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이다. 특히 6월 6일은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범국가적으로 조기를 게양하는 현충일이다.

정부는 1956년부터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이라 해서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행사를 해왔다. 1975년 12월에 현충일로 개칭됐다. 또한 민간에서는 음주가무가 없어야 하는 날이기에 전국의 유흥업소가 1년에 딱 하루 쉬는 날이기도 하다.

6월 6월이 매년 돌아올 때마다 잊혀져가는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이 떠오르곤 한다. 하나는 정부와 국민들이 현충(顯忠)에 대해서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원조가 되는 장충(獎忠)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6월 6일은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현충일이기도 하지만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다가 무참히 와해돼 버린 반민특위의 제삿날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먼저 현충의 원조라는 장충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대한민국 정부가 1956년부터 현충기념일을 제정한 배경에는 그 해 ‘국군묘지’가 동작동에 조성됐기 때문이다.

국군묘지는 1965년 ‘국립묘지’로 개명됐다가 지난 2005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명칭이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동작동 이전에 국군묘지는 없었을까. 6·25 전쟁으로 인한 전사자도 엄청 많지 않았는가.

광복 이후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국지전과 좌익토벌 등에서 전사한 장병들을 안치한 곳은 바로 서울시 중구에 있던 장충사(獎忠祠)였다. 이후 남·북간 전쟁으로 전사자가 급증하자 보다 넓은 국군묘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휴전 후인 1954년부터 동작동에 국군묘지를 조성해 옮긴 이래로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따라서 현 국립현충원의 모태가 되는 장충사는 곧 장충단(獎忠壇)을 말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 장충단 자리에 세워졌던 박문사(좌)와 경희궁의 홍화문을 떼어다 만든 정문(우) [사진=필자 제공]

최초의 국립묘지는 장충단

지난 1895년 일본인 자객들에 의해 경복궁에서 명성황후가 시해 당하는 을미참변 당시 궁궐을 지키던 훈련대장 홍계훈 이하 많은 장병들이 일본인과 싸우다가 죽었다. 궁내부 대신 이경직과 수많은 궁녀들이 명성황후를 지키려다 일본인들에게 처참하게 죽어갔다.

고종 광무황제는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도성의 남쪽을 수비하던 남소영 자리에 1900년 11월 장충단을 지어 매년 봄 가을로 제사를 모셨다. 하지만 지난 1908년부터 일제에 의해 중단됐다.

이후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영혼들을 모시는 성스러운 장충단은 일제에 의해 놀이공원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1908년부터 일본 고위층의 야유·운동회 장소로 사용됐다. 1909년 안중근 장군에게 사살당한 이토 히로부미의 장례식 추도회가 열리기도 했다.

1919년부터 일제는 사전(祀典)과 부속건물을 폐쇄하고 벚나무 수천그루를 심는 등 본격적으로 공원을 조성했다.

상해사변 때 결사대로 죽은 일본군 ‘육탄 3용사’의 동상이 세워졌다. 또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의 영혼을 기리는 박문사(博文寺)가 지어졌다.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어진을 모시던 경복궁 선원전을 뜯어다가 박문사의 본전과 서원을 지었다. 또 경희궁의 흥화문을 뜯어와 입구에 대문을 세우는 등 실로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다.

광복 후 일제가 세운 건물은 모두 철거됐고 장충단은 원래의 취지대로 국립묘지가 된다. 1946년 군이 창설되어 북한군과의 국지전과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사건 및 각 지역의 작전에서 전사한 장병들을 안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1956년 새로운 국립묘지가 한강 너머 동작동에 조성되기 이전까지 장충단을 국립묘지로 활용했다.

이후 장충단은 그 기능을 완전히 잃게 됐다. 이 자리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1957년 육군체육관이 세워졌다. 이후 1963년 증축돼 장충체육관으로 개관했다. 1959년에는 장충단에 있던 박문사 본당 터에 국빈접대를 위한 영빈관 신축공사가 시작됐다.

