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를 받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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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를 받는 자들
구약시대에 성경(개역)에 인용된 ‘저주’란 단어는 무려 163회나 인용된 반면
신약시대에는 단지 14회만 이용됐고, 특히 오늘 날 이 시대에 적용되는 ‘저주’란 단어는
단지 8회만 인용되어 있다.
이 ‘저주’란 단어는 조금씩 서로 다른 뜻이 있지만 ‘복’이란 말의 반대되는 뜻으로 보면
무난한 의미가 될 것이다.
특히 구약에서는 ‘육체와 물질’에 연관된 ‘복’과 ‘저주’를 말한다.
일반 적으로 인식된 저주받은 현상을 ‘사업이 망해서 가지 꼴이 되거나,
사고로 팔다리가 절단, 혹은 특정신체 부위에 기능이 상실되어 불행한 삶을 살거나,
출세한 자가 바닥으로 떨어진다거나, 불치병이 들거나, 후손들의 수가 없거나
혹은 적거나 불행해 졌다든지,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일찍 횡사했거나 등등의 현상’을
‘저주받은 자’로 상식화되어 있다.
특히 삼사 대의 후손을 보지 못하고(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죽은 것이
저주 중에 가장 험악한 저주라 하겠다.
옳다. 이런 것이 복이 될 수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당연히 ‘복’에 대한 인식은 저주와 반대되는 현상으로 보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성경엔 노야 홍수전에는 평균 수병이 912세였고, 병도 없이 잘 먹고 건강히 잘 살았을 터이니
지금의 우리들 생각 의 기준으로 보면 그들은 복을 많이 받은 자들이리라.
십계명으로 봐도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자기 땅에서 자기의 생명이 길 것이며
복을 누리리라’는 약속되어 있으니 ‘장수’는 ‘복중에 복’이 분명하다.
그런데 신약시대에서 ‘저주’는 구약시대의 저주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저주’로 나타난다.
아래 구절들을 읽어보면 ‘신약시대의 저주’는 육체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
‘사후에 처해지는 불행한 저주’를 말하고 있다.
고전 16:22 (예수 믿는 자들 중)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 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갈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말을 바꾸면 ‘모세율법을 다 지키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도록 규정된 모세 율법이다.
---------그래서 오늘 날도 유대인들이 율법을 다 지키지 않으니 당연히 저주 아래 있다.
---------그런데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 넘들이 ‘모세율법을 행하는 것이 옳게 하는 것이라’며
---------건축헌금이니, 십일조니, 안식일이니, 절기 지키는 짓 등등은 흉내를 내면서
---------‘그리스도의 율법’은 ‘지키기커녕 도리어 멸시하고, 거역하는 자들’은 저주 아래 있는 게 당연하다.)
히 6:8 만일 (예수 믿는 자들이)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계 22:3 (신의 나라에서는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벧후 2: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들이라
벧후 2:14의 ‘저주의 자식들’은
-----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자들’이다.
-----먹고, 자고, 싸고 그러다 ‘죽을 자들’이고, 영이 없어 ‘이미 죽은 자들’이다.
‘저주의 대상’은 ‘자연인’(거듭나지 못한 자)들이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ack(거듭난 자들 중에)‘그리스도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 그 대상이다.
특별히 조심스럽게 알아둬야 할 것은 “저주를 받을 지어다”라고 한 그 대상은
‘불신자들’(자연인)이 아니라 ‘예수 믿는다’는 교인들임을 염두에 두라.
자연인들에게는 ‘저주에 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이미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마지막은 automatic으로 저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마치 ‘죽은 넘’ 보고 ‘죽으라’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들(자연인)을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불신자들)
롬 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불신자)들을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이곳의 예수 믿는 척하는 넘들 중에 ‘어리석고, 무식한 넘’이 안티들에게 저주 하는 글을 올려서
안티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자기 스스로를 악하게 마드는 짓을 하고 있다.
자기 스스로도 저주아래 있는 넘이거든 ‘자기 스스로 축복받을 생각’은 못하면서
남을 저주하다니 --- 들에서 풀 뜯는 임신한 황소가 웃을 일이다.
욕은 해도 ‘저주는 말라’ 할 수 있거든 ‘축복하라’.
구태여 그들 앞에서 가증스럽게 ‘축복’하지 말고, 저주 아래서 벗어나기를 먼저하고,
그리고 골방에 들어가서 ‘축복하라’.
니넘이나 그들은 이미 ‘저주아래 있기 때문’이다.
