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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3-02-03 힐러리, 여자 나이 65 세
"어떻게 해서 4명 씩이나 죽도록 내버려두었나?" ... "우리로서도 최선을 다했다"... "최선은 무슨 최선, 공격을 당하기 며칠 전부터 계속 지원요청이 있지않았나?" "자세한 내용은 보고 받지 못해서 잘 몰랐었다." "감추려하지 말라. 이건 전적으로 당신 책임이야, 당신의 실수로 죽은거야- -당신을 Fire 시켰었어야지" "책임은 내가 지겠다. 내 잘못이다" 이미 4 명의 목숨은 잃었다. 일단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당시, 어떤 상황에서 당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거리로 나갔다가 당했는지 , 아니면 테러리스트들이 덮쳐서 죽였는지. 이것을 놓고 지금 이 얘기, 저 얘기 꺼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사건 수습 후, 앞으로의 방침에 대해서 논의해야 하는것이 지금으로서는 더 급선무가 아닌가?".... 힐러리 클린턴 제67대 미 국무장관.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두 공화당 의원들과 격론을 벌였다. 장장 5 시간이나. 바로 며칠전 머리에 생긴 가벼운 뇌진탕으로 쉬고 있다가 청문회에 출두, 벼르고 있던 공화당 의원 들로부터 지난 9월 [리비아 밴가지 주재 4명의 대사 포함 미 외교관의 살인 사건]에 대한 집중 공격을 받았다. 공화당 의원들의 집중포화는 포연만 날린채,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좐 매케인을 포함 공화당 대부들을 , 그녀 홀로 맞서 대적한 것이다. 그것도 이제 그만, 며칠 지나면 장관직에서 물러난다. 자의로. 1947 년 10 월 시카고 출생. 돌아보면, 참 열심히도 살았다. 고난도 많았고.... 부유한 집, 감리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아이들 그리고 흑인들도 많이 도왔고 또한 그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물론, 오바마와 한 판 붙었을 때는 다 자기 핏줄을 찾아갔지만.. "후회는 없다." 왜? "나는 후회를 모르니까(?)"... 웨슬리 대학교 개교이래 처음으로 외부인사를 제치고 재학생 중에서 졸업연사를 맡았고, 그 과감한 내용에 매이져 신문들은 찬사를 보냈었다. 졸업 후, 그녀는 알래스카로 직행 캔 공장에 취직 생선을 짜르다가 열악한 작업환경에 분노, 업주를 고발했고, 이에 맞선 업주는 공장문을 닫아버렸다. 1970년 예일 법대로 진학, 같은 클래스에서 빌 클린턴을 만나게 된다. 운명적인 둘의 만남! 힐러리가 방학동안에 오클랜드의 로-펌 (Treuhaft, Walker, and Burnstein)에서 섬머 인턴쉽 하는것을 알고 , 일부러 찾아온 빌 클린턴, 이 때부터 둘은 같이 지내게 된다. 졸업 후 빌이 청혼을 했지만 힐러리는 "노"라고 대답, 둘은 각기 다른 길로 떠나게 된다. 워싱턴으로 진출한 그녀, 1974 년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련 미 하원 법사위원회 소속 탄핵조사단에서 일하게 된다. 빌 클린턴이 다시 청혼을 시도하나, 역시 대답은 노. 그러던 차, 그 녀가 DC에서 변호사 시험을 치르나 낙방하여 상심하고 있을 때 빌의 급전을 받고 알칸사로 향한다. 무난히 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그 녀, 결국은 빌 클린턴과 1975 년 10월에 결혼하게 된다. "Get two for the price of one", 빌 클린턴이 즐겨쓰는 말이다.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도 , 백악관 최초로 영부인에게 따로 집무실을 제공했다. 바로 힐러리가 대통령의 파트너로 입각한 것. 즉, 한 명의 대통령을 뽑았지만 2 명(?)의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사실. 전통적 탑-다운 관계가 아니라 일 대 일의 파트너쉽이 이루어진 것이다. 힐러리는, 곧 민생의 큰 관심을 끌었던 정책 , "전국민 의료 유니버설 케어" 입법을 추진해 나갔다. 힐러리의 독주체제에 불만을 품고있던 공화당 보수세력은 그 녀와 정면 충돌, 그 입법정책을 무산화 시키고 말았다. 권력의 정상에서 허물어진 그 녀의 민생정책 실현의 꿈, 곧 이어 화이트워터 부동산 투기사건이 파헤쳐 졌고, 그 조사중에 일어난 백악관 법률자문 빈스 포스터의 권총자살 사건, -그는 한 때 알칸사 로-즈 로펌 파트너로 일했던 막역한 친구. 빌에게 불어닥친 아칸사 주지사 시절의 섹스 스캔들. 재임 2 기 말에 화려하게 (?) 끝내주었던 모니카 르윈스키 백악관 인턴과의 스캔들; "했다 안했다. 그 증거가 스커트에 묻어있었다"등등. 발뺄수 없는 절명의 순간에서도 빌 클린턴은 하지않았다고 주장, 결국 위증죄로 탄핵소추에까지 회부되었다. 매일 눈뜨면, TV 화면을 꽉 채우는 남편의 "복잡한 여자관계". 속수 무책. 분하다. 어지럽다. 캔 스타 독립검사 보수주의자들의 수 년에 걸친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 클린턴은 마지막 그 자리만은 요행이도 지킬수가 있었다. 그 와중에 과연, 몸과 맘, 무너지지 않고 어떻게 지킬수가 있었을까?.. 그 것으로 끝났것인가? 아니, 이제 2 막이 시작되었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1 막의 주연이 빌 이었다면, 2 막은 당연히 힐러리에게 갈 사. 대통령 퇴임 후 그들은 거처를 뉴욕 주 고급 주택단지 채파쿠아로 옮긴다.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언 상원의원의 은퇴 후 빈자리를 겨냥, 힐러리는 2001년 미 상원에 도전, 무사히 의석을 획득했다. 그리고는 연임 선거에서도 67 퍼센트의 지지로 당선, 바야흐로 대권에 도전할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부쉬 정권에 지친 미 국민들 ,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바로 그 변화에 부응할 인물로 스스로 자처. 민주당 경선에서만 이기면 대권은 이미 자기 손안에 들어온 것이라고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 시카고 출신 초선 상원의원 오바마 (당시 47세)가 대권을 노리고 있는 줄은 몰랐었지. 그가 나선다 해도 충분히 맞설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했었지. 그러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자신의 인기, 경력, 남편의 후광이 역 효과를 낼줄은 "진정 난 몰랐을거다." 마침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그 것도 TV 앞에서. 동정표도 있었지만 전세를 만회할 수는 없었다고 판단, 오바마의 손을 들어주었다. 열심히 들어주었다. 오바마의 승리, 그 기쁨의 와중에서 걸려온 전화; "국무성을 맡아달라. 나는 지금 국내 경제가 엉망이라 나라 바깥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오바마의 제의를 선뜻 수락했다. 2009 년 미 국무장관 취임. 역대 장관중 가장 많은 국가 112 개 국 방문, 도합 956,000 마일. 아랍권 수 개국 튜니시아, 이집트, 리비아 독재정권 몰락, 1955 년이래 최초로 버마와 수교. 많은 일을 해내었다. 유럽,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동남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과 외교관계에 있어 "Smart Power"- 군사적 파워와 문화 물질 지원을 통한 부드러운 강공책-을 도입 평화적 공존의 기본을 이루는데 공을 세웠다. 리비아 밴가지 외교관 테러사건 등으로 욕도 많이 먹었지만. 첼시도 곁을 떠나갔고 , 남편, 그 인간은 아직도 이 곳 저 곳에 얼굴을 내민다. 그래도 그는 나의 영원한 파트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다 해보았다, 그 것 한 가지만 빼고. 다시 도전할 것인가? 아니면, 아니면? .... 한참 생각을 해본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 "네 빛을 발하라" 생각해보라 "당신에게 일어난 그 모든 일 들, 왜, 그 일들이 당신에게 일어났는지를"... 힐러리 클린턴. 여자 나이 65 세, 참 좋은 때다! 정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 오랫동안 속으로만 쌓여온 것들. 아낌없이 태울 수 있는 그 순간. 다시 불사를 수 있을 것이다. "빛을, 네 빛을 발하라." 힐러리, (그리고 영자씨) 운명의 기로, "비탈길에 서다". 이제 65 세, 당신의 때가 가까이 다가왔다.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깃발을 꼿아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한국시사 (전문가 그룹)
2012-12-18 억만장자와 결혼(?) 그 비결은?
