적인 노력을 들여 모은 수집품을 토대로 설립된 사립박물관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호림박물관은 한국의 3대 사립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는 곳입니다. 호암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이 나머지 두 곳입니다. 호림은 성보화학의 윤장섭 회장, 호암은 삼성의 이병철 회장, 간송은 전형필 선생이 세웠습니다. 생전에 그들은 큰 부를 일궜고, 그것이 문화재 수집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돈이 넘쳐난다고 해도 수십 년간 문화재를 모으고, 박물관을 설립해 운영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문화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자신의 수집품을 대중과 공유하겠다는 의지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약간의 입장료만 내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의 세월을 품은 ‘명품’을 맘껏 보며 눈호강을 할 수 있는 건 그들에게 크게 빚진 바입니다. 또 의도했건 아니건 그들의 수집은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고, 해외로 나간 문화재를 되가져 오는 역할을 한 것도 분명합니다.

◆개성 삼인방의 편지 과외, 호림을 일깨우다

윤장섭 회장
윤장섭 회장


앞서 언급을 했으니 호림의 윤 회장 이야기부터 해볼까 합니다. 수집 초기 그를 도왔던 ‘개성 삼인방’과의 인연이 흥미롭습니다.

그가 문화재 수집에 나선 건 1970년대 초반입니다. 1971년에 ‘청자상감유로연죽문표형주자’를 산 게 “유물 수집 생활”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훗날 ‘매의 눈’을 가진 대수장가가 되었지만 시작부터 문화재를 보는 안목을 갖고 있을 리 없습니다. 개성공립상업학교,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다녀 관련 공부를 한 적이 없고, 기업가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문화재와 특별한 인연이 없었습니다. 이 때 윤 회장을 도운 게 미술사학계의 큰 학자인 황수영, 최순우, 진홍섭 선생입니다. 네 사람은 모두 북한 개성 출신입니다.

수집 활동 초기 자문을 구하기 위해 윤장섭 회장이 썼던 편지. 호림박물관 제공
수집 활동 초기 자문을 구하기 위해 윤장섭 회장이 썼던 편지. 호림박물관 제공


윤 회장은 살 만한 물건이 있을 때 세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 자문을 구했습니다. 진위, 가치, 가격 세 가지가 주된 관심사가 된 건 당연했습니다. 특히 최순우 선생과의 편지가 많았는데 잦을 때는 2∼3일, 뜸할 때도 2∼3주에 한 번씩은 이런 편지가 오고, 갔습니다.

“몇 점 탁송하오니 품평 앙망하나이다. ①백자상감모란문병 200만원 호가 ②분청사기철화엽문병 250만 원 ③청화백자인문편병 ④자라병. 고가를 호가하는데 의심이 납니다.(혹 모조품은 아닌지요)”

1974년 1월 7일 윤 회장이 최 관장에게 보낸 편지입니다.큰 돈이 오가는 만큼 신중했고, 좋은 물건을 소장하겠다는 건 수집가의 당연한 욕망일 겁니다.

최순우 선생은 성심껏 답장을 보냈습니다.

“②번, 이 물건은 사두십시오. 좋은 물건이고 비교적 주의를 끌 만한 장래가 있을 것입니다. 값을 좀 조절하셔서 놓치지 마십시오. 그 밖의 것은 별것이 아닙니다.”

호림은 토·도기류, 전적류를 강점으로 하는 1만6000여 점의 문화재를 갖고 있습니다. ‘백자 청화매죽문 유개항아리’(국보 222호) ‘청자 상감운학국화문 병형 주전자’(보물 1451호), ‘백지묵서묘법연화경’(국보 211호), ‘지장시왕도’(보물 1048호) 등이 대표 유물로 꼽힙니다.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이어진 ‘편지 과외’가 호림 컬렉션의 근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백자 청화매죽문 유개항아리’(국보 222호)
‘백자 청화매죽문 유개항아리’(국보 222호)


‘백지묵서묘법연화경’(국보 211호)
백지묵서묘법연화경’(국보 211호)


