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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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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75 9/1 398-403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준다 ***

“서로 열렬히 사랑하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베드로 전 4:8, 새번역.
당신은 어떤 사람에게 모질게 말을 하고 즉시 후회한 경험이 있읍니까? 혹은 당신은 어떤 다른 면으로 불친절하게 행동하고 나서 송구스럽게 생각한 적이 있읍니까? 분명히 우리 모두에게는 그러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물의 제도의 끝이 가까와 옴에 따라 우리에 대한 압력과 고난이 증가하므로, 우리가 서로 감정을 상하거나 불쾌하게 되는 때가 더 자주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일어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2 대답을 구하기 위하여 베드로 전서 4:7, 8의 내용을 좀 더 세밀히 살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 귀절(새번역)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므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하지만, 특히 “서로 열렬히 사랑”해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이제 이 사랑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에 대하여 제시된 이유를 유의하여 보십시오. 이 기록은 그 이유를 이렇게 알려 줍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이것이 고려해야 할 매우 중요한 면입니다.


3 우리는 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과 불완전성으로 인하여 우리가 모두 악 혹은 죄를 저지르는 경향을 유전받은 사실을 시인해야 합니다. (로마 5:12) 우리 모두는 의로운 것에서 자주 빗나갑니다. 우리 속에는 질투하고 성내고 자만하고 용서하지 않는 등의 경향이 있읍니다. 그리고 우리가 때때로 이러한 죄있는 경향에 넘어가서 속이 상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나쁜 경향이 존재하며, 이따금 그러한 경향이 말과 행동으로 표현될 것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자 ‘야고보’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이렇게 정확히 말하였읍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그러나 아무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다”고 성서는 말합니다.—야고보 3:2; 열왕 상 8:46.


4 그러므로 상호간의 관계에 대하여 현실적이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죄있는 경향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그들 사이에서 표현될 수 있읍니다. (로마 7:15-20) 우리는 이러한 잘못을 볼 때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 회중과 연합하고 있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며 커다란 충격과 동요를 느껴서는 안됩니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사랑이 이러한 죄를 덮어 주었다는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 회중의 일부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일과 사랑을 나타내는 일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성서는 우리가 이 점을 인식하도록 도와 줍니다. 성서는 문제가 일어날 때에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물을 현실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제 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 내의 사건들을 알려 줍니다.


문제가 있었던 ‘빌립보’ 여인들
5 먼저, ‘마게도냐’ 지방의 주요 도시 ‘빌립보’에 있던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형성된 환경을 고려하여 봅시다. 사도 ‘바울’은 기원 50년에 그의 둘째 선교 여행 중 그 곳에 가서 이 회중을 설립하였읍니다. (사도 16:11-40) 수년 후에 ‘바울’은 세째 선교 여행을 하면서 다시 ‘빌립보’ 회중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20:1-6) 다음에 회중을 처음 설립한지 약 십년 후에 ‘바울’은, ‘빌립보’인들이 그리스도인 친절과 열심의 놀라운 행동을 보이는 것에 감동을 받고 그들에게 사랑과 격려의 감동적인 편지를 썼읍니다. 그는 시종일관 그들을 극구 칭찬하고 편지 끝에서 단 하나의 짧은 시정의 말을 하였읍니다.


6 ‘바울’은 이렇게 썼읍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이여, 내 기쁨이요, 내 면류관인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와 같이 주 안에 든든히 서시오.” 그러나 그의 다음 말에 유의하십시오. “나는 ‘유오디아’에게 권합니다. 그리고 ‘순두게’에게 권합니다. 주 안에서 한 마음[같은 정신, 신세]을 품으시오.” (빌립보 4:1, 2, 새번역) ‘바울’은 왜 이러한 말을 하였읍니까? 그는 왜 회중에게 “주 안에 든든히 서”라고 격려하고 다음에 두 여자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지적하여 주 안에서 “같은 정신”을 가지라고 권고하였읍니까?