억만장자와 결혼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이제 그 부를 같이 누릴 수 있는 상대방을 구할 때 그들이 결혼 배우자로부터 제일 먼저 요구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물론 미모를 보겠지. 뛰어난 아름다움, 그리고 그녀만이 풍길 수 있는 매력, 뭔가 사람의 마음과 시선을 끄는 몸짓, 지성적인 여자, 풍부한 지적 능력을 배경으로 남편에게 논리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 소위, 미모에다가 재능을 겸비하고 거기다가 지성까지 갖춘다면 과연 억만장자의 결혼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일까? 시대가 바뀜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도, 욕망도 변하게 된다. 예전의 재산가들은 그칠 줄 모르는 명예욕, 소유욕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즉 자신의 ‘부인을 승리자의 전리품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한 재산을 이룬뒤, 이미 높이 올라선 자존심을 만족시킬 만큼 경국지색의 빼어난 미모와 매력(?)을 가진 여자를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경제력뿐만 아니라 여자선택에 있어서도 나름대로 최고의 승리자임을 뽐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고 있다. 포브스 매가진의 한 칼럼에 의하면 요즘의 억만장자들은 자신들의 결혼배우자를 동등한 입장의 파트너로서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승리의 전리품으로서, 자신의 부를 드러내는 방편으로서 부에 못지 않는 최고의 미인을 구하려 하기보다는 ,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능력, 또 갈증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는 동반자를 구한다는 것이다. 미모를 가진 여인도 좋지만 그 보다는‘브레인’ (AKA: 브레인 파워)를 소유한 상대자를 더 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자신이 가진 수십억 달러의 엄청난 부와는 상관없이 본인의 정신적 능력과 발란스를 유지하며 그 갈증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는 배우자로 현재의 부인 앤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 물론 앤도 당연히 자신의 선택권을 행사했을 것이다.- 앤은 예일대학 출신으로 메디칼 분야 분석가,현재도 자신의 소유인 바이오 테크 회사를 운영할 정도로 뛰어난 ‘미모’가 아닌 뛰어난 '브레인’, 혹은 ‘브레인 파워’를 가지고 있다. 다른 한명의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도 부인 루시 사우스워스와 결혼했는데, 그녀도 뚜렷한 ‘브레인 파워’의 소유자로 스탠포드 대학에서 생명의약 분야의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한가지 더 확실한 예를 들자면 빌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의 부인 멀린다 게이츠*1를 들 수가 있다. 달라스에서 캐톨릭 하이스쿨을 다닐 때부터 이미 그녀의 브레인 파워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새로운 단어를 10개 이상 외우며 고전을 즐겨 읽고 음악 쪽에도 관심을 가져 풍부한 감성을 키워왔다고 담당교사는 밝혔다. 또한 자아단련이 강해 스스로 계획한 일은 꼭 실행으로 옮기는 정신적 집념도 강했다고 한다. 듀크 대학으로 진학한 그녀는 동 대학에서 MBA 과정도 탑 우등생으로 마치게 된다. 그 후 마이크로 소프트에 입사해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시니어 매니지먼트 포지션으로 승진하게 된다. 80년 말 뉴욕에서 열린 마이크로 소프트 프레스 이벤트에서 둘은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빌 게이츠는 첫 인상에서 그녀가 ‘보통여자’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녀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게이츠는 그녀에게 만나줄 것을 수 차례나 제의했지만 그녀는 번번히 핑계를 대어 그와 만나는 것을 피했었다. 당시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고백한 내용을 보면 그녀는 ‘자신의 상사와 사귀어도 될 것인가?’ 라는 의문에 빠져 빌 게이츠가 가진 엄청난 부에는 신경 쓸 틈도(?)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녀의 브레인 파워는 그녀로 하여금 겉으로 드러난 물질적 부 보다는 그 사람 속에 들어있는 알맹이를 파악하는데 더 중점을 두도록 제안을 했을지도 모를 것이다. 빌 게이츠의 끈질긴 공세에 빠져 둘은 결국 처음 만난 지 7년 후에 결혼하게 된다. – 물론 멀린다도 자신의 배우자 선택권리를 행사했을 것이다. 미국 컴퓨터 테크 분야 정상에 선 일명 ‘교만한 사나이’ 빌 게이츠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객관적인 평가는 어렵지만 멀린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끌만큼 그러한 미모의 소유자는 아닌 것 같다. 몸에 흐르는 곡선도 그녀가 팔등신의 소유자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무엇일까?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멀린다가 가진 ‘브레인’, 그 브레인 파워가 아닐까? 테크 분야의 천재인 게이츠와 당당히 맞서서 정신적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바로 그 브레인 파워를 멀린다는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브레인 파워를 제일 먼저 입증하는 것은 그녀가 빌 게이츠 그리고 시아버지 윌리엄 게이츠와 함께 설립한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파운데이션’*2 인 것이다. ‘게이츠 재단’은 재단기금으로 약 380억 달러(2011 년 기준)의 자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재단은 2000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약 250억 달러 이상의 기금을 주로 인류 건강, 가난퇴치, 문맹퇴지의 목적으로 배분해 왔다. 2006년 당시 워렌 버핏으로부터 약 320억 달러의 기금 제공을 약속 받은 동 재단은 세계최고의 파운데이션으로 특히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오지로 찾아 들어가 에이즈 등 각종 질병, 문맹, 가난퇴치 등 가장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불과 생긴지 채 12 년, 그 동안에 자신들의 소유재산 240억 달러를 종자돈으로 활용, 현재까지 250억 달러의 자금을 배분한 것이다. 이미 은퇴(?) 선언을 하긴 했지만 빌 게이츠는 그 동안 계속해서 마이크로 소프트 쪽에 신경을 써왔고 , 그의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 시니어, 유수 로펌의 파트너도 은퇴했지만 게이츠 재단의 실질상 운영은 Co-Chair 멀린다가 거의 다 전적으로 해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억만장자 (혹은 악동?) 빌 게이츠가 멀린다에게 마음을 사로잡힌 것은 멀린다가 가진 브레인 파워, 또한 그 브레인 능력을 때로는 양보할 수도 있는 여유, 감성적 인텔리젼스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똑똑해도 그 똑똑함을 다스릴 수 있는 정신적 뒷받침, 따뜻한 애정이 없다면 그 똑똑함은 오직 화만 불러 일으킬지도 모른다. 억만장자, 아니 백만장자와 결혼하고 싶은가? 우선 브레인 파워의 베이스부터 키울 것을 권하고 싶다. 먼저, 알 것은 알아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간직해온 지혜의 보고가 책 선반 위에 가득히 쌓여있다. 먼지를 털고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읽어나갈 일이다. 지이드, 햇세, 황순원, 말로, 도스토예프스키, 동인, 이청준, 투르게네프, 그 끝없는 창작의 세계....그리고 바로 손 끝에 뉴욕 타임즈, 와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뉴요커, 어틀랜틱등이 당신을 기다리고있다. 가끔 지치면 두 발을 쭉 뻗고 편안한 자세로 몸을 낮춘 후 비발디의 사계 – 봄부터 슈벨트의 겨울 나그네 , 여름바다의 가고파, 그리고 고독에 휩싸인 라흐마니노프도 찾아가 볼 일이다. *1. Melinda Gates: Born on 8/15/1964 Dallas, Texas Co-Chair of the Foundation Three Children *2. 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founded in 2000. Seattle, Washington www: gatesfoundation.org wonyi54@gmail.com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2-12-13 [이원창 컬럼]미 국방비 매년 6천억불 지출
미 상원은 지난 12월 4일 , 공화 민주 양당의 만장 일치로 신년도 국방예산 6천 3백억 달러를 통과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 신규 예산안에 서명할지는 모르지만, 미국은 통상적으로 국방비에 매 년 약 6 천 억 달러이상 지출하고 있다고 최근 뉴욕타임즈는 보도했다. 거기에 CIA, 에너지 디파트먼트 , 그리고 재향군인회 예산 까지 포함하면 년 평균 약 9천 6백 억달러를 국방및 재향군인 후생에 지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지난 한 해 동안 전체 3조 8 천 억 달러의 지출을 기록했고, 이 중 국방 후생 비용이 그 액수의 약 4분의 1을 차지했다. 한국의 국가 예산 2천 6백억 달러 (2010 년 기준, 미국무성 자료)와 비교하면 미 국방부 예산 만으로도 한국 전체 국가 예산의 두 배 이상을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그 뿐만 아니라 . 이러한 국방비 지출은 지구 상 모든 국가의 국방비 예산의 40 퍼센트나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다음으로 , 국방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14 개 국가의 전체 국방비를 다 합친 것과 맞먹는 액수이다. 그나마 이 들 국가는 대부분 미국의 우호국으로, 상대적으로 볼 때 적성국들은 국방비 지출에 훨씬 적은 액수를 쓰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엄청난 돈을 국방비에 지출하고 있는가?... 뿐만 아니라 일부 강경파 보수주의자들은 재정 적자를 벗어나기 위해 소시얼 시큐리티, 메디케어 예산은 줄여야 된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국방예산은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히 펼치고 있다. 알다시피 미국은 현재 심각한 재정 적자 상황에 처해있다. 오는 년 말까지 미 의회와 정부 , 즉 공화당 주도 하원과 오바마 정부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재정 절벽: Fiscal Ciff"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게된다. 즉, 부쉬 정권의 "감세 조치 철회"와 함께 국방예산의 대규모 삭감 , 4천 9 백억 달러도 이 "재정 절벽"에 깊속히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생전에 행한 연설에서도 밝혔듯이 군수산업의 세력은 미 정치 경제 국방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힘에 의한 파워 행사를 주장하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은 그 들이 늘상 외쳐온 "재정 적자" 삭감의 원칙을 국방예산에는 적용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국방예산을 증액해서 예전 미국이 향유했던 "강력한 힘의 구사"를 다시 회복할 것을 외치고 있다. 즉, 군수산업과 미 의회 강경파 보수주의자들과의 긴밀한 관계가 국방예산의 증가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비교적 군수 산업 세력과 '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오바마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 당시 재정 흑자 달성에 깊숙히 관여했던 전 CIA 국장 출신 리온 파네타 국방장관에게 일찌기 국방예산 삭감 연구를 지시 했었다 . 그 지시에 따라 파네타 장관은 재정 절벽 위기와 상관없이 이미 '십 년에 걸친 4천 8백억 달러의 국방 예산 삭감'을 준비한 바 있다. 국방예산 삭감은 실직자등,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군수산업과 강경파 의원들, 비호세력, 로비스트등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 현재 당면한 재정 절벽 위기를 논하는 자리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의 타협카드로 쓰여질 가능성도 시사되고 있다. 미 국방 관련 부처에서는 서로가 더 많은 예산을 가지기 위하여 심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 육 해 공군 그리고 해병대는 각기 자체 내의 항공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 항공모함도 자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 규모가 제일 작은 해병대도 자체 내에 엄청난 탱크 기갑 부대등 파이팅 파워를 가지고 있어 영국군 전체의 규모보다 더 큰 전투 유지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중복되는 각 군의 전투력 보유에 대해 강경파의 기수 였던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도 미 국방예산의 효과적인 사용과 절제를 주장했었다 사실 상 매 년 국방비의 8 퍼센트 , 약 4 백억 달러를 줄일 수 있다면 , 같은 액수 만큼 미 연방 재정 적자를 줄이는 효과를 보게된다. 전 합참의장 마이크 멀런이 제의한대로 "미국의 안전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국가 부채"라고 볼 때 국방 예산의 삭감은 부채의 삭감으로 이어져 미 국가 재정과 안전을 더 튼튼하게 해주며 동시에 평화로의 접근을 더욱 용이하게 해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 글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된 전 타임스 주필-칼럼니스트 빌 켈러의 글과 위키피디아등을 참고로 해서 쓰여졌다. Wonyi54@icloud.com
한국시사 (전문가 그룹)
2012-12-11 김정은은 선대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패를 되풀이하지 마라
