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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앨'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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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멘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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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 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精神奔逸者) 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半)―---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만을 영수(領受)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諸行)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끔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이상의 날개 혹은 날개의 이상 중에서


++


살다가, 살다가
나를 스쳐간, 아니 나를 떠나간
팔백 구십 일명의 여인들이 생각날때면
아니 생각이 날려고 할때면

눈을 버린 시각 장애인이 되던가
귀를 버란 청각 장애인이 되던가
아니면 중증 치매에 걸려
행복했던 시간들만 골라서 기억하던가

이것도, 저것도 내 뜻대로 안되면
겨드랑이 사이나 이마 한 가운데 날개를 심어
오늘 같이 은밀한 밤
아무도 모르게 날개를 푸득거리며
미쳐 완성되지 못한 저 달을 향하여 날아 보았으면..

다가올 추락의 아득한 현기증을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