7 이 두 여자 사이에 어떠한 문제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분명히 같은 정신으로 연합해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성서는 그들 사이의 말썽이 무엇이었는지 혹은 무엇이 그들 사이의 불화를 초래하였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아마 그들은 어떤 면으로 서로 질투하였었을지 모릅니다. 두 사람이 다 강한 개성을 가졌기 때문에 서로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들 사이에 마찰이 있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주 안에서 같은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편지를 쓰고 있던 수백 ‘마일’ 떨어진 ‘로마’에서 그 일에 대하여 알고 있었읍니다. 이 사실은 그 말썽이 오래 끈 것이었고 형제들 사이에 꾀 잘 알려져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8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기본적으로 좋은 그리스도인 여자들이었읍니다. 이들 두 사람은 형제 자매들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읍니다. ‘바울’은 회중에게 이렇게 썼읍니다. “이 여인들을 도와 주시오. 이 여인들은 ··· 복음을 위하여 나와 함께 싸운 여인들입니다.” (빌립보 4:3, 새번역) 그러므로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그리스도인이 된지 상당히 오래 되었으며, 이전에 전파 사업을 추진하는 데 ‘바울’과 함께 일한 일도 있었읍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만일 제 1세기 회중에 이와 같은 불화가 있었다면, 오늘날 이와 비슷한 불화가 있을 경우 지나치게 동요할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그러나 여자들에게만 그러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장로 사이의 불화

9 그리스도인 장로들 역시, 심지어 탁월한 장로들에게도 문제가 있었읍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과 그의 초기 여행 반려자 ‘바나바’를 고려하여 보십시다. 그들은 여러 그리스도인 회중을 설립하면서 첫째 선교 여행을 마치고 나서 이제 둘째 여행을 고려하고 있었읍니다. 성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얼마 후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우리가 ‘주의 말씀을 선포한 여러 도시로 형제들을 다시 찾아가서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읍니까?’ 하고 말했읍니다.” (사도 15:36, 새번역) 그 첫째 여행에는 ‘요한 마가’가 그들과 함께 동행하였으나 어떤 공개되지 않은 이유로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기록은 알려 줍니다. ‘예루살렘’에는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살고 있었읍니다.—사도 13:13, 새번역.


10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가 둘째 선교 여행을 논할 때에 ‘마가’의 이름이 등장하였읍니다. 성서는 그 때 있었던 일을 이렇게 알려 줍니다. “‘바나바’는 ‘마가’라는 ‘요한’도 데리고 가려고 했읍니다. 그러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함께 일하러 가지 않은 그를 이제 데리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읍니다].” (사도 15:37, 38, 새번역) 이렇게 해서 이 때 의견 차이가 있었읍니다. ‘바나바’는 첫째 선교 여행 때 ‘마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데에는 그만한 좋은 이유가 있었다고 느꼈었던 모양입니다. 아마 그의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간호하기 위하여 돌아갔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알 수 없읍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만일 ‘마가’가 떠난 것이 참으로 경솔한 짓이었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처사였다면 ‘바나바’는 분명히 ‘마가’가 깨달은 바가 있어 이번에는 사업에 고착할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마가’를 데리고 가기를 원하지 않았읍니다. 자아, 당신은 이들 두 장성한 그리스도인 장로가 그러한 의견 차이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읍니까?

11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몹시 다툰” 끝에 서로 갈라지고 말았읍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배타고 건너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했읍니다. ‘바울’이 ··· 길을 떠났읍니다.” (사도 15:39, 40, 새번역)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경우에 두 탁월한 장로가 사소한 언쟁이 아니라 ‘몹시 다투’었으며, 그것도 하찮아 보이는 문제를 놓고 그렇게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헤어졌읍니다. 그들은 서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 곳에 있었고 그것을 보았다면 당신은 이들 탁월한 장로들이 취한 행동 때문에 이것은 확실히 하나님의 조직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겠읍니까?