2012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한반도 정세가 다시 한 번 출렁이고 있다. 작년 이맘때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일 급사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더니, 이번에는 북한이 10~22일 사이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다고 예고했다. 지난 1일 북한의 우주공간기술위원회는 이른바 지구관측위성 ‘광명성 3호’의 2호기를 8개월 만에 다시 쏘아올린다고 발표하였다. 지난 4월 13일 실패한 장거리미사일을 기술적으로 보완해 재발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번에 또다시 장거리미사일을 쏘려는 이유가 북한주민 결속용이라느니 대남 선거개입용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는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선전하지 않고 있는데 지난 4월의 발사 실패경험 때문에 이번에는 성공해야만 보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북풍’을 일으켜 한국 대선에 개입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엔 효과도 의문시되고 북한측 태도도 어쩐지 어설프다. 북한의 숨은 저의는 인공위성이 아니라 핵탄두 운반을 위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실험인 것이다. 북한은 이번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스스로 ‘김정일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북한 당국이 김정일의 3대 업적 가운데 하나로 ‘핵무기와 인공위성’를 꼽았는데 2차례의 핵실험 실시와 달리 정작 그들이 말하는 ‘인공위성’ 발사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당초 북한은 김일성의 100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장거리미사일을 쐈으나 실패하자, 이번에 김정일 사망 1주기를 맞이하여 또다시 시도하는 것이다. 북한이 이 시기에 ‘김정일 유훈의 관철’을 내세우며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것은 과거 김정일이 김일성의 3년 상을 치른다며 ‘유훈통치’를 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당시 김정일이 ‘죽은 김일성’의 권위에 매달려 북한체제의 최대 위기였던 ‘고난의 행군’ 시기를 넘겼던 것을 본 딴 것으로 보인다. 또다시 ‘죽은 김정일’의 유훈을 앞세우는 것은 그만큼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난 4월 공식적으로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뒤 첫 번째 강조한 것이 ‘인민생활의 향상’이었다. 하지만 8개월이 다되도록 인민생활은 나아진 것이 없어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태이다. 또 군의 경제기득권을 환수했지만 북한 군부의 불만이 목에 차있고, 나름대로 경제개혁조치를 담았다던 ‘6.28 방침’도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 1년치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8억 5천만 달러를 들여 미사일을 발사한다는 것은 김정은 체제하에서 주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금년 들어 중국으로부터 폭동진압 장비들을 대량 수입했고, 내부소요 사태의 발생에 대비해 대대적인 불순분자 색출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김정은 관저와 별장을 비롯한 전용시설 30여 곳에 장갑차 100여 대를 배치하고 경호원들의 무장도 권총 같은 경무장에서 기관단총 같은 중무장으로 강화되었다고 한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보여준 변화된 모습 때문에, 한 때 북한주민들이 기대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북한주민들은 ‘인민생활의 향상’이라는 구호가 헛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북한주민들이 가졌던 일말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뀔 조짐이 속속 드러나자 위기감을 느낀 북한당국이 ‘김정일 유훈의 관철’을 내세워 장거리 미사일의 발사를 강행해 상황을 돌파해 보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버지 김정일의 무모한 핵무기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북한체제를 구하기는 커녕 국력과 재원을 탕진하여 북한주민의 생활을 도탄에 빠뜨리고 체제위기를 더욱 심화시켰을 뿐이다. 모처럼 관계가 회복된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강력하게 경고하면서 반대할 뿐만 아니라, 재개된지 얼마 안 된 북·일 회담도 벌써 차질을 빚고 있다. 재선된 오바마 미 대통령이 보낸 미얀마발 대북 메시지도 무산될 공산이 크다. 이처럼 아버지가 물려준 ‘핵무기와 인공위성’ 유산은 김정은 체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위기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국제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즉시 발사 준비를 중단해야 한다. 북한의 김정은은 선대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을 결코 범해서는 안된다. 조 성 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2-12-05 지나친 자신감은
지난 11월 말 일어난 큰 자동차 사고, 기억하세요? 한 인디언계 가족이 Black Friday 날 길로이로 샤핑을 갔다가, 그 다음날 새벽 돌아오는 길에 101 프리웨이 선 상 팔로 알토 근처에서 큰 충돌사고를 일으킨 사건 말입니다. 한 밤의 빅 세일 샤핑을 마치고 돌아오다 프리웨이 숄더, 즉 갓길에 주차되어 있는 CHP 고속 순찰대의 차를 뒤에서 받았지요. 그 아버지가 몰던 렉서스 SUV는 토탈되고 딸 넷 중 둘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부인은 즉시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경찰 보고에 의하면, 이른 새벽 전 가족 6 명을 태운 SUV를 아버지가 몰다가 지쳐 졸았던지 , 프리웨이 옆에 서있던 차의 라이트가 켜져있으니까 달리고 있는 것으로 착각 그대로 가다가 들이받았다고 합니다. 몇 주후 결혼을 앞 둔 큰 딸과 다른 어린 딸이 그 충격으로 밖으로 튕겨져 나와 죽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싵 벨트를 안했던것 같은데, 그 사건으로 가족 전체가 큰 아픔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지난 얘기고 , 또 남의 얘기니까 쉽게 하는 거긴 하지만, 샤핑을 대강하고 돌아오던지, 늦었으면 근처 모텔에서 자고 오던지, 아니면 아예 멀리 가지말고 근처에서 샤핑을 하든지, 돈 아끼려다, 생명까지 잃게되는 큰 사고를 만난거지요.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물론 본인들은 이런 사건이 나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을 겁니다. 자신을 믿은거지요. 같은 상황이었다면 우리들도 아마 다 그런 식으로 했을지도 모르지요. 워낙 가격이 싸다고 하고 또 TV , Radio에서 계속 Black Friday 하면서 광고해대니까, 그 쪽으로 마음이 쉽게 끌릴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도 그런 가능성; 자신을 지나치게 믿고있다는 사실입니다. 연말 동창회, 향우회, 비즈니스 협회 가면, 다 들 술을 권합니다. 오랫만에 마음이 풀어지면서, 또 반가운 기분에 한 잔 두 잔 나름대로는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술을 마시게 됩니다. 위험회수까지는 안가도록 노력하지만 잠깐 안심하는 동안에 자신도 모르게 "삼팔선"을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돌아갑니다. "당신 괜찮아요?"아내가 묻죠. "응, 괜찮아. 별로 그렇게 마시지는 않았어" "정말 괜찮아요?" "괜찮테니까, 걱정하지마, 나 오늘 조심했어" "그래도 , 걸리면 어떻게 할라구?" "내가 왜 걸려?" "저 번에 걸릴 뻔 했잖아요 ?" "그 때는 재수가 없었지. 하마터면 혼날 뻔 했지" "이 번에는 걸릴수도 있잖아요? "아냐, 오늘은 나 정말 조심했어." "그건 그렇구, 내 얼굴 괜찮지?, 안 빨갛지?" "응, 얼굴은 뭐 그렇게 마신것 같진 않아요" "그래, 내가 뭐래, 조심했다니까" "그럼 마음대로 해요" 그렇게 해서 그냥 그대로 집까지 가면 좋은데.... 그 다음이 문제가 되겠지요. 차라리, "내가 조심은 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하는게 좋겠지. 당신이 좀, 운전해줄래." 이렇게 솔직하게 터놓고 부탁하는게 낳지 않겠습니까? 술마시는 경우 뿐만이 아닙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도, 자녀들 문제가 있을 때도, 부동산 구입할 때도, 대게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더 안다고, 경험이 많다고, 충분히 핸들할 수 있다고, 그렇게 자신있게 나갔다고 당한 경우가 한 두번 이 아니지 않습니까? 바로 저 자신부터 그렇습니다. 저의 자신감 넘친 (?) 행동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 얼마나 고통을 당했겠습니까? 제가 그 분들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겠습니까? 평생에 못 갚을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믿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요소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 "지나친 자신감"은 자신을 , 사랑하는 사람을, 주변의 사람들을 아프게 할 수도 있습니다. Wonyi5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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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5 해외순방에서 주목해야 할 것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1월18일부터 22일까지 캄보디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순방을 다녀왔다. 캄보디아에서는 아세안(ASEAN) 정상회의에 참석했으며,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원전 세일즈 및 안정적 원유확보에 주력했다. 이 대통령의 임기 중 마지막 순방으로 예견되는 가운데, 이번 순방에서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사안들이 눈에 띤다. 비록 국내에서는 대선 열기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향후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 사안들이다. 우선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및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선언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RCEP에는 한중일 3국, 아세안 10개국 및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6개국이 참여한다. 유럽연합, NAFTA, TPP 등 전세계적으로 이미 통합이 됐거나 논의가 진행 중인 경제블럭을 능가하는 새로운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출범을 천명한 것이다. 전 세계 교역의 27.7%, 명목 GDP의 28.4%, 인구의 48.7%를 차지하는 명실상부 최대 경제공동체인 셈이다. 이제 협상을 개시하기로 했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며, 성사 여부도 아직은 불투명한 상태다. 그러나 최대 인구를 바탕으로 무섭게 확장되고 있는 중국과 인도가 포함되어 있으며, 최근 가장 주목받는 미얀마, 캄보디아 등이 포함된 아세안 등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 성장 가능성과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산학협동을 통해 많은 논의를 거쳐 온 한중일 FTA 협상이 개시된 점 역시 RCEP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수십년의 과정을 거쳐 화폐통합까지 이룬 EU의 경우도 처음 시작은 철강 및 원자력 협력을 위한 역내 협력에서부터 출발했다. 결국 동아시아 경제통합은 아세안과 한중일FTA를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유럽통합보다는 시공간적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중일은 동아시아 교역의 63%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중일 FTA가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구심점을 이룰 것이며, 한국의 역할과 비중은 더욱 커진다고 할 것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회원국간 대학 네트워크 구축, 매년 1개국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지정, 역내 금융안전망 공고화를 위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 규모 2배 확대 등의 성과를 보였다. 구체적인 사업들이 하나둘씩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주목할 점은 이 대통령의 해외순방 기록이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임기 중 현재까지 총 49차례의 해외순방으로 84개국을 방문했다고 발표했다. 중복 방문을 제외하면 43개국을 찾았다. 역대 대통령들의 해외 방문 회수를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27차례 55개국, 김대중 전 대통령이 24차례 35개국, 김영삼 전 대통령은 14차례 33개국을 순방했다. 이런 순방기록에 주목하는 이유는 역대 대통령들의 해외순방 기록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100%를 넘어가는 나라이다. 그만큼 해외시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와 함께 세계 10위권 국가로써의 국제적 역할 또한 반드시 확대돼야 한다. 이제 정상외교는 대통령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사안 중의 하나가 됐다는 점이다. 세계 금융위기와 세계경제질서의 변화,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진행,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 문제 등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이 산재되어 있다. 올 한해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의 숫자가 천 만명이 넘어선 만큼 세계와의 교류는 이제 우리의 실생활 속에 들어와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사안은 통일비용과 연계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서독 통일 당시 엄청난 통일비용을 목격하면서 우리사회에서는 통일에 대한 거부감이 뿌리 깊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20여년이 지난 현재 독일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며 유럽통합을 주도하고 있다. 독일통일비용은 유럽통합 과정에서 상쇄하고도 남았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이 대통령의 금번 해외순방에서 논의된 내용들은 현재와 미래에 직면하고 있는, 직면하게 될 위기를 기회로 돌릴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동용승(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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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1 제2의 연평도 도발, 꿈도 꾸지 말라
