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사죄·배상 당당히 요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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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역사문제에 사죄하고 배상하라고 당당히 말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지키려면 마음 단단히 먹고 일본에 할 말을 해야 합니다.”
위안부 피해자인 강일출(87) 할머니는 한일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을 묻자 이 같이 답했다. 강 할머니는 열 여섯 살 꽃다운 나이인 1943년에 중국 장춘으로 강제연행 돼 해방까지 3년간 고초를 겪었다. 그는 중국에 정착해 간호사로 일하다가 2000년에 위안부 피해자 생활공동체인 ‘나눔의 집’에 오면서 고국 땅을 밟았다.
70여년이 흘렀지만 강 할머니는 일본의 만행을 잊지 못한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강 할머니의 집 앞마당에는 가을이면 꽂감, 대추를 널어놓은 단란한 가정이었다. 강 할머니는 열두 남매의 막내로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위안소 강제동원으로 이 같은 일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일본 순사 세 명이 들이닥쳐 부모가 보는 앞에서 강제연행했다. 늑장을 부린다 싶으면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14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만난 강 할머니는 “그때 당했던 게 지금도 생각나 자다가도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위안소에서도 폭행은 다반사였다. 강 할머니는 “빨리 안 간다고 발길로 채이고, 엎어지면 더 맞았다. 다리가 벌벌 떨렸다”며 “도망 가다가 잡히면 죽으니까 도망도 못갔다”고 토로했다. 강 할머니는 위안소에서 머리를 맞아 입었던 상처가 지금도 비가 오면 욱신거린다고 했다.
사회복지법인 ‘나눔의 집’에는 현재 강 할머니와 비슷한 고초를 당한 위안부 할머니가 9명(김순옥·박옥선·이옥선A·김군자·유희남·김정분·정복수·하수임·이옥선B)이 더 있다. 이들 할머니 상당수는 거동이 불편하고 장시간 대화를 하는 게 힘든 상황이다. 현재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238명 중 생존해 있는 할머니는 47명뿐이다.
강 할머니는 지난달 미국으로 출국해 애틀랜타, 뉴욕에서 위안부 피해 참상과 일제 만행을 증언했다. 최근에는 강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이란 그림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시민 후원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정부 지원도 늘고 있고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인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내달 15일 ‘일본군 성 노예 역사관’으로 명칭을 바꿔 일반에 공개된다. 내년 3월에는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과 함께 미국 홀로코스트 센터에서 일본군 성노예 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강 할머니는 “오래 살아서 일본이든 미국이든 가서 알리겠다. 일본이 사죄하지 않으면 전 세계에 이 문제를 알려 토론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젊은 사람들이 역사문제를 똑바로 알고 다시는 전쟁이 없는 나라를 만들었으면 해요. 우리나라를 똑바로 지켰으면 합니다. 그래야 내가 죽어서도 눈을 감고 가겠어요.”
강일출 할머니(사진=여성가족부).
강일출 할머니가 2001년 나눔의집 미술심리치료 과정에서 그린 작품 ‘태워지는 처녀들’. 할머니는 “일본군은 위안소에서 질병에 걸린 소녀들을 산 채로 불태웠다”고 증언했다(출처=제이오엔터테인먼트)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역사문제에 사죄하고 배상하라고 당당히 말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지키려면 마음 단단히 먹고 일본에 할 말을 해야 합니다.”
위안부 피해자인 강일출(87) 할머니는 한일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을 묻자 이 같이 답했다. 강 할머니는 열 여섯 살 꽃다운 나이인 1943년에 중국 장춘으로 강제연행 돼 해방까지 3년간 고초를 겪었다. 그는 중국에 정착해 간호사로 일하다가 2000년에 위안부 피해자 생활공동체인 ‘나눔의 집’에 오면서 고국 땅을 밟았다.
70여년이 흘렀지만 강 할머니는 일본의 만행을 잊지 못한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강 할머니의 집 앞마당에는 가을이면 꽂감, 대추를 널어놓은 단란한 가정이었다. 강 할머니는 열두 남매의 막내로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위안소 강제동원으로 이 같은 일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일본 순사 세 명이 들이닥쳐 부모가 보는 앞에서 강제연행했다. 늑장을 부린다 싶으면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14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만난 강 할머니는 “그때 당했던 게 지금도 생각나 자다가도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위안소에서도 폭행은 다반사였다. 강 할머니는 “빨리 안 간다고 발길로 채이고, 엎어지면 더 맞았다. 다리가 벌벌 떨렸다”며 “도망 가다가 잡히면 죽으니까 도망도 못갔다”고 토로했다. 강 할머니는 위안소에서 머리를 맞아 입었던 상처가 지금도 비가 오면 욱신거린다고 했다.