‘믿는다’는 자들이여,
먼저, 스스로를 저주에서 구원하라.
===================== 끝 ====================
저주를 받는 자들.
구약시대에 성경(개역)에 인용된 ‘저주’란 단어는 무려 163회나 인용된 반면
신약시대에는 단지 14회만 이용됐다.
이 ‘저주’란 단어는 조금씩 서로 다른 뜻이 있지만 ‘복’이란 말의 반대되는 뜻으로 보면
무난한 의미가 될 것이다.
특히 구약에서는 ‘육체와 물질’에 연관된 ‘복’과 ‘저주’를 말한다.
일반 적으로 인식된 저주받은 현상을 ‘사업이 망해서 가지 꼴이 되거나,
사고로 팔다리가 절단, 혹은 특정신체 부위에 기능이 상실되어 불행한 삶을 살거나,
출세한 자가 바닥으로 떨어진다거나, 불치병이 들거나, 후손들의 수가 없거나
혹은 적거나 불행해 졌다든지,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일찍 횡사했거나 등등의 현상’을
‘저주받은 자’로 상식화되어 있다.
특히 삼사 대의 후손을 보지 못하고(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죽은 것이
저주 중에 가장 험악한 저주라 하겠다.
옳다. 이런 것이 복이 될 수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당연히 ‘복’에 대한 인식은 저주와 반대되는 현상으로 보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성경엔 노야 홍수전에는 평균 수병이 912세였고, 병도 없이 잘 먹고 건강히 잘 살았을 터이니
지금의 우리들 생각 의 기준으로 보면 그들은 복을 많이 받은 자들이리라.
십계명으로 봐도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자기 땅에서 자기의 생명이 길 것이며
복을 누리리라’는 약속되어 있으니 ‘장수’는 ‘복중에 복’이 분명하다.
그런데 신약시대에서 ‘저주’는 구약시대의 저주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저주’로 나타난다.
아래 구절들을 읽어보면 ‘신약시대의 저주’는 육체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
‘사후에 처해지는 불행한 저주’를 말하고 있다.
고전 16:22 (예수 믿는 자들 중)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 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갈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말을 바꾸면 ‘모세율법을 다 지키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도록 규정된 모세 율법이다.
그래서 오늘 날도 유대인들이 율법을 다 지키지 않으니 당연히 저주 아래 있다.
그런데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 넘들이 ‘모세율법을 행하는 것이 옳게 하는 것이라’며
건축헌금이니, 십일조니, 안식일이니, 절기 지키는 짓 등등은 흉내를 내면서
‘그리스도의 율법’은 ‘지키기커녕 도리어 멸시하고, 거역하는 자들’은 저주 아래 있는 게 당연하다.)
히 6: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계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벧후 2: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벧후 2:14의 ‘저주의 자식’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자들’이다.
먹고, 자고, 싸고 그러다 ‘죽을 자들’이고, 영이 없어 ‘이미 죽은 자들’이다.
‘저주’의 대상은 ‘자연인’(거듭나지 못한 자)들이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거듭난 자들 중에)‘그리스도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 그 대상이다.
특별히 조심스럽게 알아둬야 할 것은 “저주를 받을 지어다”라고 한 그 대상은
‘불신자들’(자연인)이 아니라 ‘예수 믿는다’는 교인들임을 염두에 두라.
자연인들에게는 ‘저주에 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이미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마지막은 automatic으로 저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마치 ‘죽은 넘’ 보고 ‘죽으라’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들(불신자들)을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
롬 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불신자)들을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이곳의 예수 믿는 척하는 넘들 중에 ‘어리석고, 무식한 넘’이 안티들에게 저주 하는 글을 올려서
안티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자기 스스로를 악하게 마드는 짓을 하고 있다.
자기 스스로도 저주아래 있는 넘이거든 ‘자기 스스로 축복받을 생각’은 못하면서
남을 저주하다니 --- 들에서 풀 뜯는 임신한 황소가 웃을 일이다.
욕은 해도 ‘저주는 말라’ 할 수 있거든 ‘축복하라’.
구태여 그들 앞에서 가증스럽게 ‘축복’하지 말고, 저주 아래서 벗어나기를 먼저하고,
그리고 골방에 들어가서 ‘축복하라’.
니넘이나 그들은 이미 ‘저주아래 있기 때문’이다.
‘믿는다’는 자들이여,
먼저, 스스로를 저주에서 구원하라.