2년전 11월 23일, 북한은 연평도를 향해 170발에 달하는 포탄을 무차별적으로 발사했다. 이로 인해 평화롭던 섬이 갑자기 불바다가 되었다. 포탄은 군 부대와 주민들이 거주하는 동네를 가리지 않고 떨어졌다. 북한의 포격 도발에 의해 연평도 섬 전체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산과 시설물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로 뒤덮인 연평도 현장과 포탄이 떨어져 폭발하는 장면들이 카메라와 CCTV에 찍혀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전파되었다. 불타고 있는 민가, 지붕에 구멍이 뚫린 건물, 그리고 도발의 생채기가 남아있는 각종 흔적들도 매스컴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다. 비 오듯 쏟아지는 포탄 속에도 해병대는 귀신 잡는 해병대원들답게 대응했다. 자주포에 불이 붙은 가운데서도 포탑을 돌려 대응사격을 했고 철모와 턱끈이 타들어가는 것도 감수한 채 포 사격에 동참했다. 휴가를 떠나려던 병사는 배를 뒤로하고 부대로, 진지로 복귀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병대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은 전사했고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해병대 16명이 부상을 당했고 민간인들도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포탄을 맞은 민가는 폐허로 변했고 피난을 했던 주민들은 오랫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북한은 이처럼 입으로는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한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고 군인은 물론 국민들마저 죽이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 뿐만 아니다. DDoS 공격을 통해 한국의 금융업무를 마비시키고 GPS를 교란하여 군용 함정 및 항공기는 물론 민간 항공기의 운항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탈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지점을 타격하겠다고 위협하고 이를 위해 최신예 미그기를 상공에 띄우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북한의 도발이 지속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이 만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수많은 도발을 했지만 한국의 응징은 미미하기 그지 없었다. 기껏 규탄대회 정도로 북한을 비난한 적도 많았다. 북한이 대남 도발을 통해 얻었던 교훈이다. 북한은 아직도 이런 교훈을 관성처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무력도발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강력한 응징뿐이다. 도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손실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해 봐야 도발을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국가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상대방으로부터 도발을 당할 때 마다 반드시 자신이 입은 피해 이상으로 상대방을 응징했다.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2년전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한국 해병대는 즉각 대응사격으로 북한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이 정도의 응징만으로는 안된다. 더 강력하게 응징해야 북한의 도발을 단념시킬 수 있다. 전쟁이 무서워 응징을 못해서는 안 된다. “전쟁이 무서워 뒤로 한 발 물러서면 전쟁이 두 걸음 달려오고, 전쟁에 맞서 앞으로 한 발 다가가면 전쟁이 뒤로 두 걸음 물러난다.” 이것이 전쟁연구가들의 결론이다. 맞는 말이다. 온 국민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이를 실천에 옮길 때 전쟁은 물러나는 법이다. 북한 도발에 대한 응징도 같은 논리의 연장선에 있다. 김정은이 절대로 오판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한국 국민들의 대북 인식이 달라졌다는 점, 영주권을 지닌 젊은이들의 군 입대가 늘어났다는 점, 한국군이 60초 이내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원점 및 그 지휘부까지 타격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군 장병들이 “한 번만 더 도발해 보라”고 벼르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제2의 연평도 도발! 꿈도 꾸지 마라. 국민의 성원 속에 강력한 응징이 뒤따를 것이다. 김 열 수(성신여대 교수, 前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장)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2-10-26 치매와 스트레스
"베이비 부머 세대" , 제 2 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 1946 년부터 1964 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 그 수가 현재 약 7천 8백 만명. 그들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의 하나는 본인의 건강 문제, 그 중에서도 알츠하이머 증세, 즉 노인성치매. 일단 중년에 들어서게 되면 기억력 상실혹은 치매 증세를 겪게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서베이는 밝히고 있습니다. 양로 병원에 가면, 예전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과거 자신의 모습과는 철저히 다른, 자신의 배설물 조차도 처리할 줄 모르는 초라한 낯선사람으로 변해 있는것을보게 됩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 친지에게 크나큰 고통을 줄지도 모를 최악의 상황을 어떻게 하든지 피하려고 합니다. 들은 얘기입니다; 한 중년의 비즈니스맨이 근처에 있는 샤핑센터에 들러 아내에게 줄 목걸이를 구입한 후, 파킹한데로 가보니 차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분명히 멀세데스를 3층 섹션 C에 파킹했는데,.. 혹시라도 해서 2층으로 갔는데 거기도 없고, 역시 1 층에서도 차는 없었습니다. 당황해 졌습니다. 급히 시큐리티 가드와 같이 차를 타고 파킹장 전체를 뒤졌는데도 차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혹시 내게 치매 증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점 점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도 가끔 스스로 걱정했는데 이제 그 증세가 현실로 확실하게 나타났다고 생각하게 된거지요. 결국 차는 못찾고 ,자신이 한 시간전 파킹한것도 기억 못한다면서 심한 스트레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가드가 지친 표정으로 "최근에 고급차 도난 사건이자주 일어났는데 당신 차도 훔쳐간 것 같다"고 하자, "아 그래, 그렇다면 내 차도 훔쳐갔구만, 내가 치매 걸린건 아니네" 하면서 그렇게 기뻐했답니다. 의사의 조언에 따르면, 치매 자체 보다도 혹시 치매는 아닐까 하면서 걱정하는 그 자체가 심한 스트레스를 낳게되고 그렇게 되면 상황은 정말 더 나빠질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치매 연구 닥터가 의사들을 상대로 한 세미나에서 한 여자 수술 전문 의사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이 서른 넷, 한창 젊을 때이지만, 이 여의사는 자신의 문제점들, 환자들의 병세에 대해 잘 잊어버리고 , 방 열쇠나 안경을 어디두었는지 자주 기억을 못한다면서 자신이 치매에 걸렸는지, 상담을 해왔습니다. 검사결과 그 녀는 치매증세가 아니라 심한 기억력 상실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계속 밀려있는 수술 속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심한 스트레스를 겪고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가할수록 상황은 더 나빠질수 있다면서 제일 먼저 ,스트레스로 부터 해방될 것, 즉 마음가짐 부터 스스로를 편하게 해야된다는 의사의 조언입니다. 기억력의 감퇴와 치매 증세와는 별 개의 것임을 인식해야 된다고도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우선 전문의사의 상담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스스로의 자가진단은 금물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내ㅡ마음을 편하게 내버려두는 것, 스트레스도, 어떤 외부의 압력도 못 들어오는 호젓한 호숫가, 조용한 벤치로 가끔 들러야 되겠습니다.
한국시사 (전문가 그룹)
2012-10-23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
우리나라가 지난 20일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돕기 위한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앞서 15일에는 세계은행이 국제기구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사무소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고 유엔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진출이 결정되었다. 또한 한국의 녹색성장 정책을 세계적으로 공유하고자 한국이 주도하여 설립한 글로벌 녹색성장 연구소(GGGI)가 공식적으로 국제기구로 승격되는 등 이번 가을은 국제적으로 한국에 겹경사가 나타나는 계절이었다. 이번 GCF 사무국 유치는 독일과 스위스 등 6개국이 신청하여 치열한 물밑 경쟁을 하였다. 초기 유치신청 과정에서 모두가 불리하다고 예상했지만 대통령과 우리 정부의 끈질긴 유치 노력에 힘입어 극적인 승리를 하게 된 것이다. 이는 국제적 위상의 반영이자 우리의 위대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는 27개 정도의 국제기구가 있으나 국제백신연구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2명이 근무하는 조그만 사무소 형태뿐이다. 그러나 녹색기후기금 사무소는 2020년까지 선진국이 매년 적립을 약속한 천억달러 규모의 기금을 다루게 되고 최소 500명이상의 근무자가 상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규모의 기구가 들어서면 국제회의ㆍ학술대회 및 다양한 부대 행사가 지속적으로 개최되면서 그 간접적 효과는 세계적 대기업을 유치하는 것 이상으로 나타난다. 더불어 지역 발전 및 국가 홍보 효과는 더 말 할 나위가 없다. 금전적으로 환산하면 매년 4천억원 이상의 경제적 파급효과 뿐만 아니라 간접고용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창출되어 우리에게는 대단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어 국가브랜드 가치가 급상승으로 연결될 것이다. 이같은 일련의 국제적 위상 강화는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관계자 및 우리 국민의 국가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화석연료 고갈에 대비하면서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추구한다는 인류의 공통적인 목표에 동참하고자 하는 우리 정부와 국민의 의지가 세계적으로 그 진정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2008년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녹색성장 정책으로의 전환을 천명한 이후 녹색성장위원회 설치, 녹색성장 5개년 계획, 온실가스 감축 계획 발표, 배출권 거래제 시행 결정 등 일련의 다양한 정책의 실시하였거나 계획 중에 있다. 또한 글로벌 녹색성장 연구소 설립 주도 등을 통해 국제적 책임을 다 하겠다는 굳은의지의 결과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우리 스스로가 잘 살아야 되겠다는 목표가 커서 국제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성장 정책도 과거의 발전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생산방법에 의존하여 배출이 낮은 기술이나 산업으로의 이전에 많은 노력을 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기후변화라는 인류 공통의 과제에 경제발전 수준에 적합한 국제적 역할을 하는 데는 인색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는 우리 경제수준에서는 내 자신 만이 아니라 인류의 공통된 과제에 동참하고 국제적 리더로서의 역할에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한국적 상황에 대한 인식이 우리 정부가 노력을 하게 되었고 이러한 노력이 최근 국제기구 유치로 나타나게 되었다. 녹색성장 정책만 보아도 2008년 새로운 발전계획으로 천명한 이후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만 아니라 OECD나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호응에 힘입어 지금은 녹색성장 정책의 글로벌 리더로서의 역할이 확고해졌다. 이는 미래 국가경쟁력 강화의 원동력이 되어 우리의 지속적인 발전에 견인차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제고되어 우리의 국격을 향상시키는 토대가 될 것이고 전세계 우리 동포들에게 한민족으로서의 강한 자부심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강 성 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2-10-10 내일을 위한 ...