사회복지법인 ‘나눔의 집’에는 현재 강 할머니와 비슷한 고초를 당한 위안부 할머니가 9명(김순옥·박옥선·이옥선A·김군자·유희남·김정분·정복수·하수임·이옥선B)이 더 있다. 이들 할머니 상당수는 거동이 불편하고 장시간 대화를 하는 게 힘든 상황이다. 현재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238명 중 생존해 있는 할머니는 47명뿐이다.
강 할머니는 지난달 미국으로 출국해 애틀랜타, 뉴욕에서 위안부 피해 참상과 일제 만행을 증언했다. 최근에는 강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이란 그림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시민 후원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정부 지원도 늘고 있고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인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내달 15일 ‘일본군 성 노예 역사관’으로 명칭을 바꿔 일반에 공개된다. 내년 3월에는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과 함께 미국 홀로코스트 센터에서 일본군 성노예 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강 할머니는 “오래 살아서 일본이든 미국이든 가서 알리겠다. 일본이 사죄하지 않으면 전 세계에 이 문제를 알려 토론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젊은 사람들이 역사문제를 똑바로 알고 다시는 전쟁이 없는 나라를 만들었으면 해요. 우리나라를 똑바로 지켰으면 합니다. 그래야 내가 죽어서도 눈을 감고 가겠어요.”
강일출 할머니(사진=여성가족부).
강일출 할머니가 2001년 나눔의집 미술심리치료 과정에서 그린 작품 ‘태워지는 처녀들’. 할머니는 “일본군은 위안소에서 질병에 걸린 소녀들을 산 채로 불태웠다”고 증언했다(출처=제이오엔터테인먼트)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추천 0
작성일2015-09-16 21:24
부자홀애비님의 댓글
부자홀애비
백년이 지나봐라 잡것들이 사과를 하나. 강국 앞에선 끽소리 하나 못내는 븅닥들이 우물안 개구리처럼 밥그릇 쌈이나 하고 자빠졌는데 일본애들이 어떤놈들인데 뭐가 아쉬워서 그런 애들이랑 사과를 주고 받겠어. 사과를 받아내려면 힘이 있어야되는데 아쉽게도 지금 대한민국엔 그런 정치력 외교력 군사력 경제력 없다. 더 중요한건 이 나라에 사과를 받아낼만한 그런 위인이 없다는거다. 그러니 어쩌겠어 국민들이 나서서 징징대고 마는거지. 정말 쪽팔리는 일이지. 중국을 봐라. 사과고 gr이고 다 필요없고 여차하면 작살나니까 까불지 말라고 벼르고 있잖냐. 난 이게 더 통쾌하다. 대한민국도 빨리 그리 됐음 좋겠다. 그리구 이런거 퍼날른다고 나는Korean되는거 아니니까 자중해라
두리두리님의 댓글
두리두리
지당하신 부자홀애비 말씀
당파싸움 하느라 나라를 빼앗길때 총 한번 안쏘보고
더구나 36년동안 당할만큼 당하고도 아직까지 하나된 목소리를 못내는 원인은? 그럼 결과는 ?
치욕의 역사가 오히려 우리에겐 힘이되었다고
대한민국 정부가 보란듯이 대신 배상을 해주면 얼마나 멋있을까
당파싸움 하느라 나라를 빼앗길때 총 한번 안쏘보고
더구나 36년동안 당할만큼 당하고도 아직까지 하나된 목소리를 못내는 원인은? 그럼 결과는 ?
치욕의 역사가 오히려 우리에겐 힘이되었다고
대한민국 정부가 보란듯이 대신 배상을 해주면 얼마나 멋있을까
글쎄님의 댓글
글쎄
왜 한국인들은
일본이나 중국한테는 꼼짝못하는지.....
광우병 촛불시위때처럼
효선 미선 미군 장갑차 사고때처럼
왜 국민들이 다 일어나서 시위를 못하나?
일본이나 중국한테는 꼼짝못하는지.....
광우병 촛불시위때처럼
효선 미선 미군 장갑차 사고때처럼
왜 국민들이 다 일어나서 시위를 못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