12 ‘안디옥’에서 있었던 또 하나의, 약간 다른 경험을 고려하여 보십시다. 사도 ‘베드로’가 ‘시리아’에 있는 이 도시를 방문하였을 때, 그는 전 회중과 연합하여 이방인 신자들의 집에서 두려움 없이 먹고 거리낌없이 교제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왜냐 하면 몇해 전에 그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고넬료’에게 전파하여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최초의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이 되게 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야고보’ 즉 예수의 이부 동생이 보낸 몇명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에 오자 ‘베드로’는 “그 할례받은 사람들”로부터 비평을 받을까 두려워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헤어져서 그들과 분리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곳에 있던 다른 할례받은 그리스도인들도 같은 행동을 취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이것은 분명히 옳지 않은 일이었읍니다.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 그러한 분열이 초래된 것은 ‘베드로’의 죄 때문이었읍니다.


13 이 무렵에 사도 ‘바울’도 ‘안디옥’에 있었으며, 그는 그러한 사태를 보고 몹시 노분하였읍니다. 그는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설명하였읍니다.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대로 똑바로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 앞에서 ‘게바’[‘베드로’]에게 말했읍니다. ‘당신은 ‘유대’ 사람인데도 ‘유대’ 사람 같지 않고 이방 사람같이 살면서 어찌하여 이방 사람들더러 ‘유대’ 사람 같이 되라고 강요합니까?’” (갈라디아 2:11-14, 새번역) ‘베드로’는 ‘모세’의 율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 증거로, 이전에 그는 이방인들과 거리낌 없이 교제하였었읍니다. (사도 10:28, 29) 그러나 이제, 두려움 때문에, 그는 ‘모세’의 율법 하에 규정된 분열을 다시 조장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 율법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이상 적응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에베소 2:13-18) 그러나 그가 “자리를 떠나” 이방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물러났”던 것은 어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특히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이 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두려워해서 취한 분명히 위선적인 행동이었읍니다. 그래서 ‘바울’은 전 회중 앞에서 ‘베드로’의 위선을 폭로하였읍니다. 만일 당신이 ‘베드로’라면 어떻게 느꼈겠읍니까?—히브리 12:11.
사랑으로 여러 가지 죄를 덮음


14 ‘베드로’가 어떻게 느낄 수 있었겠는가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는 사도들 가운데서 탁월하였으며, 이보다 앞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특별한 봉사의 특권을 위임받은 일이 있었읍니다. (마태 16:18, 19; 사도 2:14-41; 10:34-48) ‘바울’은 그리스도인 조직 내에서 ‘베드로’ 보다 새로운 사람이면서 이 경우에 그는 전 회중 앞에서 ‘베드로’를 면박하였읍니다. ‘베드로’는 ‘‘바울’이 감히 어떻게 회중 앞에서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담’ 하고 느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겸손하였읍니다. 그는 시정을 받아들였고 ‘바울’에 대한 사랑을 식게 하지 않았읍니다. ‘베드로’가 후에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격려의 편지에서 ‘바울’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유의하십시오.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느니라].” (베드로 후 3:15)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이 경우 자기의 죄로 인하여 야기되었던 문제를 사랑으로 덮었읍니다. 확실히 ‘베드로’는 참 그리스도인 회중을 구별해 주는 특성을 전시하였읍니다!


15 ‘마가’를 동반하는 일과 관련하여 발생한 ‘바울’과 ‘바나바’ 사이의 문제는 어떠합니까? 마침내 몹시 다투기까지 한 이 문제도 그 후에 사랑으로 덮어졌읍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 증거로, 후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선교 사업을 할 때 ‘고린도’ 회중에게 편지할 때 그는 ‘베드로’와 기타 사도들과 함께 ‘바나바’를 가까운 동료 일군으로 언급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9:5, 6) ‘바울’은 분명히 ‘마가’에 대한 자기의 그릇된 판단을 인정하고 ‘마가’와 ‘바나바’에게 겸손히 사과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근거로, 후에 ‘바울’은 ‘마가’를 칭찬하였읍니다. 사실, 그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서 이렇게 썼읍니다. “‘누가’만이 나와 같이 있읍니다. ‘마가’를 데리고 오시오. 그는 내 일에 요긴한 사람입니다.”—디모데 후 4:11, 새번역; 골로새 4:10.
16 그러면,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어떠합니까? 그들은 서로 범하였을 죄를 사랑으로 덮어나아가고 그들의 의견차이를 해결하였읍니까? 성서는 마침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인 봉사에서 ‘바울’과 함께 싸운 좋은 여자들이므로 그들이 충고를 겸손히 받아들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이치적일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편지가 낭독되었을 때에 그들이 집회 후에 서로 가까이 가서 사랑의 정신으로 그들의 문제를 바로잡았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읍니다. 그와 반대로, 그들은 충고를 듣고 더 강경해질 수도 있었읍니다. 그들은 ‘‘바울’이 무슨 권리가 있기에 우리의 문제에 대하여 전 회중에 편지하였는가?’하는 식의 태도를 취할 수도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불화는 해결되지 않고 더욱 악화될 수도 있었읍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겠읍니까?