밑 뢈니 후보, 첫 토론에서 오바마의 기세를 꺽었습니다. 첫 토론에서 이겼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지요. 앞으로 넘어야 할 큰 산 "베이비 부머 세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즉, 클라이드 테니슨 (62 세) 씨 같은 전형적인 "베이비 부머 세대"가 지난 2008 년 격전지 버지니아 주에서 공화당 후보 메케인을 찍었던 것과는 달리, 오바마를 지지한다면 문제는 심각해 질 수 있습니다. 다른 스윙 스테이트-한 쪽으로 기울지 않은 오하이오,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 콜로라도 주에서도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테니슨 씨는 뢈니-라이언 후보 측이 기존의 메디케어 제도를 변경, 프라이빗 바우처 (사립 운영 의료 크래딛 제도)로 대치하겠다는 주장과, 소셜 시큐리티 시스템을 사유화 시킬 가능성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지난 40 년간 소시얼 시큐리티 금액을 부어 왔다면서 사회보장 제도의 사유화 및 메디케어 변경을 도저히 받아 들일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는 "베이비 부머 세대" -즉 2 차 대전 후 출생으로 현재 48-66 세 그룹- 이 7천 8백 만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37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후보 토론 " 바로 전에 실시한 뉴욕 타임즈 CBS 방송공동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들 그룹은 오바마 측을 6 퍼센트나 더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었습니다. 같은 기간 ,퓨어 리서치 센터가 "베이비 부머 세대"를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오바마 측은 뢈니 진영을 47대 43의 비율로 리드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토론 후 이 비율은 많이ㅡ바꿔졌긴 하지만) X 제너레이션 (31-47 세 그룹) 의 유권자 그룹은 전체의 26 퍼센트, 최 연소 그룹 (18- 30 세 그룹)과 최 연장 그룹 (65 세 이상) 은 각기 17 퍼센트를 차지함으로서 "베이비 부머 세대"의 유권자 그룹이 각 그룹 중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 부머 세대"가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바로 메디케어 혜택. 한 예로, 최근뉴 올리언즈에서 열린 AARP (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 50 세 이상 가입) 컨벤션에서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가 오바마 의료 개혁법안을 폐지하고 메디케어를 사유화하겠다고 하자 다수 회원들은 야유를 퍼부었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지난 수 년간 계속되고 있는 "The Great Recession" 경기 침체 영향으로 은퇴기를 앞둔 "부머 세대" 연장자 들의 가구 수입이 평균 $61,716 에서 $55,748로 줄어 들었다고 합니다. 점점 더 어려운 형편에 유일한 의료 혜택인메디케어 서비스까지 줄이거나 대체시키겠다고 하니 "부머 세대"가 공화당 후보로 부터 멀어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미 국민 중, 47 퍼센트는 연방 세금 한 푼도 안내고 정부의 도움에만 의존한다" 면서 다수 서민층을 홀대했던 (?) 뢈니 후보, 이 " 부머 세대"의 아픔을 과연 절실히 느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위대한 미국, 천 만개 이상의 새 일자리 창출"을 이루겠다고 주장하는 뢈니 후보의 그 말은 참 고맙지만, 먼저 그 전에 약한자들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적은 것"만이라도 계속 KEEP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심정입니다.
한국시사 (전문가 그룹)
2012-09-23 일본은 과연 이웃 국가들과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는가?
2차 세계대전으로 주변 국가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던 독일과 일본이 戰後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독일은 주변국가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와 화해의 노력으로EU통합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경제적 으로는 비약적 발전을 이룩하였지만 주변 국가들과는 여전히 영토 문제와 과거 전쟁범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이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전쟁으로 주변국들에게 많은 희생과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이에 대한 가해의식이 부족하여 과거 전쟁범죄를 부정하는가 하면 오히려 자신들이 원폭에 의한 피해자라는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승리의 여세로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시작하였고, 1937년 중국 난징 점령시는 수십만의 중국 민간인을 학살하기도 하였다. 또한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시작한 태평양전쟁 때에는 일본인은 물론 수많은 아시아 각국 국민들이 강제동원되어 3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을 위해 주변국들로 부터 강탈한 물자와 자원 또한 엄청난 것이었다. 특히 강력히 비난 받아야 할 일은 전쟁에 참가한 일본병사들의 성적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동남아, 중국등 22개국에 위안소를 설치하여 20여만명의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당시 일본의 식민지배하에 있던 한국은 가장 많은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 려가는 피해를 입었다. 수만명의 한국여성 피해자중 지금 살아 있는 분은 60명뿐으로 이들은 매주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정부의 진심어린 사죄와 법적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벌써 집회 횟수가 1,000회를 넘은 것을 보면 그분들의 마음에 쌓인 응어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20개월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1993년 8월4일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명의의 담화를 통해 당시 위안소 설치 및 모집 위안부 관리및 이송 등에 관해 일본군의 관여를 폭넓게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한 일본이 최근 주변국들과 영토문제로 충돌을 빚자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최근 국회 답변에서 “군위안부를 강제연행 했다는 사실을 문서로 확인할 수 없었다며”정부 관여사실 자체를 부정했고 아베 신조 전총리는 “재집권하게 되면 고노담화를 재검토하겠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시모토 도오루 오사카 시장도 “위안부가 일본군에 의해 폭행, 협박을 받아 강제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 며 과거 일본 정부가 인정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견해를 뒤집는 이중성을 드러내 주변국들의 감정을 격앙 시켰다. 이렇게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20년전에 발표된 고노 담화를 앞다퉈 부정하는 모습은 이웃국가들에게 준 고통에 대해 가해의식 부재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제국주의 유산의 잘못된 자부심에서 기인한 자기부정의 전형이다. 오죽하면 자국 유력 언론이 비상식적인 과거사 부정을 보다 못해 “가지가 아니라 줄기를 보자”며 정치인들의 우경화 포퓰리즘에 대해 자성을 촉구하고 나설 정도 일까. 일본군의 성노예 문제는 한국,중국,대만,필리핀,태국,베트남,말레시아,인도네시아 등 당시 일본으로 부터 식민지배나 침략을 당했던 나라는 물론이고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던 네덜란드 여성들까지 대상으로 삼은 반인도적 범죄이다. 미하원은 2007년 “위안부는 일본정부에 의한 군대 강제 매춘제도로서 잔학성과 규모면에서 전례없는 20세기 최악의 인신매매 사건의 하나“라고 일본정부에 사죄 촉구를 결의했다. 이러한 미국내 관심이 모아져 2010년 10월 미 뉴저지주에 기림비가 건립되었다. 한국내에서도 2011년 12월 민간단체 주도로 일본정부에 진심어린 사죄를 호소하기 위해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되었는데 일본 우익인물들이 사람들의눈을 피해 야밤에 ‘독도는 일본땅’ 이라고 새겨진 말뚝을 박고서 이를 촬영해서 유투브에 올렸다고 한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는 “어려운 시절에 매춘은 매우 이익이 남는 장사”라는 망언을 했다. 일본 사회에 퍼져 있는 비뚤어진 내셔널리즘의 단면을 떠올리게 하여 씁쓸함 마저 느낀다. 일본은 고노 담화로 사과하고 금전적 보상을 하려 했지만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민간기금 형태로 꼼수를 부리자 상당수 피해 할머니들이 수령을 거부하는 등 환영을 받지 못했다. 1970년 12월 독일 빌리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해서 유태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독일의 더덕적 용기를 상징하는 것임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90세 가까운 고령의 할머니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진정한 사죄와 화해를 서두르지 않으면 일본은 옹졸한 가해자라는 족쇄를 영원히 풀지 못 할 것이다. 일본은 패전후 침략전쟁의 최고 책임자 였던 천황이 면죄부를 받으면서 전범 청산이 미완에 그쳤고 군국주의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특수로 큰 호황을 누렸고 그 덕택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면서 경제적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반면 한국은 36년간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되었지만 미.소 냉전시대의 대립 속에서 남북 분단의 비극을 겪었다. 일본은 경제성장에 힘입어 국제사회의 선도국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역사 교과서에서 주변국에 대한 침략과 고통을 준 과거사 교육을 주저하는가 하면 주변국들과 영토문제로 대립 중이다. 한국과는 독도 문제로, 러시아와는 쿠릴열도, 중국과는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독도는 일본이 한반도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1905년 불법적으로 편입한 후 1945년 한국이 독립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마찰을 빚고 있다. 일본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독일 처럼 정치지도자의 적극적인 사죄와 반성을 통해 주변국들과 진정으로 화해하고 세계 리더로서 회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간 일본이 보여준 수사적 사과와 반성은 역사의 진실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고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변국들로 부터 감동과 공감을 얻기 어려웠다. 주변국들 사이에서 그간 일본이 보여준 모습이 혼네(진정으로 바라는 마음)가 아닌 다테마에(필요에 의한 표면상의 방침)로 비춰지고 있다. 일본이 동아시아 역내 국가들과 상호 윈윈(Win – Win)하는 공동체로 조화로운 관계로 상생 하길 원한다면 스스로 부끄러운 과거와 정면으로 맞서는자발적인 인식전환과 도덕적 용기를 내야 한다. 끝까지 자기 부정을 고수 한다면 국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일본은 나이토 세이추 교수을 비롯한 일본 지성인들의 역사에 대한 양심의 소리를 외면 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일본은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철저하게 반성하고 행동으로 사죄하여 역사의 진실에 정직하며 후세에 떳떳한 좋은 이웃으로 돌아오길 진심으로 충언한다. 김이수 (민주평통 샌프란시스코지역 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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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9 이명박 대통령의 APECㆍ북극권 순방 의미와 성과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중 마지막 해외순방을 다녀왔다. 지난 9월 7일 서울공항에서 출국하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20차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후, 9.9~10 간 덴마크 왕국 자치령 그린란드를 방문하는데 이어, 9.10~12 간 노르웨이, 9.12~14 간 카자흐스탄을 각각 공식 방문했다. APEC 정상회의에서는 지역경제통합과 식량안보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세계적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들이 제시됐다. 李대통령은 한ㆍ러 정상회담에서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에 대한 의지를 재천명하는 한편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발전을 강조했다. 가스관 연결사업은 임기 초기부터 관심을 두고 추진해 왔으나 남북관계의 경색 등으로 진전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이는 극동시베리아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러시아와 미래지향적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라는 한국의 필요성이 상호 만나는 접점이라 할 수 있다. 국가원수로서는 건국 이래 처음으로 방문한 그린란드에서는 녹색성장과 북극권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그린란드의 위기요인을 기회요인으로 전환하기 위해 한ㆍ그린란드 간 자원개발 협력을 강화한 점은 두드러진 성과다. 지구 온난화 문제는 이미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인류에게 위협으로 다가선지 오래다. 이러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인류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자는 내용을 그린란드 방문을 통해 구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르웨이 방문 시 李대통령은 오슬로 대학에서 '코리아 루트의 새지평(Korea Route and New Horizon)'을 주제로 특별연설을 했다. 노르웨이의 6.25 참전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한편, 100년 가까이 평화를 유지해 온 이른바 노르딕 피스(Nordic Peace) 현상을 언급하며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시사점과 교훈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의 연결고리는 기후변화에 대한 공동의 운명의식이며 한국과 노르웨이가 그 가교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 내용은 도움 받던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로 발전한 한국이 국제사회에 던지는 화두가 되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지구 반대편 북쪽에 위치한 명실상부한 선진국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노르웨이의 북극정책을 대세를 뛰어넘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평가하면서 한국과의 적극적인 협력 필요성을 언급한 점은 한국의 미래비전을 글로벌 정책의 관점에서 전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귀로에 방문한 카자흐스탄과는 수교 20년을 맞이하여 양국간 제 산업분야의 실질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은 많은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을 실현해 가고 있는 국가인 만큼 한국의 경제발전에 큰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많은 기회가 열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성과들과 함께 임기 중 마지막 순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지구의 북반부에 위한 나라들을 선택한 점이 가장 눈에 띠는 대목이다. 세계적 이슈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참여 의지와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 지향적 방향성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국력이 국제적 수준에 올라서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국내적 이슈에만 머무는 동북아의 조그마한 나라가 아니며,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세계평화와 번영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제시하는 나라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명박 대통령의 마지막 순방외교는 대한민국의 미래비전을 제시함과 동시에 그 문을 여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녹색성장 노력을 세계에 알리는 한편 임기 중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FTA 필요성을 세계 금융위기를 대처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점 등은 국가 지도자로서의 높은 혜안을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동 용 승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2-09-15 현대판 봉이 김선달?
