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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탈북자들의 5.18 증언을 입증하는 CIA 문건, 광주인민봉기 배후의 김일성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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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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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당시 임무내용을 전달받으면서 한순간에 파악했던 것은 조만간 남조선에서 4.19인민봉기를 능가하는 전국적인 대규모의 인민항쟁이 무장폭동의 성격으로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으며 자신들이 목포지역으로 급파된 것도 그 일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목포에서 만난 7명의 북한요원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에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났던 대학생들의 반정부폭동을 배후조종하기 위해서 파견된 사람들이었고 북한은 부산, 마산 폭동을 5.18광주사태와 마찬가지로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부산, 마산사태가 전국적인 인민봉기로 확산되지 못하고 조기에 진압된 것은 폭동이 일어나게 된 동기와 확대될 수 있는 명분이 취약했으며 부마사태의 정당성에 대한 지역 민심의 합법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 주요한 실패의 원인이라고 했다. (....) 

    그들이 남조선전라도 지역에 침투하여 처음으로 착수한 일은 무장폭동을 준비하는데서 관건인 무기를 확보하기위한 사업이었다. 북한의 계획대로라면 원래 광주폭동이 정상적으로 시작되어야 하는 날자는 1980년 3월경이었다고 한다. 북한이 봉기시기를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인 3월로 택한 것은 폭동이 일어나서 전국적인 항쟁으로 신속하게 번지려면 농사철과 같은 불필요한 계절요소들의 제한적인 방해를 피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무기고를 사전 답사하였다는 윤한봉의 증언
▲ 전라도 무기고 위치를 사전답사하였다는 윤한봉의 증언은 난동자들이 무기 탈취를 하게 된 경위에 대한 5.18 사기꾼들의 거짓말을 박살낸다.

    미리 침투해 있던 7명의 인원들과 합류한 안창식을 비롯한 11명의 인원들은 여러 개의 소조로 분산되어 전라도 현지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조직들이 사전에 확보해놓은 무기고들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한편 새로운 무기고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3개월여 동안 전라도 전 지역에 대한 정찰을 이 잡듯이 샅샅이 진행하였다고 한다. 1980년 2월말을 넘기면서 폭동이 전개되면 임의의 시기에 무기탈취가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전라도지역에 포진되어 있는 무기고들에 대한 사전파악과 요해사업이 성과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1980년 3월로 계획되어있던 광주폭동이 5월로 늦어진 것은 1980년 4월말에 일어났던 강원도의 사북탄광사태와의 밀접한 연관 때문이었다. 사북탄광에서의 폭동조짐을 첩보망을 통해서 사전부터 구체적으로 감지하고 있던 북한은 3월로 예정되었던 광주폭동을 4월말로 연기하라는 지령을 내려 보냈고 득보다 실이 많은 산발적인 소요보다는 전국각지에서 일시에 동시다발적으로 들고 일어나는 전국규모의 항쟁이 성격으로 보나 위력으로 보나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계산하였다. 

    목포에 침투하였던 11명의 요원들이 사북탄광사태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일은 없었다고 했지만 그들의 말로는 그곳에도 북한의 계획적인 지령을 받고 파견된 별도의 특수부대요원들이 잠입하여 사북사태가 강원도지역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배후를 은밀히 조종하였다고 증언하였다. 1980년 5.18을 전후로 하여 북한이 남조선에서의 전 인민적인 항쟁을 위해 얼마나 치밀하고 계획적인 작전을 세웠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단편적인 내용의 한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북한쪽의 입장에서 사북탄광사태는 치명적인 실패작이었고 그것이 무산됨으로써 광주폭동은 부득이하게 5월 중순을 넘기게 된 것이었다. 여기서 놀랄만한 것은 목포를 중심으로 광주폭동이 시작되기 전까지 5개월 여 동안 목포,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지역에 포진되어 있는 숨은 지하조직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침투 조 인원들이 직접 목격한 일이지만 그들의 조직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나같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질적으로 째어있는 북한의 당 조직과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체계적인 조직구성과 집단화된 규율을 가지고 있었고 정신적인 무장상태나 각오정도에서도 북한의 조선노동당원들의 수준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지휘부 형태로 사용하는 공간에도 김일성의 초상화는 물론 김정일의 초상화까지 걸려 있었고 김일성 선집이라든가 김정일의 주체철학 등 북한에서나 볼 수 있는 사회주의 내용의 북한용 정치서적들이 대거 비치되어 있어 마치 북한 땅에 있는 어느 박사의 사무실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pp. 69-72).

