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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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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멘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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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뜰 때 - 황동규 

올더스 헉슬리는 세상 뜰 때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 사중주를 연주해달라 했고 

아이제이어 벌린은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를 부탁했지만 
나는 연주하기 전 조율하는 소리만으로 족하다 

끼잉 낑 끼잉 낑 댕 동, 내 사는 동안 
시작보다는 준비동작이 늘 마음 조이게 했지 

앞이 보이지 않는 갈대숲이었어 
꼿꼿한 줄기들이 간간이 길을 터주다가 
고통스런 해가 불현듯 이마위로 솟곤 했어 

생각보다 늑장부린 조율 끝나도 내가 숨을 
채 거두지 못하면 
친구 누군가 우스갯소리 하나 건넸으면 좋겠다. 

너 콘돔 가지고 가니? 

++

이제 나도 제법 나이가 먹었음일까..
장례식이 낮설지 않다.
그만치 죽음에 점점 익숙해 진것이다.

살아생전 웃고, 울고, 기뻐하고 성내던 변화의 얼굴에서
아무 감정이 없는 그저 굳은 모습의 고인의 얼굴에서 비로소 죽음의 실체를 봄에 
고인의 명복보다 내 죽음의 미래가 먼저 떠오름은 이 무슨 무례일까

오늘 또 하루를 살았음은, 오늘 또 하루를 죽어 간다는 것
어제 보다 하루 더 가까이 온 죽음을 왜 느끼고 있지를 못했을까..

내가 마지막 죽을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을 해야할까..

음악을 틀어 달라 해볼까
기도를 부탁 한다 해볼까
울지 말라 당부를 해볼까

미안하다.. 미안하다.. 사과를 해볼까
사랑했다.. 사랑했다.. 뒤늦은 고백을 해볼까..

죽어 도솔촌에 가서 다시는 환생 못하는, 아니 안하는 횡재를 꿈꾸며
빙긋이 웃으며 죽는 연습이나 해볼까..

+

나 죽고 난후 한참 후.. 아니 잽싸게
나를 차버린 팔백구십일명의 녀인데 들에게 이 비됴처럼 나타난다면..

아마 무당 부르고, 교회 나가고, 사찰로 달려가고
난리들이 날거야..

나의 사랑을 내가 죽어서도 모를테니까..

근데 진짜 죽어서도 콘돔이 필요할까?...
혹시 모르니 미리 사놔?.. 말아?.. 갑자기 고민이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