"봉이 김선달은 없다"...고 했는데 , 분명히 없는데? ... 봉이 김선달은 있습니다. 누구인가 "현대판 봉이 김선달"은? 피터 티얼, 벤처 캐피탈 파운덜스 펀드의 파트너인 그는 지난 2004 년 페이스 북의 창업 파트너인 마크 주커버그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 거금(?) 5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당시 페이스 북의 싯가는 4백 9십만 달러, 단 돈 50만 달러의 투자 ㅡ살고있던 동네의 작은 집 한 채도 안되는 가격에 대량의 FB주식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헐 값에 주식을 산 후, 장래가 없다고 투덜되던 그가 지난 5월 페이스 북이 주 당 $38 달러에 I.P.O.를 실시 마켙 벨류가 천 억달러를 힛 했을 때, 재빨리 주식의 일부를 처분 했습니다. 당장 십 억 달러를 손에 쥐게 되었고, 아직도 대 규모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페이스 북의ㅡ대 주주 일뿐만 아니라 이사직도 맡고있는 그가 마켙에 대량 매물을 내놓아, 안 그래도 추락하고 있는 주식가격을 더 급히 떨어뜨린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도 받고 있습니다. "내 주식 내가 파는데, 누가 뭐라고 하느냐?" "지 껏 지가 파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만은, 그래도 뭔가 좀 아쉽긴 아십지요. "돈 놓고 돈 먹은 케이스"는 더 있습니다.: 88년 본인이 만든 "페이팔 "회사를 "이 베이"에 15억 달러에 팔았고 "린크드인"과 "징가"에도 남보다 일찌감치 투자한 바가 있습니다. 머리와 갖고있는 돈을 적절히 활용, 엄청난 부를 "아주 쉽게, 우습게?"모았습니다. 다른 점도 많긴 하지만, 그를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고 불러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 가지 더, 또 다른 큰 픽처를 볼 필요도 있습니다. 즉, 남이 생각하지 못한 일, 기상천외한 일, 그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정신적 포용과 배짱. 거기에다가 수 십만 달러의 돈을 던진 용기,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 아이디어가 행동으로 옮겨져,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했을 때 "현대판 봉이 김선달"의 공헌도를 우리는 인정하게 됩니다. 고개만 끄떡하는게 아니라, 엄청난 포상도 따라가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게 됩니다.
한국시사 (전문가 그룹)
2012-09-15 정통성 없는 金哥 3대세습 정권
올해 9월 9일은 북한정권 수립 64주년이다. 1945년 소련군함을 타고 북한에 들어온 김일성은 소련군 제25군단 정치부의 미리 짜여진 각본에 따라 북한의 권력을 잡기 시작하였다. 결국 김일성은 1948년 9월 9일 주민에 의한 직접적인 선거 방법이 아닌 구소련의 지시에 따라 이른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창건하였는데 구소련 휘하의 꼭둑각시 정권이었던 것이다. 1945년부터 1994년 사망시까지 김일성은 1회의 직접선거도 치루지 않고 절대 권력을 누렸으며 집권기간 동안 북한을 “폐쇄공화국”의 전형으로 만들었다. 이것도 모자라 김일성은 사회주의 나라인 중국도 시도하지 않은 부자 권력승계를 처음으로 실시하면서 맏아들 김정일에게 국가권력을 넘겨주었다. 2대 독재자인 김정일은 2~3백만명 이상의 북한주민을 굶겨 죽이고 북한 전체를 지옥의 감옥으로 만들었다. 또한 집권 내내 북한을 김씨가문의 국가로 만드는데 온 나라의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나이가 들고 와병을 겪으면서 김정일은 올해 겨우 28세인 막내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사망했다. 단 한 번의 직접적이며 민주주의적인 선거 없이 김가 가문이 3대째 권력을 잡는 사상초유의 일이 21세기 “대명천지”에서 벌어진 것이다. 3대를 세습하는 동안 광복 전 남한에 비해 공업시설이 더 많고 더 많은 공업발전을 이룩하였던 북한은 정권수립 64년을 맞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로 전락하였다. 김씨 가문의 나라로 되면서 북한은 나라의 곳간은 텅텅 비고 경제는 거덜이 난 나라, 북한 주민들은 끼니 걱정에 하루를 시작하는 나라, 꽃제비와 일명 “꽃파는 여자”들로 불리는 몸을 파는 여자들이 늘어나는 비정상적인 국가로 된 것이다. 28세의 애송이 청년은 단순히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2,300만 인구를 가진 하나의 국가를 통째로 넘겨받았는데 이 후계자의 사고방식이 상상을 초월한다. 그가 후계자로 선정되자마자 처음으로 한일이 1,700억짜리 초호화 관저를 짓는 일이었고 김정일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처음으로 간 곳이 “105탱크사단”이었다. 그는 부친보다 한 술 더 떠 유럽과 중국으로부터 초호화 식료품, 요트, 사우나, 생필품 등을 구입해 세상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김씨의 금고에는 외화가 넘쳐나고 김씨 가문만이 호화를 누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전해지는 소식들에 의하면 김정은은 올해 9월 9일 건국일과 10월 10일 당 창건 기념일에 맞추어 대규모 정치행사들을 줄줄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은 이미 올해 “태양절 100돌” 행사기념 군사퍼레이드와 시위, 불꽃놀이와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에 10억달러 이상의 돈을 소진하였다. 6월 6일 소년단 창립기념일에 맞추어서는 전국에서 4만 명의 어린이들을 평양으로 모아 놓고 대형 경축대회를 하였고 8월에 들어 와서는 전국에서 1만 명의 청년 대표들을 모아 놓고 북한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청년절 기념 경축행사”를 벌였다. 5만 명을 모아놓고 대규모 잔치를 하고 지도자 명의로 선물을 주는데 데 여기에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 주민들의 피와 눈물이 들어갈 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4월, 6월, 8월에 이어 9월의 “건국절”과 10월의 “당창건 기념일” 축제들을 준비하기 위해 김정은은 해외공관들과 외화벌이 기관들에 자금을 조달하라는 긴급 지시들을 내렸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일년 내내 명절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고 하는 미국에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규모의 명절들은 1년 동안 한 번도 하기가 쉽지 않다. 어린이들은 시장 바닥에 떨어진 낱알을 주어먹고 여자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국경을 넘고 몸을 팔고 있는데 후계자라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호화생활과 대규모 잔치들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왜 그럴까? 이는 바로 김정은이 어린이들로부터 청년들, 노동당원들, 군인들, 국가공무원들을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만들어 김가 체제를 4대, 5대로 계속 이어가기 위함이다. 그 외 나머지 일은 그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김정은이 진정으로 “인민의 영도자”라고 불리고 싶으면 번쩍거리는 1억짜리 “파텍 필립” 시계를 차고 “크리스챤 디올” 핸드백을 든 젊은 와이프를 데리고 놀이기구들을 타러 다닐 것이 아니라 끼니와 땔감 걱정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고 있는 인민들의 생활 향상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김씨 가문과 엘리트계층만을 위한 잔치는 정녕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정통성도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 채 출발한 북한 정권은 파국적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고 영 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전략실장)
한국시사 (전문가 그룹)
2012-08-31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 뒤엎기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독도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선언이자, 독도 문제에 단호하고 적극적으로 맞서겠다는 의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한국의 실효지배를 불법점거로, 대통령의 방문을 불법상륙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영유권 소재를 확인받거나, 1965년 ‘분쟁해결에 관한 교환공문’을 내세워 조정을 제안한다. 일본이 어떤 근거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가? 독도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독도 영유권 주장에서, 일본은 ‘무주지 선점(無主地 先占)’을 내세운다. 러일전쟁 중 망루와 무선전신 기지를 세우기 위해 독도를 점령한 후,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40호로 일본영토에 편입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512년 신라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울릉도)을 점령한 후 계속 우리가 지배해 왔고, 1432년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는 우산국의 판도를 무릉도(울릉도)와 우산도(독도)로 기록하고 있다. 다음으로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한국영토에서 독도가 제외되었다는 주장은 한다. 물론 동 조약 제2조 (a)항에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를 포기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한국에 부속된 3,000여개 섬 중 상징성 있는 큰 섬만 표기한 결과이다. 울릉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독도는 한국 령이 된다. 그리고 일본의 패배는 전쟁 이전으로 복귀를 의미하므로, 독도는 당연히 한국에 귀속된다. 이후 1952년 1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이 '인접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평화선)'을 발표했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확인하면서, 이에 대한 부정을 평화파괴로 선언했던 것이다. 1953년 4월 20일부터 45명으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가 활동하였고, 1956년 12월 30일 경찰 독도수비대가 치안을 인수하였다. 역사적 실효적으로 독도가 한국의 영토로 완성되는 시점이다. 그러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멈추지 않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의 시작으로 일본의 주가가 급상승한 결과, 일본이 반성과 사과 없이 최소한의 징벌과 배상책임만 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극동국제군사재판(1946년 5월 3일-1948년 11월12일)을 보면 A급 전범은 28명에 불과했다. 이들 중 히로히토 천황은 면책되었으며, 교수형 7명, 종신형 16명, 금고형 2명을 선고하는데 그쳤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조약 제14조에서 일본의 배상책임을 명시하면서 “일본의 생존 가능한 경제유지 내”라고 규정하고, “직접 피해와 고통 이외 다른 배상에 필요한 자원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하면서 일본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제11조에서 일본은 A급 전범을 처벌한 군사재판과 판결을 받아들인다고 확인하였다. 일본의 손해배상도 해외 일본 자산의 차압과 유치, 역무배상 원칙, 일본의 조약 체결국에 대한 청구권의 포기로 한정하였다. 이러한 결과가 바로 일본의 현 주소로 나타나고 있다. 자민당과 민주당 국회의원이 전범이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전쟁 중 군사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점령했던 독도를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대통령의 독도방문에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국제사법재판소 단독 제소나 조정을 시도하고 있다. 독도에 대한 잘못된 역사인식을 유지시키고, 일본 제국주의와 제2차 세계대전을 정당화시키겠다는 의미이다. 한국은 일본의 정치경제적 보이콧에 대비하면서, 실효지배를 강화시켜야 한다. 먼저 독도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교육과 홍보이다. 바른 역사관은 국민의 사기를 높이며, 국민사기는 정부능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도의 국제 분쟁화’라는 일본의 의도를 차단해야 한다. 국정홍보처의 부활이나, 외통부에 홍보전담 실국의 신설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방파제와 숙소 같은 시설을 확충해야 하며, 독도 해역을 국경선으로 간주하여 군함이 순찰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에게 외교적 공격 빌미를 주고, 국제적 여론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 감정적 대응은 금물이다. 이 재 영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2-08-31 수 많은 환자들 생명을 잃다!