    당사자들한테서 직접들은 이야기지만 북한은 5·18사건을 배후에서 계획하면서 철저하게 두 가지 목적을 노렸다고 한다. 하나는 남조선사회를 북한체제가 합법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국가전복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전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믿음직하고 충실한 친북정권 수립이었다. 내가 북한에서 이런 내용들을 들을 때는 신기할 정도로 희한했었지만 지금 남한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위험하고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적으로 대규모의 인민항쟁이 일어나서 공권력이 흔들리게 되면 인민군대의 남침도발도 충분히 가능했던 것이 당시의 정세였다고 하니 소름이 끼칠 만도 한 일이었다. 잔인하고 피비린내가 났던 5·18광주폭동에 대한 계획은 이런 북한의 끈질긴 도발과 조작의 어두운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적으로 준비상태가 마무리되어 갔다. 안창식을 책임자로 하는 11명의 북한 특수부대 요원들과 부마사태에 참가했던 7명의 요원들이 합류된 18명의 소부대는 광주사태의 전 과정이 마무리 될 때까지 목포에 거점을 두고 있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북한과 수시로 교신하면서 광주작전과 관련된 필요한 지시들을 지령 받고 집행하였다. 광주폭동이 진압군의 작전으로 종료될 때까지 두 명의 인원은 고정적으로 목포아지트에 대기하면서 광주시내에서 매일매일 벌어지는 사건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신속하게 지휘부에 보고했다 (pp. 73-74).

    소부대작전에서 특이한 것은 죽은 시체도 적에게 내어주지 않는 엄격한 원칙이고 어느 조와 개인을 떠나서 각기 자기 분야에 특수하게 부여된 임무에만 충실 하고 작전내용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비밀을 사수하는 것이 기본적인 룰이고 성질이라는 것이었다 (p. 74).

    전라도 광주지역 근처에 있는 감옥소(남조선의 교도소)에 죄 없이 감금되어 있는 혁명적인 투사들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에 안창식의 일행들도 참가했었고 그중 한명이 심한 중상을 입은 일이 있었다. 총탄이 복부중심을 관통하는 중상을 입은 그 사람은 과다출혈로 치명상이었다고 했다 (p. 76).

    안창식(나의 내연남)은 지체하지 않고 즉시 대원 세 명에게 여자를 추격해서 그를 조용히 처리하고 시신을 소각하되 사진기는 무조건 회수해 올을 명령했다. 분명히 다른 냄새를 맡고 따라다니는 남조선정보기관의 끄나풀이 아니면 정체를 숨기고 광주 시내를 뒤지면서 색다른 냄새를 맡고 있는 어느 특수기관의 스파이라고 짐작되었다. 그 여자는 북한요원들에 의해서 광주시내 모처로 납치되어갔고 저항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잔인하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p. 78).

    안창식은 교전 중에 무릎 바로 아래에 관통상을 입고 광주폭동이 끝나기 2~3일 전쯤 목포의 아지트로 이동해서 치료를 받다가 14명의 대원들과 함께 그해 7월 중순경에 강원도 동해안으로 이동하였고 북한에서 내려온 잠수함을 타고 철수하였다고 한다. 초기에 임무를 받고 타격대에서 파견되었던 안창식을 포함한 10명의 요원들 중에서 한 명이 숨지고 안창식과 함께 4명이 부상을 당했으며(부상자중 1명은 북한으로 돌아가서 치료받다가 1년 뒤에 사망) 부산, 마산폭동에 참가하기위해서 먼저 남파되었다가 그들과 합류한 7명의 일행 중 3명은 행불이 되어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pp. 79-80).

2. 북한의 광주사태 개입을 기념하는 명칭들

북한의 5.18청년호
▲ 김일성은 광주인민봉기가 자신의 작품임을 영구 기념하기 위해 대형프레스 이름을 '5·18 청년호'라고 붙였다.

