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설, 비방, 광고, 도배질 글은 임의로 삭제됩니다.

페이지 정보

목멘천사

본문

무얼 건졌지? - 정한종

무얼 건졌지? 
건지긴 뭘, 
인생이 한 그릇 국인가, 
나는 시금치와 배추와 
아욱과 근대 같은 걸 잘 건지는 바이지만, 
술 만든 사람들한테 축복 있으라 
(나쁜 술 만드는 사람들한테는 물론 저주 있으라) 
세상의 물결에 떠 저도 
물결이라며 흘러가는 술병을 
건지고, 
허공 허공 피어나는 
술잔들을, 술잔을 낚는 어부처럼 
잘 건지는 바이지만, 
또 酒色은 가끔 神通이라, 
제물에 빠져 연꽃 파는 여자도 건지고 
내물에 빠져 물불 허덕이는 나도 건지는 바- 
가만있자 브르통이란 사람은 
끝없는 始作으로 시간을 건지려 하면서 
초현실주의 삼십 년에 여자 셋 건지고 
네루다는 여자 여럿, 시 여럿, 
세상 모든 걸 건지고, 
로르카는 同性 두엇, 피와 죽음 
그리고 메아리를 건지고, 
정현종은 제 눈 속의 仙女와 
스친 여자 
(놓친 기차는 모두 낙원으로 갔다) 
삼천서른세 명의 빛과 그리고 
그림자가 저 들꽃과 화장품과 먼지와 한몸으로 
폭풍인 듯, 지평선인 듯 
너울거리는 거길 헤매고 있는데, 
실로 나무 몇 그루, 새 몇 마리 
노래 몇 자락 건지긴 건졌는지- 

도망가는 시늉으로 낯술 한잔 하고 
끼적거려놓은 걸 다시 읽어보노니, 
우리를 건지는 건 예술과 사랑이라, 
꿈이여, 태어나기만 하는 
만물의 길이여. 

++

사랑이라고 말했었지 - 목메어 낮술 마시고 자다가 깬 남자

알몸으로 서로의 몸을 안고서
메마른 가슴을 부비면서
젖은 눈물을 욕망처럼 핥아 대면서
오늘 밤이 영원 할거라고
새벽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이별이 아니라 추억의 시작이라고
그렇게 외로운 너를 태우고
그렇게 서러운 나를 죽이고
울고, 웃고
웃고, 울고

그때, 그 순간,
刹那보다 더 짧았던 그 순간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했었지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니
시린 가슴에 절망처럼 차갑고 칙칙한 구름만 하나 가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