17 ‘빌립보’인들에게 보낸 이 편지는 기원 60년경에 쓴 것입니다. 수년 후인 기원 64년에 ‘로마’ 황제 ‘네로’는 ‘로마’에 불을 지르고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렸다고 전해집니다. 그 후 얼마 안있어 그리스도인들에게 커다란 박해가 가해졌읍니다. 만일 이 박해가 ‘빌립보’에도 파급되어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마치 수년 전에 ‘바울’과 ‘실라’가 그 곳에서 투옥되었던 것과 같이 투옥되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읍니까? (사도 16:19-34) 그들이 같은 감옥, 바로 같은 감방에 함께 있게 되었다면 어떠하였겠읍니까? 만일 그들이 같은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들의 불화가 자라서 서로 미워하였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였겠읍니까? 그들은 영적으로 서로 무너뜨리고 아마 서로 상대방의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었겠읍니까!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이 사물의 제도에 “큰 환난”이 임할 때에 서로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마태 24:21.



끝이 가까와 옴에 따라 사랑이 긴요하다

18 이것을 우리는 심각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고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있는 “허다한 죄”를 덮기 위하여 열렬한 사랑을 배양할 필요가 있읍니다. (야고보 3:2) 우리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우리가 싫어하는 성격상의 결점 혹은 싫증나는 습관 혹은 기타 특징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들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제도가 “큰 환난”에서 전면 붕괴될 때가 다가오고 있고 통신이 두절되고 현대 여행 수단이 불가능해 질 것이 확실한데, 우리가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기 위하여 누구와 접촉할 수 있을 것입니까? 수천 ‘킬로’ 혹은 수백 ‘킬로’, 아니,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회중의 형제들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힘주고 도와 주기 위하여 우리 회중 내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마련하여 주셨읍니다. 특히 우리에게서 가까이 있는 이들 친밀한 그리스도인 동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사랑을 받을 필요가 있읍니다. 앞에 놓인 어려운 때에 이 친밀한 관계는 참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19 우리가 우리 회중 내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결과는 매우 좋지 않을 수 있읍니다. 사도 ‘바울’은 함께 화목하게 지내는 데 분명히 어떤 난관을 가지고 있던 ‘갈라디아’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할 때 이 점을 지적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권고하였읍니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시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한 말씀에 다 들어 있읍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 것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갈라디아 5:13-15, 새번역)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여호와와의 관계를 무너뜨리고 심지어 파괴할 수 있읍니다. 그 결과 우리는 매우 가까운 “큰 환난”을 생존하지 못할 수 있읍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배양하기 위하여 참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읍니다. 우리는 진리를 실천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형제들에 대하여 원한을 품거나 기타 방법으로 그들을 사랑이 없는 방법으로 대할 수 없읍니다. 성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매우 명백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의문의 여지 없이, 우리는 서로 사랑할 의무가 있읍니다.—요한 1서 4:20, 21; 3:14-16.