◆확고한 기호와 명품주의…이병철과 이건희의 차이

호암의 소장품을 비롯한 삼성가의 컬렉션은 이병철 회장대에 시작되었고, 이건희 회장대에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의 수집 스타일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비싸다고 판단되는 작품은 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일단 매입에 부정적이면 주변에서도 더 이상 권하지 않았습니다. 해외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수집 자체보다 그런 공동품으로부터 마음의 기쁨과 정신의 조화를 찾는다. 그런 이유로 폭넓은 수집보다는 기호에 맞는 물건만을 선택한 것”이라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청자마니아’였던 그는 가장 아낀 소장품으로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국보 133호), ‘청자상감 운학모란국화문 매병’(보물 558호)를 꼽았습니다.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국보 133호)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국보 133호)


백자마니아’인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와 달리 값을 따지지 않았고, 묻는 경우도 별로 없었습니다. 전문가가 가치를 확인하면 별말 없이 구입했습니다. 그는 “특급이 있으면 컬렉션 전체의 위상이 덩달아 올라간다”며 ‘명품주의’를 표방했는데, 그 구체적인 형태가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였습니다. 1980∼90년대에 집중적으로 진행되어 당시 시중에는 “좋은 물건은 모두 삼성으로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정선필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정선필 금강전도’(국보 217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118호), ‘청자 양각죽절문 병’(국보 169호) 등이 삼성가의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11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118호)


◆기와집 400채 가격의 승부, 문화재 유출을 막은 간송의 집념

전형필 선생
전형필 선생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는 숱하게 해외로 유출되었습니다. 일본으로 빠져나간 것이 가장 많았습니다. 당시 가장 손꼽히는 한국인 수장가였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을 지은 전형필 선생의 수집은 그래서 ‘민족문화 수호’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중요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재산을 들여 이미 나간 문화재를 되사오기도 했습니다. 일본을 오가며 벌인 담판은 지금도 ‘신화’처럼 회자됩니다.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국보 135호) 중 ‘월하정인’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국보 135호) 중 ‘월하정인

1934년 전형필 선생은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국보 135호)을 두고 오사카로 건너가 골동품상 야마나카 상회를 교섭을 벌였습니다. 야마나카 상회가 처음 제시한 가격은 5만원. 전형필 선생은 화첩의 그림 하나하나가 크게 마음에 들었으나 너무 비쌌습니다. 교섭에 진전이 없자 야마나카 상회는 3만원으로 가격을 낮췄습니다. 3만원이면 지금 돈으로 90억원 정도입니다. 전형필 선생이 당시 조선 40대 부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거부이긴 했으나 부담스러운 금액인 게 사실입니다. 그는 2만5000원을 제시했고, 화첩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습니다.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국보 270호)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국보 270호)

일본에서 활동하던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와의 거래는 전형필 선생의 수집 인생에서 최대 승부로 꼽힙니다. 1937년 도쿄, 전형필 선생을 만난 개스비는 도자기 22점을 차례차례 보여줬습니다. 원숭이 모양의 연적(‘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국보 270호), 뚜껑에 기린을 세운 향로(‘청자 기린형뚜껑 향로’·국보 65호), 포도 넝쿨을 상감한 매병(‘청자 상감포도동자문 매병’·보물 286호) 등 하나하나가 일급의 명품이었습니다.

개스비는 22점을 55만원에 팔겠다고 했고, 전형필 선생은 33만원을 제시했습니다. 워낙에 큰 거래라 쉽게 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양측이 제시한 가격은 52만원, 36만원으로 좁혀졌으나 도쿄에서의 협상은 결국 결렬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난 뒤 이번에는 개스비가 경성으로 건너왔습니다. 협상이 결렬된 후 그는 영국박물관과 접촉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전형필 선생은 개스비를 보화각 건축 현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귀하가 힘들여 수집한 고려청자를 이곳에 전시해 조선에도 이런 찬란한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동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두 사람은 40만원에 거래를 마무리했습니다. 기와집 400채를 살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전형필 선생은 논 1만 마지기를 팔았습니다. 전형필 선생의 문화재에 대한 깊은 애정과 수집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따를 만한 이가 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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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8-05-0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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