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일장 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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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산화비의 소속종파는 장로교다. 내 스승께서도 원 소속종파는 나의 종파와 같은 장로교
출신이시다. 당신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혈혈단신으로 상항침례신학대로 유학을 오신 후
달라스 침례 신대로 옮기셔서 박사학위 코스를 수학 하신분이다.. 몸은 비록 어느 일정 종파에
속해 있으나 말씀은 종파의 같고 다름을 가리지 않고 만인에게 평등하게 존재 하신다.
종교는 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노아님이 비록 공식이단 왕국사람이긴 하지만
그 믿음이 성경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몸이 어느 종파에 속해 있던 좀 자유스럽지 않을까 한다.
진실이란 존재하는 진실과 쓰여 진 진실과 전해진 진실이 있다 .. 이렇게 있는 진실들이
모두 같을 수도 있고 둘만 같고 하나가 다를 수도 있고 세 가지 진실이 모두 다를 수도 있지만
결국 존재하는 진실은 단 하나의 기준이 되는 진실이다.. 쓰여 진 진실과 전해진 진실이 얼 만큼
존재하는 진실에 부합하는가가 바로 믿음의 척도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왕국사람 노아에게
전해진 진실이 얼 만큼 존재하는 진실에 근사한가가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을 종종 보았다
나 산화비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존재하는 진실에 가장 근사한 전해지는 진실을 유추하기
위함임을 미리 밝히고 아래 글을 써 내려 가고 함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이미 몇 번 올리고 올린 내용의 반복이다.)
“Εν αρχη ην δ λογοs και δ λογοs ην προs τον θεον και θεοs ην δ λογοs”
“엔 아르케 엔 호 로고스 카이 호 로고스 엔 프로스 톤 데온 카이 데오스 엔 호 로고스“
상기 문장이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인데 이 문장은 작은 세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절구다
첫 번째 문장은 “엔 아르케 엔 호 로고스“ 두 번째 문장은 ”호 로고스 엔 프로스 톤 데온”
세 번째 마지막 문장은 “데오스 엔 호 로고스”라는 문장으로 각 문장은 “카이” 즉 우리글
그리고 라는 의미의 접속사로 이어진 문장들이다.
이해의 도움을 위하여 각각의 문장을 별개로 우리말로 번역을 해 보고 나중에 문장을 죽 이어
이해를 한다면 우리는 요한복음 1장 1절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음이다.
제 1 문장
처음 등장하는“엔”이란 단어는 우리글 안 이란 단어로 히브리어“빼”와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다
두 번째 등장하는 단어는 “아르케”란 단어로 히브리어 “레쉬트” 와 같은 의미의 단어로
시작이란 의미의 단어로 “엔 아르케” 는 창세기 1장 1절에 처음 등장하는 “빼레쉬트”가 70
인 역에서도“엔 아르케”로 번역이 된 점을 상기 한다면 우리는 “엔 아르케”란 단어가 우리말
태초라고 이해를 하면 된다. 세 번째 등장하는 단어도 “엔”인데 물론 발음은 비슷하나
처음단어는 안이란 의미라면 두 번째 “엔”은 있다. 즉 계시다. 란 의미의 단어로 뒤 따라 오는
“호 로고스“를 서술하는 서술어다.. 물론 “호 로고스”는 관사 “호” 와 말씀이란 “로고스”
란 단어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레마 언어” 라는 단어와는 의미는 동의어이지만 사용처는
분명하게 다른 단어인 것이다.
출신이시다. 당신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혈혈단신으로 상항침례신학대로 유학을 오신 후
달라스 침례 신대로 옮기셔서 박사학위 코스를 수학 하신분이다.. 몸은 비록 어느 일정 종파에
속해 있으나 말씀은 종파의 같고 다름을 가리지 않고 만인에게 평등하게 존재 하신다.
종교는 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노아님이 비록 공식이단 왕국사람이긴 하지만
그 믿음이 성경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몸이 어느 종파에 속해 있던 좀 자유스럽지 않을까 한다.
진실이란 존재하는 진실과 쓰여 진 진실과 전해진 진실이 있다 .. 이렇게 있는 진실들이
모두 같을 수도 있고 둘만 같고 하나가 다를 수도 있고 세 가지 진실이 모두 다를 수도 있지만
결국 존재하는 진실은 단 하나의 기준이 되는 진실이다.. 쓰여 진 진실과 전해진 진실이 얼 만큼
존재하는 진실에 부합하는가가 바로 믿음의 척도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왕국사람 노아에게
전해진 진실이 얼 만큼 존재하는 진실에 근사한가가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을 종종 보았다
나 산화비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존재하는 진실에 가장 근사한 전해지는 진실을 유추하기
위함임을 미리 밝히고 아래 글을 써 내려 가고 함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이미 몇 번 올리고 올린 내용의 반복이다.)
“Εν αρχη ην δ λογοs και δ λογοs ην προs τον θεον και θεοs ην δ λογοs”
“엔 아르케 엔 호 로고스 카이 호 로고스 엔 프로스 톤 데온 카이 데오스 엔 호 로고스“
상기 문장이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인데 이 문장은 작은 세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절구다
첫 번째 문장은 “엔 아르케 엔 호 로고스“ 두 번째 문장은 ”호 로고스 엔 프로스 톤 데온”
세 번째 마지막 문장은 “데오스 엔 호 로고스”라는 문장으로 각 문장은 “카이” 즉 우리글
그리고 라는 의미의 접속사로 이어진 문장들이다.
이해의 도움을 위하여 각각의 문장을 별개로 우리말로 번역을 해 보고 나중에 문장을 죽 이어
이해를 한다면 우리는 요한복음 1장 1절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음이다.
제 1 문장
처음 등장하는“엔”이란 단어는 우리글 안 이란 단어로 히브리어“빼”와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다
두 번째 등장하는 단어는 “아르케”란 단어로 히브리어 “레쉬트” 와 같은 의미의 단어로
시작이란 의미의 단어로 “엔 아르케” 는 창세기 1장 1절에 처음 등장하는 “빼레쉬트”가 70
인 역에서도“엔 아르케”로 번역이 된 점을 상기 한다면 우리는 “엔 아르케”란 단어가 우리말
태초라고 이해를 하면 된다. 세 번째 등장하는 단어도 “엔”인데 물론 발음은 비슷하나
처음단어는 안이란 의미라면 두 번째 “엔”은 있다. 즉 계시다. 란 의미의 단어로 뒤 따라 오는
“호 로고스“를 서술하는 서술어다.. 물론 “호 로고스”는 관사 “호” 와 말씀이란 “로고스”
란 단어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레마 언어” 라는 단어와는 의미는 동의어이지만 사용처는
분명하게 다른 단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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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1-07-2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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