    김일성이 살아 생전에 남조선의 광주사태를 기념하기 위하여 같은 날짜인 5월 18일에 어느 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북한의 철도부문에서 '5·18무사고정시견인운동'이 나왔고 1만 톤 대형프레스의 이름에 '5·18 청년호', 제철소의 이름에 '5·18청년제철소', 학생들이 파철을 모아 군수공장으로 보내서 만든 탱크 이름에 '5·18전진호'라고 이름을 붙이는 등 북한은 전 당과 전 국가, 전 국민적으로 5·18의 정당성과 계승성을 광범위하게 선전하고 대중사회에 의식화하였다. 이처럼 북한의 대남전략은 체제의 합법적인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조직되고 한국사회에 다량의 친북좌파 세력들을 양성해 낼 정도로 그 범위가 질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p. 83).

북한의 5.18 열차
▲ 김일성은 광주에서 시민군 활동을 한 북한군의 5.18 정신을 여러 정책에 반영하여 북한의 철도부문에서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이 나왔다.

문익환 목사에게 김일성 지령 전달한 남파공작원의 비화(원제: 북한군 건설여단 33명의 떼죽음 속에 숨겨진 광주의 비밀)

문익환 목사와 김일성
▲ 문익환 목사는 김일성으로부터 거액의 공작금을 지원받으며 친북좌파 세력을 양성하였다. 1980년 봄의 시위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 3월에 김대중의 사조직화된 '민청협'의 공작이었는데, '민청협'은 고문 문익환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하였고, 문익환 목사는 김일성이 지령을 내리는 대로 '민청협'에 하달하며 가두시위를 배후조종하였다.

1980년 봄에 '민청협'이 조직하고 주도한 전국 대학가 가두시위는 김일성이 '민청협' 고문 문익환 목사에게 지령을 내려 배후조종한 것이었다. "북한군 건설여단 33명의 떼죽음 속에 숨겨진 광주의 비밀"이란 제목의 증언은 일부분만 간간이 발췌하기에도 너무 길어 여기서는 김일성의 지령을 문익환 목사에게 전달한 남파공작원은 노동당에서 공화국영웅 중의 영웅 대우를 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일화만 소개한다. 독자들은 나머지 전체 증언을 '역사로서의 5.18'에서 읽거나, 탈북자 5.18 증언록 맛보기 사이트에서 해당 제목을 찾아 읽을 수 있다.

    (80:1의 패싸움과정) 누가 도끼를 던졌는지 “평양사람” (주: 5.18공화국영웅)이 주저앉아서 피범벅이 된 종아리를 두 손으로 조이고 있었고 그의 발치에는 도끼가 떨어져 있었다. 이때 3소대장이 달려들면서 숙이고 있던 그의 머리를 발로 내리 밟았다. 순간 “평양사람”의 입에서 괴성 같은 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그의 주먹이 3소대장의 턱 아래 목젖 부위에 강하게 들어가 박혔다. 부질없이 달려들어서 발길질 하던 3소대장은 끽 소리 한마디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목뼈가 부러져서 단번에 즉사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평양사자”는 자신을 주체할 수 없게 이성을 잃어버렸고 성난 한 마리의 사자를 방불케 할 정도로 사정없이 날뛰었다. 그의 발과 주먹은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게 번개처럼 움직였고 그의 손발을 거쳐 간 사람들은 사방으로 나가떨어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20분도 채 되지 않아서 30명이 넘게 쓰러지자(주: 이들은 다 죽었음) 다급해진 대대장이 “더 달려들지 말고 피하라”고 다급히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성난 “평양의 사자”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처음의 시작과는 대조적으로 상상도 할 수 없게 순식간에 싸움판의 상황이 반전된 것이었다. 겁을 먹은 군인들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자 “평양사람”은 소외양간 쪽으로 피해 달아나는 대대장에게 달려가서 그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대원들이 쓰러져 있는 마당 한가운데로 잡아다가 꿇어 앉혔다. (이후 잠시 방심한 공화국영웅은 뒤로부터 도끼 공격을 당해 죽었음) (pp. 114-115). 

