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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엘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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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멘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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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긴 기다림이 그렇게 짧고 허무하게 끝날줄은 정말 몰랐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하이얀 편지지에 그려가며
목련꽃 그늘 아래서 읽은 베르테르의 편지 속 눈물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고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의 마음에 대하여 토론도 하고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속, 사색의 길을 함께 걷기도 했다.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차이점을 이야기 하며 고전주의 음악이 무엇인줄 알았고
요한 스트라우스와 푸치니의 음악을 들으며 낭만에 대하여 가슴을 함께 열었다.

조용필과 이선희의 노래를 함께 불렀고
염상섭의 시를 읽으며 허무한 세상에 대하여 이른 토론도 하였다.

처음 펜팔로 시작하여 서로가 서로를 알아간지 어느 덧 일년 여..
난 정윤희처럼 생긴 그녀를 상상하며 너무도 보고싶음에
엄마 몰래 지갑에서 만원짜리 한 장을 훔쳐서 부산행 기차표를 샀고
마침내 도착한 부산 해운대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를 만났는데... 근데...

정윤희는 오데로 갔나이고... 방실씨가 방실 방실 대며 내 동공을 뚫고 뇌 속으로 들어왔다.
당황한 나는 얼른 도망을 가려 했으나 방실씨의 우악스런 손에 이내 잡히고
빵집으로 끌려간 내 앞에서 단팥빵, 크림빵, 곰보빵 그리고 후식으로 고로깨까지
빵만 17개를 만나게 드신 그녀의 빵값을 고스란히 내가 내야했고

길건너 용궁각에 또 끌려가
짬뽕 곱배기에 탕수육, 거기다 양잠피까지 가볍게 드시는 그녀의 식사비 역시 고스란히 내 몫
내가 그 사이 먹은 거라고는 달랑 빵집에서 먹은 꽈배기.. 그것도 놀란 나머지 반도 못먹고..

암튼 내 돈을 몽땅 털어 먹은 그녀는 집에 늦게 가면 엄마한테 혼난다고 순식간에 사라지고
난 해운대 밤 바다를 바라보며 고픈 배를 부여잡고 이 노래만 줄창 불러댔다..
그 밤도 오늘처럼 하늘의 조각달이 얼마나 슬프게 보였는지..

당연히 난 그날로 펜팔계를 결연히 떠나고..
(이후에 난 국군장병 아저씨께도 위문편지 쓰기도 거부하여 선생님한테 무지 맞았다는..)
70년이 훨 넘은 지금도 난 그때, 그 곳 해운대를 영원히 잊지 못한다.

해운대 엘레지..
내 인생의 슬픈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