최상의 선생님들로부터 배우라

21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당신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 회중의 어떤 사람들은 참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분통이 터지게 하고 비위가 상하게 합니다” 하고 말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참 그리스도인 특성을 발전시키는 데 아직도 멀었을 수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의 완전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거의 완전해질 때까지 혹은 우리가 그의 길에 순응하기 위하여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린 후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읍니다.” (로마 5:8, 새번역)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직 악행의 행로에 깊이 빠져 있었고 비위를 상케할 이기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읍니다. 이것은 사랑을 보이는 면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본입니다.—에베소 5:1, 2.
22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에게 좋은 본을 세우셨읍니다. 그분은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들을 제자로 모으셨읍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나쁜 경향이 있었읍니다. 예를 들면,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에 그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읍니다. 성서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읍니다. 예수께서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셨읍니다. ‘너희가 길에서 무엇을 가지고 다투었느냐?’ 제자들은 잠잠했읍니다. 그것은 그들이 길에서 누가 더 높으냐 하는 것으로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제자들에게 그들이 어린이들과 같이 겸손할 필요성과 탁월한 지위를 구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읍니다.—마가 9:33-37, 새번역; 마태 18:1-6.


23 그러나, 그 후 얼마 되지 않아서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가까이 가고 있을 때에 사도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와서 그의 왕국에서 가장 탁월한 두 지위 곧 그의 좌우편의 지위를 구하였읍니다.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개했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때에 그들 속에 있던 이 나쁜 경향에 대하여 또 다시 이야기하셨읍니다.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사람들의 집권자로 알려진 사람들은 백성들을 강제로 지배하고 또 고관들은 세도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크게 되려고 하면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누구든지 주인이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가 10:35-45, 새번역.


24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나누기 위하여 모인 것은 아마 그보다 일주일 조금 뒤였을 것입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있는 문제를 알고 계셨읍니다. 그래서 함께 그 마지막 식사를 시작하기 직전에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셨읍니까?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사도들 한 사람 한사람의 발을 씻기셨읍니다! (요한 13:4-17) 사도들이 따라야 할 얼마나 훌륭한 겸손의 본이었읍니까! 그러나 그후 바로 같은 날 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읍니까? 성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누가 22:24) 당신은 이런 일을 상상할 수 있읍니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주 실망한 나머지 손을 들고 ‘너희들은 가망이 없다. 나는 너희들을 포기하겠다. 너희들은 결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하고 말씀하시지 않았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들이 아직 그러한 죄있는 경향을 나타낼 때에도 예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셨읍니다. 그분은 계속 그들을 훈계하시고 충고하셨읍니다. (누가 22:25-27)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깨달았으며 후에 함께 연합하여 일하였으며 그들 중 아무도 야심적으로 탁월한 지위와 명성을 구하지 않았읍니다.


25 참으로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줍니다. 사실 사랑을 실천함으로써—용서하고 서로 돕고 훈계함으로써—우리는 죄로부터 영속적인 해나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역사상 이 위기의 때에 사랑의 중요성에 대하여 기록한 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열렬히 사랑하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하고 그는 말하였읍니다. 확실히 우리는 지금 열렬한 사랑을 실천할 필요가 있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운 새 제도로 살아 들어가느냐 하는 여부는 우리가 그렇게 하느냐에 달려 있읍니다.—베드로 전 4:7, 8, 새번역.
[연구 질문]