    선글라스여성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당중앙위원회의 위임을 직접 받고 내려온 사람이야. 네놈들이 어제 도끼로 죽인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어? 여기 있는 너희들 여단전체를 주고도 바꾸지 못할 사람이었어. 그 사람은 수 십 번을 적후에 드나들면서도 머리털 한 오리 다치지 않던 사람이야. 남조선의 광주에서 적들과 힘들게 싸우면서도 조국이 준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돌아온 영웅이란 말이야 이놈들아. 네놈들이 저지를 죄가 얼마나 크고 그 후과가 막대한지 너희부모들과 친척들이 평생 살 동안 고통을 느끼면서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당중앙위원회의 위임에 의하여 오늘 이 자리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모조리 처단한다”

    모두가 설마 했었는데 그는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잠시의 여유도 두지 않고 단박에 권총을 꺼내 들더니 맨 우측에 차례로 서있는 대대장과 중대장을 향해서 분노를 폭발하듯 공격적으로 탄창하나를 다 발사하였다. 대대장과 중대장이 벌집이 돼서 그 자리에 쓰러지자 무장한 보위소대원들 20명이 나서서 나머지 열 명에게 귀가 멍하게 총탄세례를 퍼부어 댔다 (pp. 122-123).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가 위쪽에 안장되어 있었고 바로 그 아래쪽에 아들인 “평양사자”의 묘가 일반사람들의 묘지와는 완전히 구별되게 웅장하게 꾸며져 있었다. 어머님의 말에 의하면 “평양사자”의 장례식은 원래 평양으로 옮겨져서 치를 예정이었는데 어머니가 고향땅에 묻히게 해달라고 간절히 요구하는 바람에 날자가 늦어져서 결국은 5일장으로 치러지게 됐고 중앙당에서 간부들이 직접 내려와서 엄숙하게 치렀다고 했다. 시멘트 콘크리트로 포장한 묘지의 높이는 1.5미터가 넘어보였고 묘지의 앞에 서있는 비석에는 중앙당에서 직접 새긴 문구가 적혀 있었다. “공화국 2중 영웅 고 장중한 동지는 1980년 5월 18일, 남조선의 광주인민항쟁을 비롯해서 살아생전 당과 수령,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싸우다가 애석하게 전사하였다. 조국을 위해서 젊음을 바친 고 장중한 동지의 투철하고 고귀한 혁명업적은 조국의 미래와 더불어 후손만대에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애석하게 전사한 장중한 동지에게 영광이 있으라!” (pp. 128-129)

    자서전의 내용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그가 남조선에 내려와서 대남공작을 시작하면서 진행한 일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그의 아버지 친척들의 이름을 비롯해서 자기가 공작한 대상들의 이름이 개별적으로 적혀 있었고 특히 지금까지 내 머리 속에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종교와 관련된 사람들의 명단 속에 있던 죽은 문익환 목사의 이름이었다. 1989년인가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해서 김일성을 만났을 때 나는 '평양사자'의 자서전에서 보았던 문익환 목사의 이름이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던 기억이 있다. 어렴풋이 생각되는 내용이지만 '평양사자'가 남파되어 문익환을 만나서 김일성의 친서를 전달하자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생의 마감까지 수령님께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를 했다고 하였다. 특히 1980년 5월 달에 있은 남조선의 광주인민항쟁 전후 배경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런 식의 내용으로 적혀 있었다 (pp. 131-132).

북한의 문익환 목사 기념 우표
▲ 북한에서는 1980년 봄에 문익환 목사가 김일성의 지령을 받들어 장기표와 이신범 등 다수의 민청협 간부들을 시켜 '계엄령 해제' 등을 이슈로 내걸고 광주사태로 치닫게 하는 폭력시위를 조직한 것을 높이 평가하여 문익환 목사 기념우표를 발행하였다.

5월 19일 전군에 전투동원준비 태세 명령을 내린 김일성 전 북한군 항공사령부 소속 여성고사포중대 중대장 증언

CIA는 5월 19일 김일성이 주석궁에서 소집한 비밀 군간부 회담 내용을 도청할 수는 있었어도 오진우 무력부장이 그 후 하급부대에 어떤 기밀문서로 무슨 명령을 하달하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기밀 명령 일부를 당시 북한군 항공사령부 소속 여성고사포중대 중대장 증언으로 알 수 있다.

