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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같은날 다른곳에 있었던 구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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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살아났구나" 왕산 순국 110주년 추모제 참석기

[오마이뉴스 박도 기자]




▲ 장세용 구미시장(오른쪽)이 13도 창의군 군사장 왕산 허위 선생 장손 허경성(92세) 후손 허벽(84) 선생을 위로하며 독립운동 가문을 치하하고 있다. ⓒ 이동석


준엄한 유권자들의 심판

지난 6.13 지방선거 당시, 전 국민을 놀라게 한 곳은 내 고향 구미의 선거 결과였다. 흔히 구미는 'TK의 심장부' '반신반인의 고장'으로 일컬어질 만큼 수십년 동안 구여권의 텃밭이었다. 사람들은 전국 지자체 장 가운데 구미시장만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개표 결과 장세용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이는 구미의 바닥 민심이 분출한 것으로, 마른 하늘의 벼락과 같은 준엄한 유권자들의 심판이었다.

더욱이 장세용 시장은 취임 후 박정희 생가보다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선생을 기리는 왕산기념관을 먼저 방문하고, 구미가 낳은 위대한 항일명장 허형식 장군의 기마동상 건립 추진한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두 번 놀랐다. 대학 시절 동대문-청량리 간 왕산로를 매일 지나 다니면서도 그 도로명의 유래를 몰랐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동북열사기념관에 가서야 왕산가의 독립운동사를 알았다. 그곳에서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이 구미 금오산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부끄러움에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그 부끄러움은 역사 공부의 계기가 됐다. 이후 나는 조기 퇴직한 뒤 국내외 항일전적지와 의병 및 독립운동가 후손, 역사학자를 찾아뵙고 뒤늦게나마 공부를 이어갔다. 그리하여 <항일유적답사기> <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 <영웅 안중근> 등의 항일유적지 답사기와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을 썼다. 우당기념관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공동으로 <사진으로 엮은 한국독립운동사>를 발간하고, 장세윤 동북아재단 교수실장과 함께 <개화기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등을 펴내기도 했다.

지난 8월 하순, 후배 청년지도자이자 구미 민족문제연구소 지회 설립을 준비하는 위원 여섯 분이 나를 찾아왔다. 허형식 장군에 대해 공부하고자 먼 길을 마다않고 원주까지 온 것이다. 그 열정에 감동해 날이 저물도록 글방에서 허형식 장군 행장을 자세히 들려줬다. 그들이 떠나면서 내 신간이 나오면 고향에서 북 콘서트를 열어주겠다고 약속했다(관련 기사 : 구미하면 박정희? 이젠 허형식이어야 한다).

마침 지난달 하순에 나의 소설작품 <용서>가 나왔다. 그러자 그 후배들이 10월 20일 구미의 한 서점에서 북콘서트를 연다고 알려왔다. 오랜만에 귀향했다. 토요일에, '문화의 날'이라 구미시 전역에서 행사가 많던 날이었다. 그럼에도 장세용 시장 부부는 행사장 이동 시간을 활용해 북콘서트에 참석했다. 장 시장은 뜨거운 환영사로 초라한 고향 출신의 늙은 문사를 격려했다. 나는 고향을 떠난 이후 57년 만에 처음으로 가슴 벅찬 기분을 느꼈다.



▲ 지난 20일 구미 삼일문고에서 열린 박도의 북 콘서트에 환영사를 하는 장세용 구미시장 ⓒ 허성갑


장세용 시장의 의미있는 행보

마침 언론 보도와 후배들의 얘기를 통해, 장세용 시장이 전임 시장들과 달리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모제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그 대신 왕산 선생 추모제 때는 식전에 잠깐 유족들을 만나 그분들을 위로한다고 했다. '정말 내 고향 구미가 이제 변하고 있구나' 실감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장 시장이 대단히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대부분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해서 소신 없이 갑도 좋고, 을도 좋다고 아무나 껴안기 마련이다. 딱 부러지게 자기 의사를 먼저 표명하는 건 대단한 용기다. 솔직히 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장 시장만큼 강단있는 처신을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한 좋은 평가와 함께 그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애를 연구한 작가적 견해를 말했다.

나는 박정희 탄신제 또는 숭모제, 추모제를 주관하는 이들은 정말로 고인을 추모하거나 존경하는 게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이익이나 입지를 넓히고자 이 같은 행사를 이용하는 이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 역사 의식 없는 정상배들은 선거 때만 되면 박정희 생가를 기웃거렸고, 일부는 그 장단에 따라 어깨춤을 췄다.

