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온 동남아시아 출신 여성들에게 사실상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16일 일간 더스타 등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은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6·여)와 베트남 국적자 도안티흐엉(30·여)에게 마지막 변론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이는 현지 법 절차상 새로운 반증이 제시되지 않으면 유죄가 확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시티 아이샤와 도안티흐엉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이 나기를 기대했지만 재판부는 이들이 북한인 용의자들과 김정남을 살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검찰의 주장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주범 격인 북한인 용의자들과 함께 잘 짜인 음모에 따라 조직적으로 김정남을 살해했다"면서 "정치적 암살에 이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이를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국가적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사실상 유죄 판결이 내려지자 방탄복을 입고 법정에 선 시티 아이샤와 도안티흐엉은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작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리얼리티 TV용 몰래카메라를 찍는다는 북한인들 말에 속아 살해 도구로 이용됐다고 주장해 왔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정부도 시티 아이샤와 도안티흐엉의 무죄를 주장해 왔다.

그들에게 VX를 주고 김정남의 얼굴에 바르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리지현(34), 홍송학(35), 리재남(58), 오종길(56) 등 북한인 용의자 4명은 범행 직후 출국해 북한으로 도주했다. 북한은 김정남이 아닌 `김철`이란 이름의 자국민이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리재남 등 4명은 우연히 같은 공항에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7개월간 진행된 이번 재판에는 증인 34명이 출석했다. VX 잔여물이 묻은 옷가지와 손톱 등 증거물 236점이 제출됐다. 재판부는 다음달 최종 변론을 들은 뒤 형량을 결정할 예정이다. 고의적 살인이 인정되면 피고인들은 현지 형법에 따라 교수형에 처해진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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