실내체육관과 영빈관을 짓는 것이 말살된 민족정신과 국가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보다 더 소중했는지 묻고 싶은 대목이다. 장충단의 본격적인 파괴는 1961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장군에 의해 저질러진다.

그의 지시로 장충단 공원부지 내에 중앙공무원교육원, 반공연맹회관, 재향군인회관, 국립극장 등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된다. 그러던 중 196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영빈관을 삼성그룹에 헐값으로 분양해 불하했다. 이 자리에는 지난 1979년 지상 22층 규모의 신라호텔이 지어진다.

설계를 장충단에 박문사를 지었던 대성건설에게 맡기는 몰상식적인 행위가 벌어진다. 일제의 만행 때문에 생겨났고 일제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한 장충단 자리에 위락시설인 호텔을 지으면서 박문사를 시공한 대성건설에게 설계를 맡긴 것은 보면 삼성그룹의 천박한 역사인식수준을 알 수 있다.

현재 신라호텔의 주 고객은 일본인이다. 지난 2004년 일본의 자위대 창설 50주년 행사가 개최된 장소였으며 한복을 입은 한국인의 출입을 금지시켜 물의를 빚은 곳이기도 하다.



▲ 최초의 국립현충원 장충단에 세워진 신라호텔 [사진=필자 제공]

6월 6일은 민족정기가 죽은 날

1945년 광복 이후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이 땅에서 떠나가야 했다. 하지만 일제에게 빌붙어 부역했던 친일파들은 그대로 남게 됐다. 그들 모두는 이젠 꼼짝없이 죽거나 오랫동안 감방에 가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군정은 독립운동가들보다 학력이 높아 일을 잘하면서도 자기네 말에 고분고분한 친일파들을 중용했다. 결국 국가범죄를 저질러 처벌대상자들이 다시 거리를 활보하게 됐다.

특히 일본을 위해 동포들을 체포·고문했던 친일경찰들은 미군정하에서도 그대로 기용돼 좌익을 색출하고 공산당을 타도하는 반공애국자로 변신해 있었다.

지난 1948년 정부수립 후 제헌국회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제국주의에 적극 협조해 반민족행위를 한 친일매국인사들을 조사하기 위해 법률을 통과시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약칭’라는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해당 법안 1조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목적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친일파들을 척결해 사회정의를 구현함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제1조(목적) 이 법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를 위하여 행한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한 후, 그 결과를 처벌함으로써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후세의 재발을 방지하고 잘못한 자는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만 천하에 알리고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반민특위가 산하 특별경찰대를 가동해 친일기업가였던 박흥식과 징병을 선동했던 최남선과 이광수, 최린, 김연수 등을 체포하는 등 그동안 일제에 빌붙어 민족을 배신했던 친일매국노들을 색출해내자 국민들은 대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반민특위는 일제의 악질고등계형사의 대명사이자 당시 친일파가 장악하고 있던 경찰의 핵심인 노덕술을 체포했다. 해방 후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수모를 당한 의열단장 김원봉은 3일 밤낮을 꼬박 울었다고 한다.

평소 친일파 처벌에 부정적이던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내무차관 장경근이 지휘한 친일경찰들은 6월 6일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해 특경대원들의 무장을 해제시킨 후 강제로 해산시켰다.

결국 반민특위는 와해돼 더 이상 친일파 체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게다가 친일파 처벌에 적극적이던 소장파 의원들이 국회프락치사건으로 체포됐다. 결국 반민특위의 활동은 더욱 약화되어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반민특위가 해체된 6월 6일은 이렇게 민족정기가 죽은 날이다.



▲ 당시 남대문로에 있던 건물에서 의욕차게 발족한 반민특위 [사진=필자 제공]

이에 비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나치 치하에서 부역했던 자들에게 2000건이 넘는 사형을 집행했으며 약 4만 명이 징역형 판결을 받았다.

드골대통령은 “앞으로 프랑스가 일시적으로 나라를 잃어버릴 수도 있으나 그렇더라도 침략자들에게 부역하는 프랑스인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국가정의를 바로 세운 프랑스가 부러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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