매년 약 20 만명이 미국에서 메디컬 실수로 목숨을 잃는다고 최근 뉴욕 타임스 칼럼에서 밝혔습니다. 약 10 년 전에도 매 년 9만 8천 명이 의료 부주의로 사망한다고 "인스티튜트 오브 메디슨" 기관이 보도한 바 있었지요. 지난 봄에도 12살의 소년 로리 스타운턴이 뉴욕 한 병원에서 치료 받고 집으로 돌아온 즉시 패혈증 쇼크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억울한 죽음이었지요. "매 년 20만 명 사망, 의료 실수로." 왜 많이 죽게 되는가?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지고 있지만 미국 의사들은 다른 선진국 의사들에 비해 지나치게 불 필요한 검사를 많이 하고 있다는 점 , 즉 1996 년과 비교할 때 현재는 의사가 지어주는 5 가지 이상의 약 복용 처방전이 세 배나 늘어났고, MRI 검사도 4배로 증가 했다는 것 입니다. 물론 필요하니까 했겠지만, 꼭 하지 않아도 될 검사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실제 최근 조사에서 정형외과 수술 중 24 퍼센트는 의료적으로꼭 했어야만 했던 케이스는 아니었던 걸로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과다 치료현상은 환자를 보호한다기 보다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법적 소송에 대비, 의사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취해지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즉 그만큼 법적 소송 케이스가 많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의사 자신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 취한 검사들, CT , M.R.I. Scan은 때로는 정확하지 않은 양성 반응을 보여 불 필요한 수술을 실시, 합병증 감염 증세 ,혹은 출혈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으며, 지나친 약 처방으로 인해 과다 복용증세 및 알레르기 현상을 야기시킬 수도 있습니다. 담낭 제거 같은 일반 수술에도 마취로 인해 잘못하면 심장마비, 뇌졸중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많은 의사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그 중에서도 좐스 홉킨스 의대 피터 프로놉스트 교수는 병원 진료에서의 불 필요한 감염 증세를 막기위해서 방지 대책을 세운 바 있습니다; 의약 투입시 간호원의 부주의 근절, 의사의 처방전 부작용에 대한 경고 및, 의사의 오진에 대한 간호원의 현장 이의 제기를 즉시 허용케 하는 방법들이 제시되었지요. 더욱 중요한 것은 , 가능하면 불 필요한 각종 검사를 줄이고 처방전도 미니멈으로 하도록 하는 방법이지요. 최소한의 방법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일체의 부작용을 막는데 최대의 효과를 가져올수 있다는 생각, 즉 "Less Is Better"이라는 개념 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1979년 닥터 스태판 버그만이 쓴 "The House of God"이라는 유머 소설에서 밝힌 "제 13 번의 룰--" 즉, 의료 서비스 제공은 가능한 한 적게 할 수록 환자에게 더 좋다"는 원칙입니다. 의사의 입장에서 볼 때 혹시 있을지도 모를 법적소송에 대비 각종 검사를 실시하여 방어대책을 세우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나, 그 로 인해 환자가 만일 피해를 보게 된다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수도 있다는 사실에 유의, 가능한 한 처방전을 최소한으로 , 각종 검사도 미니멈으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2-07-31 [이원창 컬럼]Yahoo 그녀에게 미래를...
지난 7월 어느 날 어둠이 깔리기 전 4 명의 남자들은 조용히 버스에 오르고 있었읍니다. 혹시 누구라도 볼까 주변을 둘러보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죠. 그 들을 태운 버스는 약 10 마일을 달린 후 팔로 알토에 도착, 미국의 탑 10 로우펌 "Skadden, Arps.." 안으로 들어갔읍니다. 깊숙히 자리한 회의실에는 한 미모의 여성이 변호사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그 녀가 바로 머릿사 메이어. 최근야후의 CEO로 뽑힌 당년 37세의 임신부! 늘씬한 금발의 미인. 새로운 총수를 구하라는밀명을 띈 4 명의 사나이들은 야후 최 고위의 인사담당 이사진 들. 그 들은 머리를 맛대고 한참 동안 질문과 대답, 깊숙한 얘기들을 주고 받았읍니다. 2 차 모임은페이지 밀 로드에 있는 다른 로우 펌에서... 마침내 결론에 도달했읍니다; 5년 동안 스탁옵션 포함 1억 2천 5백만 달러 지급. 단, Turn-Around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조건. 구체적 사항은 로우 펌에서 수 백만 달러 챙기면서 만들어 준데로. 야후, 무엇이 문제인가? 1995 년 3월 1일 창립이래 선발 주자로 기세좋게 자-알 나가다가 이제는 거진 밑으로 밀려나게 되었죠. 아직도 온 라인 방문자가 한 달 평균 무려 7 백 만명. 온 라인 광고 수입은 2009 년 당시, 업계 전체 수입의 15.7 퍼센트. 그러나 2011 년에는 9.5 퍼센트로 떨어졌죠. 계속 다운 다운 다운이죠. 무엇 보다 7 백만의 방문자와 온라인 광고 수입을 연결시켜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그 수많은 방문자가 천천히 놀고 (?)가면서 이 것 저것 클릭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야후는 현재 24억 달러의 캐쉬를 가지고 있고, 야후 저팬 (구글이 유일하게 선두를 놓친 나라, 손정의/마사요시 손 때문에? )과 중국의 유력 한 온 라인 Alibaba.com의 투자 지분이 약 백 억 달러. 아직도 스트롱한 재력을 보유하고 있읍니다. 지난 5 년 동안에 6 번이나 CEO를 갈았으니까 메이어가 바로 7 번 째 대표로 올라선거죠. 설립자 중 한 사람이었던 제리 양도 한 번 해보겠다고 대들었다가, 얼마 못가 내려왔었고 바로 전 CEO 이었던 스캇 탐슨은 학력 위조로 (살짝 고쳤더군요) 곧장 날라 갔고. 바람 잘 날이 없었읍니다. 그래도 야후의 수장으로 올라설려면 나름대로는 업계 정상으로 인정 받았을 텐데, 어떻게해서 한결같이 밀려 났을까? 주변을 보면 아이디어가 생기죠. 앞에는 구글, 바로 옆에 페이스 북, 저 앞에 트위털, 또 그 옆에 린크드인...그리고 수많은 신생아들....끝없는 경쟁이 따라 붙고 있는 실정이니... 구글 입사 순위, 20 번 째. 최초의 여성 엔지니어, 스탠포드 출신. 하이퍼 스마트, 인공 지능 전문가등, 그리고 5 백만 달러 주고 산 퍼시즌 호텔 탑 펜트하우스 소유 등 수식어가 많이 붙읍니다. 메이어는 구글 서치의 팽창을 주도해온 핵심 멤버로 Gmail과 Google Map을 리드했었읍니다. 매니저만도 천 백명을 거느려 왔었고, 구글 전체 매출액의 20 퍼센트 이상을 책임져온 장본인.디테일에 강하며 확실한 목표의식을 가진, "포춘 50"에서 최 연소의 리더로 명성을 떨쳐왔읍니다. 곧 10 월에 있을 출산에 들어가도 쉬지않고 일하겠다는 그녀의 의지,그리고 패배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그녀의지칠 줄 모르는 승부의식.그 녀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앞으로의 갈 방향을 쉽게 밝히려하지 않고있읍니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겁니다. 5 년 동안 그 누구도 못이루었던 야후의 부활을. 머릿사 메이어, 야후의 사나이들 그 녀에게 미래를 -다-걸었읍니다. 임신6개월인 신임 야후CEO Marissa Mayer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2-07-27 몰몬 지금 미국에선...