    다른 탈북자들에게 질문을 던져 봐도 하나같이 나처럼 대답할 것이라고 믿지만 1980년 5월 18일 광주사건 때에 북한군특수부대 요원들이 내려갔었다는 이야기는 북한사회 전체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국에 온 탈북자들뿐만이 아니라 지금 바로 북한에 가서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어느 누구라도 세워놓고 광주사태에 대해서 들어보거나 아는 내용이 있는 가고 물어보면 보태지도 덜지도 않고 바로 이런 대답이 분명히 나올 것이다. “그때 우리 쪽에서 많이 내려가서 싸우고 왔다는 것은 비밀이 아닌데요.” “우리나라 특수부대 사람들이 참가하지 않았으면 며칠 동안 광주가 해방될 수도 없었고 남조선사람들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지요” “전라남도 광주인민봉기는 조선의 특수부대가 애국투사인 김대중 선생님을 도와주기위해서 내려가서 싸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1968년도에 박정희를 죽이러 남조선에 갔다가 죽은 사람들의 영웅묘지도 있고 1980년도에 광주인민봉기에 내려가서 죽은 사람들의 영웅묘지도 조선에 있어요. 내 눈으로 직접 봤는데요” (pp. 154-155).

    이 시기에 북한은 인민군대와 민간교도대, 노동적위대와 심지어 중·고등학생들의 비 군사조직인 붉은청년근위대를 비롯해서 전 국민에게 준전시체제에 돌입하고 전쟁준비태세를 갖추도록 명령하였다 (p. 155).

    남한에 와서 확인해본데 의하면 이런 사실까지는 파악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북한인민군 주력전투부대의 해당부서와 단위들은 광주사건이 터지기 며칠 전부터 상급지휘부대로부터 광주라는 정확한 지역까지는 통보를 받지 못했지만 남조선에서 조만간 대규모의 사건이 터진다는 구체적인 지시를 하달 받고 전투준비상태에 만반을 기하고 있었다. 우리부대에서도 미그19~21전투기들에 대한 특별정비는 물론 훈련반경을 일상적인 훈련지역보다 남쪽방향으로 더 내려간 군사분계선 상공으로 확대했고 4대로 편성된 전투기 편대가 주야로 항상 관할지역에 대한 비행전투근무를 감당하게 조치했다. 격납고 안에서 대기상태에 있는 전투기들도 명령이 떨어지면 신속히 출격하여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완전무장상태로 전투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부대지휘관들과 전투기 조종사들, 정비사들과 민간노무자들까지도 집에서의 출퇴근이 금지되고 신발 끈을 묶은 상태로 병영 안에서 생활하며 지휘부로부터 출격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라고 있었다.

    상급지휘부에서 내려온 기밀문서에 대한 내용은 해당 중요부서의 고급지휘관들 외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대대지휘부 군관들과 중대, 소대급 지휘관들은 물론 심지어 전투기를 직접 조종하는 비행사들도 긴장하게 돌아가는 부대상황과 분위기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기고 있다는 정도로만 눈치 채고 있었지 남조선에서 금방 터질 대형사건과 관련되는 전군적인 진투준비상태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p. 156).

    남조선의 혁명적인 인민들과 애국적인 청년들에 의해서 탄광과 광산 및 그 밖의 대도시들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반정부투쟁은 우리의 공화국인민들과 그들의 통일열기가 얼마나 뜨겁고 최고의 시기에 도달하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바야흐로 위대한 통일국면은 우리의 눈앞에 현실적으로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조만간 남조선 전역에서 들고 일어날 영웅적인 남조선 인민들의 대규모의 혁명적 항쟁을 지원하기 위하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은...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다음과 같은 전투명령을 하달한다.


1. 인민군무력부 산하 각 군단, 사여단 전투부대들은 만단의 전투동원준비 태세를 유지하고 준전시 상태에 돌입할 것.
2. 교도지도국 산한 각 저격 및 경보병 여단들은 남조선의 후방을 신속히 장악하고 배후를 교란하여 제 2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작전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
3. 공군부대 산한 전투비행단들은 적진에 구축되어 있는 중요군사시설물에 대한 선제타격과 함께 공중작전권을 장악하고 지상군의 작전이 원만히 보장될 수 있도록 최선의 전투준비태세에 임할 것.
4. 해군부대 산하 전투함대들은 선제타격으로 해상공격권을 장악하여 신속한 기동력으로 해상육전부대들의 남한침투를 보장하며 육·해·공군 전반 무력이 입체작전으로 단시일에 남조선을 공략할 수 있도록 비상전투태세에 돌입할 것.
5. 노동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원들을 비롯한 영웅적인 전체 조선인민들은 조국통일의 대사변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예비전쟁연습에 성실히 참가하며 공화국을 내부적으로 파괴하려는 간첩 및 암해분자들의 준동에 경각성을 높이고 자기의 일터를 철옹성같이 지킬 것. (p. 157-158).

