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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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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멘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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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래를 위하여 - 정일근

불쑥, 바다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면 
당신의 전생(前生)은 고래다 

나에게 고래는 사랑의 이음동의어 
고래와 사랑은 바다를 살아 떠도는 같은 포유류여서 
젖이 퉁퉁 붓는 그리움으로 막막해질 때마다 
불쑥불쑥, 수평선 위로 제 머리를 내미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신이 고래를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실례다 

당신이 본 것은 언제나 빙산의 일각 
누구도 사랑의 모두를 꺼내 보여주지 않듯 
고래도 결코 전부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 

한 순간 환호처럼 고래는 바다 위로 솟구치고 
시속 35노트의 쾌속선으로 고래를 따라 달려가지만 
이내 바다 깊숙이 숨어버린 거대한 사랑을 
바다에서 살다 육지로 진화해온 
시인의 푸른 휘파람으로는 다시 불러낼 수 없어 

저기, 고래! 라고 외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고독한 사람은 육지에 살다 바다로 다시 퇴화해가고 
그 이유를 사랑한 것이 내게 슬픔이란 말이 되었다 

바다 아래서 고래가 몸으로 쓴 편지가 
가끔 투명한 블루로 찾아오지만 
빙하기 부근 우리는 전생의 기억을 함께 잃어버려 
불쑥, 근원을 알 수 없는 바다 아득한 밑바닥 같은 곳에서 
소금 눈물이 펑펑 솟구친다면 
당신도 고래다 

보고 싶다, 는 그 말이 고래다 
그립다, 는 그 말이 고래다 

++

하마

보고 싶다. 그립다. 
라는 말은 너무 많이 아픈 관계로
바다는 그만 그리워하자.

대신에 강을 그리워하자
바람없는 날에 잔잔히 흐르는 강을 그리워하자

추억이나 그리움 같은 것들을
흐르는 강물에 던져 버리고
내 눈에서 아스라이 사라질때까지 쳐다 볼수있는
그런 잔잔한 강을 그리워하자

강을 그리워하는 나는
전생에 하마였다 하자

그것도
이별, 눈물, 무너져 내린 가슴 같은 것들을
아무도 모르게 강 한 구석에서
조용히 마음속으로 흡입하는
물먹는 하마였다 하자

하마와 사랑은 아무 관계도 없음에
이제 바다는 잊어버리고 강을 그리워하며
나의 전생은 물먹는 하마였다 하자

당신이 어느 날 물먹는 하마를 보았다면
그게 바로 나고
그게 바로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