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그 다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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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그 다섯 번째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상기의 갈라디아서 3장과 4장에 나오는 “속량“으로 번역된 말의 원어를 찾아 보려한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χριστοs ημαs εξηγορασεν εκ τηs καταραs του νομου γενομενοs υπερ ημων καταρα
οτι γεγραπται επικαταρατοs παs ο κρεμαμενοs επι ξυλου
크리스토스 헤마스 엑세고라센 에크 테스 카타라스 투 노무 게노메노스 휘페라 헤몬 카타라
호티 게그랍타이 에피카타라토스 파스 호 크레마메노스 에피 크륄루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상기 성구를 살펴보기 위 하여는 두 문단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살필 문단은
아래 줄로 나뉜 문단으로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 란 말은
신명기 21장 23절을 인용한 성구로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표기를 하는 것은
저주를 내리는 주체는 하나님이란 말이 된다 그 당시는 예수님께서 살아가던 시절과는 달라
로마식 사형방법인 나무기둥에 매달아 십자가형으로 사형 시키는 법은 없었고 구약에서는
사형을 집행하고 나서 나무에 매달게끔 했던 풍습이라 그 당시 모습과 죽기 전에 나무 기둥에
묶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의 상징으로 표 했지만 이 문제는 예수님의 인류를 위한 인류의
죄의 저주를 대신 받고 나무에 매달리는 표현을 하시었다 사도 바울의 고뇌를 한 번에 드려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든 저렇든 나무에 매달린다는 것은 저주의 상징이었다
이번엔 윗줄 문단을 살펴보자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란 부분인데 이 문단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할 단어 하나를 보자 우리말 속량하셨다로 번역된 원어는 동사로써
“엑세고라센(εξηγορασεν)으로 직설법 능동태 목적격 삼인칭 단수로 쓰였다 이 말씀은 우리가
속량해 달라고 때를 쓴 결과가 아니라 능동태로 속량이 우리에게 은혜스럽 게 주어 졌다는
말씀으로 “엑세고라센“의 원형은 “엑사고라조“ 인데 이말은 ”되 사다“ 또는 ”댓가를 지불하여
타인의 소유에서 소유권을 되찾다“ 란 의미의 단어로 이 말씀은 우리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주님이 저주를 대신 받고 우리의 저주를 속량 하시었다는 말씀이다
자 이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저주마저 대신 책임을 지시고 본인이 대신
저주를 받으시면서 우리 기독교인들을 율법이 우리들을 정죄와 판결과 영원한 죽음의 형벌에
대가를 지불 하시고 우리를 율법의 굴레에서 속량 하시었다는 말씀이다
갈라디아 4장 5절은 우리를 그렇게 속량하시어 죄인에서 아들이 될 수 있는 명분을 주신 것이다
위대한 희생과 숭고한 사랑으로 우리를 속량하신 주님 안에서 벗어나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짓은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보여 진다
결코 다시는 율법의 저주로 돌아가 안식일을 지키는 따위에 무모한 짓거리는 그쳐야 할 것이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상기의 갈라디아서 3장과 4장에 나오는 “속량“으로 번역된 말의 원어를 찾아 보려한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χριστοs ημαs εξηγορασεν εκ τηs καταραs του νομου γενομενοs υπερ ημων καταρα
οτι γεγραπται επικαταρατοs παs ο κρεμαμενοs επι ξυλου
크리스토스 헤마스 엑세고라센 에크 테스 카타라스 투 노무 게노메노스 휘페라 헤몬 카타라
호티 게그랍타이 에피카타라토스 파스 호 크레마메노스 에피 크륄루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상기 성구를 살펴보기 위 하여는 두 문단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살필 문단은
아래 줄로 나뉜 문단으로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 란 말은
신명기 21장 23절을 인용한 성구로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표기를 하는 것은
저주를 내리는 주체는 하나님이란 말이 된다 그 당시는 예수님께서 살아가던 시절과는 달라
로마식 사형방법인 나무기둥에 매달아 십자가형으로 사형 시키는 법은 없었고 구약에서는
사형을 집행하고 나서 나무에 매달게끔 했던 풍습이라 그 당시 모습과 죽기 전에 나무 기둥에
묶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의 상징으로 표 했지만 이 문제는 예수님의 인류를 위한 인류의
죄의 저주를 대신 받고 나무에 매달리는 표현을 하시었다 사도 바울의 고뇌를 한 번에 드려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든 저렇든 나무에 매달린다는 것은 저주의 상징이었다
이번엔 윗줄 문단을 살펴보자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란 부분인데 이 문단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할 단어 하나를 보자 우리말 속량하셨다로 번역된 원어는 동사로써
“엑세고라센(εξηγορασεν)으로 직설법 능동태 목적격 삼인칭 단수로 쓰였다 이 말씀은 우리가
속량해 달라고 때를 쓴 결과가 아니라 능동태로 속량이 우리에게 은혜스럽 게 주어 졌다는
말씀으로 “엑세고라센“의 원형은 “엑사고라조“ 인데 이말은 ”되 사다“ 또는 ”댓가를 지불하여
타인의 소유에서 소유권을 되찾다“ 란 의미의 단어로 이 말씀은 우리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주님이 저주를 대신 받고 우리의 저주를 속량 하시었다는 말씀이다
자 이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저주마저 대신 책임을 지시고 본인이 대신
저주를 받으시면서 우리 기독교인들을 율법이 우리들을 정죄와 판결과 영원한 죽음의 형벌에
대가를 지불 하시고 우리를 율법의 굴레에서 속량 하시었다는 말씀이다
갈라디아 4장 5절은 우리를 그렇게 속량하시어 죄인에서 아들이 될 수 있는 명분을 주신 것이다
위대한 희생과 숭고한 사랑으로 우리를 속량하신 주님 안에서 벗어나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짓은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보여 진다
결코 다시는 율법의 저주로 돌아가 안식일을 지키는 따위에 무모한 짓거리는 그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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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1-07-2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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