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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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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기억 - 송종규

동그란 스탠드 건너 당신은 앉아 있고
나는 세월 건너편 낡은 벤치에 앉아 있다
그 사이로 계곡이 있었던 듯 하기도 하고 잠시, 여우비가 스쳤던 듯 
하기도 하다 달빛이 얼굴 위에 소나기처럼 쏟아졌던 것 같기도 하고
간선도로에 자욱한 
모래의 융단이 깔린 듯 하기도 하다

수많은 이정표와 자동차 바퀴를 거슬러 올라가면
기껏, 소스라치는 마른 나뭇잎, 나뭇잎 한 장의 모질고 쓰린 기억들

세월 건너편 낡은 벤치 위에 당신은 앉아 있고
나는 동그란 스탠드 앞에 앉아 있다
안개가 많은 것들을 지운 듯 세상은 어렴풋하고
달력 속에서 나는 
무릎을 세우고 엎드려 울었다

어는 순간 벌컥, 빗금을 그으며
계곡 또는 단애가 들어섰을 것이다 우리는 
들판에 있었던 듯 하고 못물 속에 깊숙이 가라앉았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아마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을 것이다

스탠드의 불이 나가고 당신은 세월 저편으로 사라졌다 나는 
모래와 꽃과 바람을 받으며 여물어갔다

세월인 당신, 얼룩인 당신

가끔 슬픔이라는 짐승이 드나들기도 하지만
당신에 대해 나는 아주 이상하고 단단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

기억 - 목마르다며 물없이 건빵만 먹는 남자

무엇인가를 기억 한다는 것은  대부분 아픈 것을 가슴에서 꺼내보는 부질없는 일이다.
모서리가 날카로운 기억들에 베어서 상처가 나면 도무지 낫지를 않기 때문이다.

이제 막 시작되는 가을에 변해가는 하늘 빛을 무심히 쳐다 보다가도
혹은 시원해서 더 외로운 밤 바람에 대하여 질문을 하려다가도
감각보다 먼저 반응하며  머리를 거쳐 가슴으로 박히는 기억들로 인하여 많이 아프다.

눈을 감고 길을 걸어도
귀를 막고 음악을 들어도
펼쳐보면 백지뿐인 시집을 읽으며 눈물을 흘려도
기억은 벌판의 비처럼 내 온몸을 적시고, 나는 많이 아프다.

더 아프지 않기 위해서 기억과 나의 斷絕을 꿈꿔본다.
유일하게 꿀수있는 행복한 꿈이다.

꿈은 안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