 1, 2. (ㄱ) 우리 모두는 어떠한 잘못을 범하며, 왜 우리는 더욱 자주 그렇게 될 수 있읍니까? (ㄴ) 발생하는 문제들을 극복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것입니까?
 3. (ㄱ) 우리 모두는 어떠한 사실을 직면해야 합니까? (ㄴ) 성서는 우리에 대하여 어떻게 정확히 말합니까?
 4. (ㄱ) 죄를 범하는 일이 있을 때에 우리의 반응이 어떠해서는 안되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ㄴ) 문제가 일어날 때에 우리가 사물을 현실적으로 검토하도록 무엇이 도와 줄 것입니까?
 5. (ㄱ) ‘빌립보’ 회중의 배경 얼마를 묘사하십시오. (ㄴ) 사도 ‘바울’은 회중에 어떠한 편지를 썼읍니까?
 6.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썼으며, 이것은 어떠한 질문들을 제기합니까?
 7. (ㄱ) 이 두 여자는 왜 주 안에서 같은 정신을 가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읍니까? (ㄴ) ‘바울’이 그들의 태도에 대하여 안 사실은 아마도 무엇을 시사해 주는 것입니까?
 8. (ㄱ) 기본적으로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어떠한 여자들이었으며, 무엇이 이것을 시사합니까? (ㄴ) 우리는 제 1세기의 그 경험에서 무슨 교훈을 받을 수 있읍니까?
 9, 10. (ㄱ) ‘바울’과 ‘바나바’의 첫째 선교 여행 중에 ‘요한 마가’에게 무슨 일이 있었읍니까? (ㄴ) ‘바나바’는 둘째 선교 여행에 왜 ‘마가’를 동반하기를 원한 것같으며, 그러나 ‘바울’의 생각은 어떠하였읍니까?
11. (ㄱ) ‘마가’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이와 같이 의견 충돌을 빚은 결과 어떠한 일이 있었읍니까? (ㄴ) 그리스도인 장로 간의 이러한 불화는 그들이 참 하나님의 종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였읍니까?
12. ‘베드로’는 ‘안디옥’을 방문하였을 때에 어떠한 죄를 범하였으며, 무엇 때문에 그는 이렇게 행동하였읍니까?
13. (ㄱ) ‘바울’이 ‘안디옥’에 있으면서 그곳에서 발생한 일을 보았을 때 그의 반응은 어떠하였읍니까? (ㄴ) 왜 ‘베드로’는 위선적인 행동을 하였으며, 그러나 전 회중 앞에서 시정을 받는 것은 어떠하였겠읍니까?
14. (ㄱ) ‘베드로’는 ‘바울’로부터 이러한 시정을 받은 것에 대하여 어떻게 느낄 수 있었읍니까? (ㄴ) 그러나, 그 후 ‘바울’에 대한 어떠한 태도가 ‘베드로’는 자기의 죄를 사랑으로 덮게 하였음을 알려 줍니까?
15. (ㄱ) ‘바울’과 ‘바나바’ 사이의 문제는 어떻게 바로잡아졌으며, 무엇이 그 여부를 알려 줍니까? (ㄴ) ‘바울’이 ‘마가’에 대한 그릇된 판단을 시인하였을 것임을 알리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16. (ㄱ)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그들의 불화를 해결하였다고 추정하는 것이 이치적입니까? (ㄴ)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그릇된 태도를 취할 수도 있었읍니까?
17. (ㄱ) 만일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그들의 불화를 해결하지 않았다면 어떠한 사태가 진전될 수 있었을 것입니까? (ㄴ) 그러한 사태 진전의 가능성으로부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읍니까?
18. (ㄱ) 우리는 어떻게 할줄 알아야 합니까? (ㄴ) 끝이 다가옴에 따라 세계 상태의 어떠한 가능성이 우리 회중 내의 형제 자매들을 사랑할 필요성을 강조합니까?
19. 만일 우리가 서로 열렬히 사랑하지 않으면 어떠한 결과가 있을 수 있읍니까?
20.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또한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해야 함을 성서는 어떻게 지적합니까?
21. (ㄱ)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에 대하여 어떻게 느낄 수 있읍니까? (ㄴ)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보이는 면에서 어떠한 본을 제시하십니까?
22, 23. (ㄱ) ‘가버나움’ 근처에서 예수의 사도들은 어떠한 나쁜 경향을 나타냈읍니까? (ㄴ) 이 경향이 다시 어떻게 나타났으며, 예수께서는 어떠한 충고를 주셨읍니까?
24. (ㄱ)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면서 어떠한 겸손의 본을 세우셨으며, 그러나 조금 후에 무엇에 대하여 다툼이 있었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어떻게 사도들에게 계속 사랑을 보이셨으며,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25. (ㄱ) 사랑으로 죄를 덮을 때에 어떠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까? (ㄴ) 우리가 지금 서로에 대하여 열렬한 사랑을 가지는 것이 왜 절대 필요합니까?
[402면 삽화]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나쁜 경향을 극복하도록 돕기 위하여 어린이를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그들에게 어린이들과 같이 겸손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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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1-2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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