내가 알기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허례허식을 배격한 실용주의자다. 집권 초기에는 가정의례 준칙을 마련하기도 했다. 자기 제삿날에 왕조시대처럼 대례복을 입고, 초헌관이네 아헌관이네 하면서 국고로 제물을 마련하여 술잔을 드리는 시장이나 지역 국회의원, 토호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 왕산 허위 선생 110주년 추모제 전경. 전병택 준비위원이 사회를 보고 있다. ⓒ 이동석



▲ 왕산 허위 선생 맏손자 허경성 선생이 할아버지 산소에 분향 재배하고 있다. ⓒ 이동석



왕산 순국 110주년 추모제... "정의가 살아났구나"

마침 북콘서트 행사 다음날(21일)은 왕산 허위 선생 순국 110주년 기일이라고 했다. 나는 애초 일정을 바꿔 고향에 머무르다 추모제에 참석했다. 왕산 어른은 내 인생길을 바꾸게 한 분이 아닌가.

그날은 허위 선생 순국 후 고향사람들이 처음으로 묘소 앞에서 드리는 제사라고 했다. 대구에 사는 맏손자 허경성(92세) 선생 내외와 서울에 사는 후손 허벽(84세) 선생은 노령으로 불편한 몸인데도 오셨다. 뜻있는 구미시민들도 함께했다.

이날 장세용 시장은 추모제에 앞서 유족에게 감사의 말씀과 함께 "더 이상의 안타까운 역사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사학자다운 덕담을 했다. 이어 세계 여러 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왕산 유족 가운데 고향에 정착하기를 희망하는 분을 위한 주택 대책을 마련해 보라고 즉석에서 관계자에게 지시했다. 유족뿐 아니라 그 자리에 참석한 이들 모두 감동했다.

나는 그 순간 내 귀를 의심하는 한편, 이제야 내 고향에 정의가 살아난다는 감동을 받았다. 지금 왕산 유족들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중국, 러시아,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유랑민으로 지내며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9년 9월 28일, 왕산기념관 개관식 때 후손들은 100년 만에 할아버지 고향을 찾아왔다. 하지만 하룻밤도 묵지 못하고 서울의 여관방으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고 나는 눈시울을 적신 바 있다. 개관식 기념행사장에서 그 후손들은 귀빈 자리에도 앉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런 처사를 본 광복회 회원들과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대표가 분개하면서 나에게 부탁하기에 주최 측에 시정을 요구했지만, 끝내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할아버지 고향을 찾은 유족들은 그날 행사장에서 한낱 들러리를 선 뒤 씁쓸히 고향을, 고국을 떠났다.



▲ 박찬문 민문연지회장의 추모제 경과 보고 ⓒ 이동석



▲ 구미시민 김형숙 님이 이육사의 '광야'를 낭독하고 있다. 이육사의 외가가 왕산가로 육사는 왕산의 조카 항일연군 제3로군장 허형식 장군을 기리면서 이 광야를 지었다고 한다. ⓒ 이동석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

추모제 때 사회를 보던 전병택 후배가 나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왕산 가문의 항일 운동사와 내가 허형식 장군의 희생지를 찾아간 얘기를 고향 분들에게 들려드렸다.

그날 구미 시민 김형숙님이 이육사의 <광야>를 낭독했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라는 구절에서 손수건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박찬문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장은 왕산 추모제를 열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장호철 선생은 허위 선생 행장을 소개했다. 그리고 왕산 묘소 앞에서 장기태 민문연 준비위원은 추도사를 낭독했다.

"…저희들은 왜곡되고, 굴절된 현대사와 반신반인의 지역 정서로 그동안 왕산 선생님을 제대로 조명치 못함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 이제는 우리나라의 민족 혼과 구미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에 앞장서서 충절의 도시 구미, 문화가 살아 숨쉬는 구미로 만드는 일에 저희들이 앞장서겠습니다. "

참회록과 같은 추도사 낭독은 이날 추모제의 하이라이트로, 참배객들을 숙연케 했다. 먹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마침내 푸른 창공에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 같았다.


▲ 민문연 장기태 준비위원이 무릎 꿇고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 이동석


그때 하늘을 바라보자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동안 고향 하늘에 잔뜩 낀 먹구름과 짙은 안개가 말끔히 사라진 듯…



"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드러난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날 내 취재 수첩에 마지막으로 적은 메모다.



▲ 왕산 허위 선생의 행장을 낭독하는 장호철 전 구미고등학교 선생님.. ⓒ 이동석



▲ 기자가 왕산 허위 선생 추모제에서 참배객들에게 왕산가의 항일운동사와 허형식 장군 희생지를 찾아간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 이동석



▲ 왕산 허위 선생 순국 110주년 추모식을 조촐히 마친 구미시민들과 유족들이 묘지 옆에서 '친일파 청산'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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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8-10-2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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