지난 삼월 몰몬 교회는 성대한 준공식을 가졌읍니다. 이십 억달러를 들여 최신의 메가 쇼핑센터 '시티 크릭'의 완성을 본 것이죠. 솔트레이크 시티 몰몬사원 바로 옆에 위치한 이 대규모의 쇼핑센터에는 자동으로 열고 닫을수 있는 유리로된 지붕이 설치되어 있으며, 고급 보석상 티파니와 영 제너레이션 상대의 포에버 20를 포함 약 백 개의 각종 가게와 식당이 있다고 하죠. 총 오 천개의 지하 파킹도 있고. 몰몬 성전에서 직접 쇼핑센터로 갈 수있는 육교도 있는데교주의 방에서 "엎으지면 코가 다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메이시 백화점이 있다고 합니다. 현재 토마스 몬순씨가 교주로서, 그는 '살아있는 예언자' -Living Prophet-로 추앙받고 있다고 합니다. 몰몬교도, 운명의 대권! 이 최신 쇼핑센터는 몰몬교회 즉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다수 소유하고 있으며 교회측은 이 쇼핑센터를 지은 것은 몰몬교회의 현대화로 가고자하는 의지이며 교회의 메시지를 널리 전파함과 동시에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어 이 땅위에 '신의 왕국'을 이루는데 그 주목적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몰몬교회는 신도들의 삶에 직접 관여하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채워주려고 한다는 입장인데, "우리는 신도들의 영성적인 면 뿐만 아니라 현실의 삶에도 관여하고 있다. 즉 속세의 삶에서 어려우면 영성적으로도 자랄수 없다고 믿기에 그들의 현실적 삶에도- 그것도 깊숙히- 관계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읍니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몰몬교가 일반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돈버는 일"에 깊숙히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 많은 사람들은 그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있죠. 몰몬교의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한 지주회사인 DMC (Desert Management Corp)는 이윤 추구의 목적으로 세워져 그 산하에 신문사, TV 방송 ,열 한개의 라디오 방송사 , 출판사, 디지털 미디어회사 그리고 자산 규모 삼십 삼억달러의 보험회사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 들로부터 매 년 약 십 이억 달러의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지주회사 AgReserves도 역시 이윤추구의 목적으로 설립되어 미주 대륙에 백 만 에이클이 넘는 대지에 농장, 수렵지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플로리다 주 소재 십억 달러 상당의 목장에는 젖소 사만 사천 마리, 황소 천 삼백 마리를 키우며 동시에 각종 목재도생산하고 있죠 . 이 농업부문 지주회사는 영국, 캐나다, 오스트래일리아, 멕시코, 아르헨티나 그리고 브라질 지역에도 대 규모 투자를 하고 있읍니다. 하와이 주에서도 오아후섬에 7 천 에이클에 달하는 하와이 리서브랜드를 가지고 있으며 따로 비 영리 단체로 등록한 폴리네이시언 컬츄럴 센터, 42 에이클 규모의 열대 공원에서는 일반 입장료로 $49.95 , VIP 입장료는 $228.95를 받고 있죠. 이번에 솔트레이크 시티에 오픈한 시티 크릭 샤핑센터도 원래 5 십억 달러 규모의 다운타운 재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몰몬교의 비즈니스 투자는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읍니다. 미 전체 인구의 1.4 퍼센트, 약 4백 4십 만명의 신도를 거느린 몰몬 교회는 엄청난 부를 소유, 그룹전체의 총 자산 평가가 약 4 백억 달러에 달하며십의 일조 헌금만 해도 매 년 80억 달러 수준이라고 로이터 통신은근래에 보도한 바 있죠. 비영리 단체로 등록이 되어 세금 혜택은 물론, 각 지주회사의 장부도 공개되지 않읍니다. 비밀에 쌓여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몰몬교의 사회 환원에 대한 도네이션은 그 규모가 어떨까? 여러가지 선교활동을 많이 하고 있지만 실제 현금으로 내 놓은 금액만을 볼 때 그 들은 매 년 5천 2백만 달러, 즉 연 수입의 0.7 퍼센트를 도네이션하고 있어 연합감리 교단의 29퍼센트 와는 좋은 대조가 되고 있읍니다. 밑 뢈니 후보도 몰몬 교회에 지난 5 년 동안에 만도 가족 소유 타일러 파운데이션 재단을 통해 4 백만 달러의 헌금을 했다고 합니다. 현재 그는 약 2 억 5 천만 달러 상당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평가되어 있는데 자신의 회사 베인 캐피탈이 투자한 회사, 버거 킹, 도미노 피짜회사 등의 주식을 교회에 헌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죠 뢈니의 선조들은 1800 년 대 중반 영국에서 건너와 몰몬교로 개종, 그 후 계속해서 몰몬교의 라더쉽에 관여했고, 뢈니 자신도 약 5 천명이 넘는 교구의 프레지던트 그리고 사제로서 봉사해오고 있죠. 고교 졸업후 스탠포드 대학에서 일 년 재학 -월남전이 한창인 무렵-그 후 파리로 건너가 선교활동을 한 후, 몰몬교 산하 브리감 영 대학에서 졸업, 하버드에서 로스쿨과 MBA 조인트 프로그램을 마쳤죠. 몰몬교는 기존 기독교회로 부터 구별되어 왔으며, 전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 후보가 출석했던 교회의 목사는 몰몬이 이단이라면서 이단 교도를 대통령 후보로 뽑을수 없다고 맹 비난을 했지만, 뢈니는 공화당 경선에서 거뜬히 승리했죠. 그러한 여론의 보도를 거진 다 잠재울 만큼 몰몬의 보이지 않는 힘은 막강한 것으로도 짐작할수 있읍니다. 몰몬교에게는 미 대선이 더이상 뢈니 개인만의 도전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겪어온 박해 (?)를 딛고 일어나 뢈니를 앞세워 기존 기독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교세를 팽창시킬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요. 이미 오래전부터 뢈니의 대선을 위해, 몰몬의 장래를 위해 차곡차곡 준비해온 것은아닐까?... 뢈니, 오랫동안 준비해온 몰몬교도. 그의 등에는수 백년의 무거운 짐이 짊어져 있읍니다. 눈 앞에 놓여있는 대권, 그 속에는 몰몬의 운명이 담겨져 있노라고 감히 말할수 있겠읍니다.
한국시사 (전문가 그룹)
2012-07-25 올림픽을 통해서 본 대한민국의 위상 변화
올 여름 지구촌 70억 세계인의 이목은 영국 런던으로 집중된다. 인류 최대의 제전이라 불리는 하계올림픽이 7.27 개막해 8.12까지 개최되기 때문이다. 런던은 이번 올림픽 개최로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세번째 개최 도시로 기록된다. 1908년, 1948년, 그리고 올해 2012년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 7월 런던 올림픽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높이 들고 출전했다.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태극기를 앞세우고 67명의 선수단이 런던 땅을 밟은 것이다. 우리 선수단은 이같은 어려운 여건과 악조건 속에서도 동메달 2개를 획득하여 세계 만방에 작은 독립국 ‘대한민국’을 알렸다. 특히 1948년 런던 올림픽 이전 일본 식민치하 암울했던 시절에 참가했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잊을 수가 없다. 손기정 선수는 이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출전해 마라톤에서 우승을 했다. 손기정 선수가 월계관을 쓰면서 흘린 비애의 눈물은 우리국민에게 독립 대한민국의 꿈을 가슴깊이 심어주었다. 이렇듯 우리 민족과 스포츠는 영광과 애환이 점철된 한국 현대사와 맥을 같이 하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늘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독립국으로서 첫 출전한 때부터 64년이 지난 지금까지 16번째로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게 되는 우리나라는 이번에 22개 종목에 245명이 출전한다. 그 규모면에서 세계 스포츠 선진국에 결코 뒤지지 않으며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사실상 올해 런던올림픽을 맞는 우리 선수단의 각오는 대단하다. 3회 연속 텐-텐(금메달 10개, 종합순위 10위)을 목표로 한 우리 선수들은 찬란한 금자탑이 64년 전 런던에서 시작된 것을 마음깊이 새기면서 4년간 피땀어린 훈련을 통해 기량을 다져왔고 필승의 의지를 불태웠다. 톱텐은 분명 쉬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을 해낼 것이라 확신한다. 이는 작지만 위대한 나라, 대한민국이 강인한 의지와 정신력, 불가능에 도전하는 우리 국민의 힘에서 모든 것이 출발했기 때문이다. 꺽일듯 꺽이지 않고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더 굳은 땅으로 만들어 딛고 일어서는 우리 국민들의 위대함이 이제는 세계를 향한 힘찬 전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런던 올림픽은 우리나라에 있어 스포츠 강국이라는 위상만 높이는 것이 아니다. 국민통합을 이끌고 국격ㆍ국력을 높이는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자부심을 각인시키는 충분한 기회로서 작용할 것이다. 1948년에는 출전 경비문제로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는 삼성전자가 공식 후원사로 선정되고 개도국에 스포츠 용품과 장비를 지급할 정도로 대한민국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런던 올림픽의 범국민적 감동을 바탕으로 사회적 분열을 치유하고 화합함으로써 미래세대에 건전하고 튼튼한 발전과 성장의 토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체제 자부심과 국민통합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야만 우리 국민 모두의 노력으로 거둔 무역 1조 달성ㆍ20-50클럽 진입 등 눈부신 경제성장과 글로벌 국제행사 개최 등이 헛되지 않고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 선수단에게 영광의 런던 올림픽이 되길 바란다. 최 종 준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한국시사 (전문가 그룹)
2012-07-25 가뭄과 홍수에서 검증된 4대강 효과
오랜 가뭄끝에 단비가 내리더니, 금세 장마에 접어들어 홍수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가뭄과 홍수가 연이어 나타나는 것은 우리 국토가 갖는 독특한 현상이다. 건조한 대륙성 기류와 습한 해양성 기류가 이곳 한반도에서 교차하고, 우리 국토에는 과거 지질시대에 빙하나 활발한 단층 활동이 없었던 관계로 물을 모아 둘 대형 자연호가 없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멸망 원인중 하나도 가뭄이었다. 왕조실록을 보면 490년 동안 100여 번의 극심한 가뭄이 있었고, 특히 1875부터 1905년까지 계속된 30년 대가뭄은 백성들의 궁핍한 삶과 민란(동학농민의 난, 1894년)으로 이어졌다. 결국 쇠약해진 국력으로 전쟁 한번 못해보고 나라를 통째로 넘겨준 것이 조선의 역사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 땅이 가뭄과 홍수의 나라인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수지, 다목적 댐, 생공용수 댐, 하구 댐 등을 건설해왔다. 하지만 가뭄과 홍수 피해는 계속 반복됐다. 특히,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가뭄과 홍수는 더욱 극심하고 빈번하게 나타나며, 그 피해는 연간 수조원에 이르게 됐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지금까지의 가뭄과 홍수 대책과는 다른 차원에서 시도됐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본류에 퇴적된 토사를 걷어내고 맑고 풍부한 물을 채웠다. 제방을 보강하고 생태계를 복원하며 지역 주민들이 수상레저와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친수공간도 확보했다. 이제 완공을 눈앞에 두고 가시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장마에는 마치 하늘이 4대강 사업의 홍수방지 효과를 검증하듯 엄청난 폭우가 내렸다. 6월 22일부터 7월 16일까지 전국 평균 6백42mm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이는 예년 수준의 2.5배에 달하며, 시간당 30mm 이상의 강우는 예년의 3.5배에 이른다. 사업 전과 비교해 4대강 본류의 수위는 2~4m가량 낮아졌다. 본류와 연결되는 지류의 수위도 1m정도 내려갔다. 피해액도 과거 엄청난 폭우가 내린 지난 1998년과 2006년의 장마에 비하면 평균 1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금년에는 4대강 사업의 가뭄대책 효과를 검증하듯 104년만의 극심한 가뭄이 왔다. 지난 4월 25일부터 6월 28일까지 전국에 내린 평균 강우량은 80mm로 예년의 29%에 불과했다. 논 5천ha가 피해를 입었고, 1,041세대 2,400여명이 제한급수를 받았으며, 가뭄 대책비로 902억원이 들어갔다. 금년보다 정도가 약했던 지난 2001년 가뭄은 4월 1일부터 6월 15일까지 전국 평균 강우량이 82mm로 예년의 31%였다. 논 1만5천ha가 피해를 입었고, 9만 3,615세대 30만4천명이 제한급수를 받았으며, 대책비로 2,778억원이 들어갔다. 금년 가뭄이 2001년보다 더 심했지만 피해 규모는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4대강 사업은 우리정부의 저탄소녹색성장 정책과 더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이사회, G8 확대정상회의 등 주요 국제회의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유엔 산하 최고 환경전문기구인 유엔환경계획(UNEP)으로부터 4대강 사업이야말로 ‘진정한 녹색뉴딜 사업’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지난 6월말 브라질 리우에서 개최된 유엔환경정상회의에서도 ‘기후변화시대에 대비한 녹색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제 4대강 사업은 이러한 세계적인 평가에 힘입어 ‘새로운 수출품목’으로 변신하여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태국, 알제리, 모로코 등 세계 각국은 우리의 4대강 사업을 벤치마킹하고 기술 진출을 타진해 오고 있다. 가뭄과 홍수로 엄청난 고통을 받았던 나라가 기후변화시대를 맞이하여 4대강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의 가뭄과 홍수를 대비하는 최고의 기술을 가진 국가로 변모해 가고 있다 박 석 순 (국립환경과학원 원장)