--------------저주를 받는 자들
구약시대에 성경(개역)에 인용된 ‘저주’란 단어는 무려 163회나 인용된 반면
신약시대에는 단지 14회만 이용됐고, 특히 오늘 날 이 시대에 적용되는 ‘저주’란 단어는
단지 8회만 인용되어 있다.
이 ‘저주’란 단어는 조금씩 서로 다른 뜻이 있지만 ‘복’이란 말의 반대되는 뜻으로 보면
무난한 의미가 될 것이다.
특히 구약에서는 ‘육체와 물질’에 연관된 ‘복’과 ‘저주’를 말한다.
일반 적으로 인식된 저주받은 현상을 ‘사업이 망해서 가지 꼴이 되거나,
사고로 팔다리가 절단, 혹은 특정신체 부위에 기능이 상실되어 불행한 삶을 살거나,
출세한 자가 바닥으로 떨어진다거나, 불치병이 들거나, 후손들의 수가 없거나
혹은 적거나 불행해 졌다든지,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일찍 횡사했거나 등등의 현상’을
‘저주받은 자’로 상식화되어 있다.
특히 삼사 대의 후손을 보지 못하고(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죽은 것이
저주 중에 가장 험악한 저주라 하겠다.
옳다. 이런 것이 복이 될 수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당연히 ‘복’에 대한 인식은 저주와 반대되는 현상으로 보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성경엔 노야 홍수전에는 평균 수병이 912세였고, 병도 없이 잘 먹고 건강히 잘 살았을 터이니
지금의 우리들 생각 의 기준으로 보면 그들은 복을 많이 받은 자들이리라.
십계명으로 봐도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자기 땅에서 자기의 생명이 길 것이며
복을 누리리라’는 약속되어 있으니 ‘장수’는 ‘복중에 복’이 분명하다.
그런데 신약시대에서 ‘저주’는 구약시대의 저주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저주’로 나타난다.
아래 구절들을 읽어보면 ‘신약시대의 저주’는 육체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
‘사후에 처해지는 불행한 저주’를 말하고 있다.
고전 16:22 (예수 믿는 자들 중)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 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갈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말을 바꾸면 ‘모세율법을 다 지키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도록 규정된 모세 율법이다.
---------그래서 오늘 날도 유대인들이 율법을 다 지키지 않으니 당연히 저주 아래 있다.
---------그런데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 넘들이 ‘모세율법을 행하는 것이 옳게 하는 것이라’며
---------건축헌금이니, 십일조니, 안식일이니, 절기 지키는 짓 등등은 흉내를 내면서
---------‘그리스도의 율법’은 ‘지키기커녕 도리어 멸시하고, 거역하는 자들’은 저주 아래 있는 게 당연하다.)
히 6:8 만일 (예수 믿는 자들이)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계 22:3 (신의 나라에서는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벧후 2: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들이라
벧후 2:14의 ‘저주의 자식들’은
-----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자들’이다.
-----먹고, 자고, 싸고 그러다 ‘죽을 자들’이고, 영이 없어 ‘이미 죽은 자들’이다.
‘저주의 대상’은 ‘자연인’(거듭나지 못한 자)들이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ack(거듭난 자들 중에)‘그리스도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 그 대상이다.
특별히 조심스럽게 알아둬야 할 것은 “저주를 받을 지어다”라고 한 그 대상은
‘불신자들’(자연인)이 아니라 ‘예수 믿는다’는 교인들임을 염두에 두라.
자연인들에게는 ‘저주에 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이미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마지막은 automatic으로 저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마치 ‘죽은 넘’ 보고 ‘죽으라’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들(자연인)을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불신자들)
롬 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불신자)들을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이곳의 예수 믿는 척하는 넘들 중에 ‘어리석고, 무식한 넘’이 안티들에게 저주 하는 글을 올려서
안티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자기 스스로를 악하게 마드는 짓을 하고 있다.
자기 스스로도 저주아래 있는 넘이거든 ‘자기 스스로 축복받을 생각’은 못하면서
남을 저주하다니 --- 들에서 풀 뜯는 임신한 황소가 웃을 일이다.
욕은 해도 ‘저주는 말라’ 할 수 있거든 ‘축복하라’.
구태여 그들 앞에서 가증스럽게 ‘축복’하지 말고, 저주 아래서 벗어나기를 먼저하고,
그리고 골방에 들어가서 ‘축복하라’.
니넘이나 그들은 이미 ‘저주아래 있기 때문’이다.