김일성은 광주사태가 일어날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간부지침용 책자 (전 북한 공장 지배인 증언)

    1980년 5월 18일 남조선의 광주에서 무장폭동이 전개되기 바로 하루 전인가 이틀 전에 그 책에는 광주라고 정확히 대상은 지명하지 않았지만 남조선의 전라도 지역에서 대규모의 반정부 인민항쟁이 일어난다는 내용과 함께 전당, 전국, 전민이 여기에 동참할 수 있는 만단의 태세를 갖추며 공장 기업소들은 생산라인을 군사지휘체계로 긴장하게 운영할 데 대해서 지시하였다. (....) 바로 이틀 뒤인 5월 19일 아침 노동신문을 비롯한 각종 신문에는 드디어 남조선에서 우리 공화국 북반부 인민들이 학수고대하던 전 인민적인 무장 항쟁이 일어났다고 대서특필하였다. 텔레비전에서는 광주의 무장폭동 첫 시작부터 얼굴을 가린 광주의 계엄군들이 부녀자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장면들을 반복해가면서 집중적으로 내보내었고 광주무장폭동이 남조선 전국으로 확대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지금이 바로 통일의 대 사변을 맞을 수 있는 기회라고 폭동 전 기간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변을 토했다 (p. 207).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것은 임신을 하여 만삭인 여인의 배를 총창으로 갈라서 태아를 꺼내는 모습과 벌거벗은 젊은 처녀의 팔을 도끼로 자르고 어떤 새파란 아가씨의 옷을 홀딱 벗기고 젖가슴을 도려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저도 모르게 한 목소리로, “국제적인 식인종인 미국 놈들의 식민지로 있는 남조선 괴뢰도당들은 정말 인간의 가죽을 쓴 짐승들이나 다름이 없다. 아무리 지독한 살인백정이라고 해도 어떻게 백주 대낮에 여자들만 골라서 발가벗기고 도끼로 내리쳐서 죽이며, 살겠다고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처녀의 젖가슴까지 도려낼 수 있단 말인가” 라고 규탄하면서 남조선괴뢰군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p. 208)

    김일성과 김정일, 그 앞잡이들이 민족 앞에 또 하나의 역사적 비극을 만들었음이 분명한 일이었다. 광주사건은 김일성이가 남조선에서 일어나는 평화적인 시위를 이용해서 친북좌파세력들과 짜고 인민군 특수부대들을 내려 보내서 만들어낸 사건이다.

    당중앙위원회에서 간부들에게 보내는 지침서에서도 광주무장폭동에 참가한 동지들은 조국통일을 위하여 크게 헌신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공화국 영웅칭호를 수여하는 것은 당에서 응당 해야 할 일이고 영웅 전사들의 모범을 따라 배우기 위한 운동을 강력히 전개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1만 톤 프레스와 같은 이름 있는 대형기계에 까지도 5.18광주무장폭동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5.18청년호 라는 명칭을 달아주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희비극을 만들어 냈다 (p. 209).

    김일성은 광주폭동이 성공해서 전국적인 인민항쟁으로 퍼져나갔다면 남조선괴뢰정권은 무너지고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새로운 혁명정권이 남조선에 수립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이 큰 실수라고 말한 적이 있다 (p. 209). 김정일도 자기의 생일날인 1981년 2월 16일 광주인민봉기는 수령님께 바치는 나의 생일 선물이었는데 우리의 역량이 너무 적어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수령님을 볼 면목이 없다고 일군들 앞에서 말했다 (p. 210).


광주인민봉기를 서울로 확산시키라는 김일성의 지시 (원제: 5.18광주사건과 북한군 특수부대 개입)

추천 1

작성일2018-06-21 10:18

유샤인님의 댓글

유샤인
긴글이라 짤려 졌네요 
http://www.kb34.net/xe/index.php?mid=open_forum&document_srl=176184  <= 나머지는 여기에 가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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