‘믿는다’는 자들이여,
먼저, 스스로를 저주에서 구원하라.
===================== 끝 ====================
저주를 받는 자들.
구약시대에 성경(개역)에 인용된 ‘저주’란 단어는 무려 163회나 인용된 반면
신약시대에는 단지 14회만 이용됐다.
이 ‘저주’란 단어는 조금씩 서로 다른 뜻이 있지만 ‘복’이란 말의 반대되는 뜻으로 보면
무난한 의미가 될 것이다.
특히 구약에서는 ‘육체와 물질’에 연관된 ‘복’과 ‘저주’를 말한다.
일반 적으로 인식된 저주받은 현상을 ‘사업이 망해서 가지 꼴이 되거나,
사고로 팔다리가 절단, 혹은 특정신체 부위에 기능이 상실되어 불행한 삶을 살거나,
출세한 자가 바닥으로 떨어진다거나, 불치병이 들거나, 후손들의 수가 없거나
혹은 적거나 불행해 졌다든지,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일찍 횡사했거나 등등의 현상’을
‘저주받은 자’로 상식화되어 있다.
특히 삼사 대의 후손을 보지 못하고(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죽은 것이
저주 중에 가장 험악한 저주라 하겠다.
옳다. 이런 것이 복이 될 수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당연히 ‘복’에 대한 인식은 저주와 반대되는 현상으로 보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성경엔 노야 홍수전에는 평균 수병이 912세였고, 병도 없이 잘 먹고 건강히 잘 살았을 터이니
지금의 우리들 생각 의 기준으로 보면 그들은 복을 많이 받은 자들이리라.
십계명으로 봐도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자기 땅에서 자기의 생명이 길 것이며
복을 누리리라’는 약속되어 있으니 ‘장수’는 ‘복중에 복’이 분명하다.
그런데 신약시대에서 ‘저주’는 구약시대의 저주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저주’로 나타난다.
아래 구절들을 읽어보면 ‘신약시대의 저주’는 육체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
‘사후에 처해지는 불행한 저주’를 말하고 있다.
고전 16:22 (예수 믿는 자들 중)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 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갈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말을 바꾸면 ‘모세율법을 다 지키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도록 규정된 모세 율법이다.
그래서 오늘 날도 유대인들이 율법을 다 지키지 않으니 당연히 저주 아래 있다.
그런데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 넘들이 ‘모세율법을 행하는 것이 옳게 하는 것이라’며
건축헌금이니, 십일조니, 안식일이니, 절기 지키는 짓 등등은 흉내를 내면서
‘그리스도의 율법’은 ‘지키기커녕 도리어 멸시하고, 거역하는 자들’은 저주 아래 있는 게 당연하다.)
히 6: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계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벧후 2: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벧후 2:14의 ‘저주의 자식’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자들’이다.
먹고, 자고, 싸고 그러다 ‘죽을 자들’이고, 영이 없어 ‘이미 죽은 자들’이다.
‘저주’의 대상은 ‘자연인’(거듭나지 못한 자)들이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거듭난 자들 중에)‘그리스도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 그 대상이다.
특별히 조심스럽게 알아둬야 할 것은 “저주를 받을 지어다”라고 한 그 대상은
‘불신자들’(자연인)이 아니라 ‘예수 믿는다’는 교인들임을 염두에 두라.
자연인들에게는 ‘저주에 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이미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마지막은 automatic으로 저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마치 ‘죽은 넘’ 보고 ‘죽으라’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들(불신자들)을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
롬 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불신자)들을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이곳의 예수 믿는 척하는 넘들 중에 ‘어리석고, 무식한 넘’이 안티들에게 저주 하는 글을 올려서
안티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자기 스스로를 악하게 마드는 짓을 하고 있다.
자기 스스로도 저주아래 있는 넘이거든 ‘자기 스스로 축복받을 생각’은 못하면서
남을 저주하다니 --- 들에서 풀 뜯는 임신한 황소가 웃을 일이다.
욕은 해도 ‘저주는 말라’ 할 수 있거든 ‘축복하라’.
구태여 그들 앞에서 가증스럽게 ‘축복’하지 말고, 저주 아래서 벗어나기를 먼저하고,
그리고 골방에 들어가서 ‘축복하라’.
니넘이나 그들은 이미 ‘저주아래 있기 때문’이다.
‘믿는다’는 자들이여,
먼저, 스스로를 저주에서 구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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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1-08-2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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